지난 23일 방송된 티캐스트 E채널 <노는 언니>에는 '공부하는 야구소녀' 김라경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여 화제가 됐다. 김라경은 한국 리틀 야구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 대한민국 최연소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그리고 서울대 야구부 최초 여자선수 등 여러 부문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독점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야구계의 '개척자'로 꼽힌다.

<노는 언니> 멤버들을 처음 만난 김라경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던 당차고 야무진 모습과는 다르게 소녀다운 엉뚱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같은 운동선수임에도 TV로만 접했던 전설 언니들을 실제로 만나자마자 연예인보듯 신기해하기도 하고, 낯선 방송출연에 긴장한 표정으로 미리 외워 온 자신과 언니들의 프로필을 국어책읽듯 암기하는 등, 순진무구한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자연스럽게 미소짓게 만들었다.

<노는 언니> 멤버들은 김라경의 지도 아래 야구에 대한 기본기 훈련을 쌓고 사회인 야구단과 두 팀으로 나뉘어 실제 경기를 펼치는 시간도 가졌다. 체육 전설들답게 처음 접해보는 야구에서도 언니들의 운동신경은 빛을 발했다. 역시 가장 돋보인 선수는 '만능캐' 김온아였다. 핸드볼 선수의 전공을 살려 수비에서는 정확한 송구를 선보이는가 하면, 타석에서는 홈런까지 뽑아내는 괴력을 선보이며 이날 자체적으로 선정된 MVP에 뽑혔다.

물론 <노는 언니>답게 예능감 넘치는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기린 언니' 한유미는 플라이볼 상황에서 동료의 수비를 방해하는 팀킬로 실책을 저지른 데 이어, 타석에서는 길다란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헛방망이질만 반복하는 굴욕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경기는 예상외로 박진감넘치는 공방전 끝에 '세리베어즈'와 '척척척시스터즈'가 3점씩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노는 언니> 멤버들은 자리를 옮겨 한우 파티를 열고 뒷풀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김라경은 멤버들을 만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되게 사람 냄새가 난다"고 답변했다. 이에 한유미는 "다들 모자라다는 소리"라며 짖궂게 해석해 멤버들을 폭소케 했다. 당황한 김라경은 손사래를 치며 "언니들이 자기 종목도 아니니까 쉬엄쉬엄할줄 알았는데, 승부욕을 불태우는 데 놀랐다"며 찬사를 보냈고, 김온아는 "우리는 뭘하든 다 진심"이라고 화답했다.

멤버들은 김라경이 걸어온 야구인생을 주제로 토크를 나눴다. 김라경의 오빠는 한화 이글스 소속의 프로선수였던 김병근이다. 김라경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빠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히며 "부모님은 너무 힘든걸 알기에 걱정했지만 저는 그래도 야구가 너무 하고 싶었다"며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프로야구는 국민스포츠로 불리우며 높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여자야구는 국내에 프로나 세미프로팀이 전무한 상황이다. 다른 엘리트 스포츠처럼 '운동특기자' 진학 제도가 없었기에 김라경은 운동과 학업하며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박세리가 "공부가 재밌었어?"라고 묻자 김라경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살려고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서울대에 가게된 것과 관련 "비선수 출신인 일반 학생들이 모여서 대학리그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허용되는 팀이 서울대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야구 프로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김라경은 야구에 대한 깊은 열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 여자야구 선수로서 오래 활동할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라경은 자신이 재수를 해야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기도 했다. 나이로는 19학번이 될 수 있었던 김라경은 시험 당일날 극심한 긴장감에 시험장에 일찍 도착하고도 면접을 봐야할 건물을 착각해 지각하며 그대로 실격을 당하고 말았다. 김라경은 같이 동행했던 부모님이 딸을 위하여 무릎까지 꿇었던 가슴 아픈 사연까지 밝히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야구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김라경은 이후 절치부심하며 1년의 노력 끝에 서울대 20학번으로 재수에 성공하며 기어코 목표를 이뤄냈다.

이날의 피날레는 노래자랑이었다. 식사를 마친 <노는 언니> 멤버들은 신고식을 핑계로 노래를 신청했고, 김라경은 고민 끝에 가수 거미의 '어른아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않는 다소 의외의 선곡를 꺼냈다. 잠시 수줍은 듯 하던 김라경은 이내 표정을 바꾸며 MR에 비하여 의외로 노래 실력과 걸크러시한 매력을 발산하며 언니들을 놀라게 했다.

<노는언니>는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함께 어울려 다양한 체험과 일상을 공유하는 세컨드 라이프 프로그램을 지향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방송출연 경험이 부족한 출연자나 현역 선수들이라고 해도 부담없이 출연하여 자신의 매력을 편안하게 보여줄수 있는 '착한 예능' , 비교적 덜 주목받는 종목과 선수들도 방송을 통하여 조명받을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김라경 역시 <노는 언니>에서 특유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며 감동과 웃음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게스트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정식멤버까지 합류한 김온아나, 사실상 반고정에 가깝게 출연하고 있는 김은혜-서효원처럼 언제든 재출연을 기대해도 좋을만한 활약이었다.

김라경은 이미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등 몇몇 방송프로그램에서 '천재 야구소녀'로 소개되며 몇 년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7년에는 최연소로 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WBSC 여자야구월드컵에서 최연소 대표로 출전하는 등 많은 화제를 일으켰다. 여자 선수로서는 뛰어난 구속, 남자도 버티기 힘든 거친 운동을 병행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자가 무슨 야구를 하냐', '공부도 잘하면서 왜 어려운 길을 가느냐'는 식의 편견은 그녀가 극복해야 했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데 다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별과 환경에서 나오는 수많은 선입견을 극복한 김라경의 도전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다.

<노는 언니>에서 보여준 김라경의 이야기는 곧 개인을 넘어 대한민국 여자야구에 대한 인식과 처우 개선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여운도 동시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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