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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부동산, 주식... 온갖 유혹이 우리를 흔듭니다. 누군가가 상상도 못 할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면 왠지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런데 그런 투자의 끝이 늘 장밋빛인 것은 아닙니다. 남들 다 한다고 뛰어들었다가 돈과 건강, 심신의 안정까지 잃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나를 '갈아 넣었던' 투자, 그 웃을 수 없는 경험담을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재테크를 시작했다. 많지 않은 월급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절로 들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답이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재테크와 부업으로 돈을 벌고자 했다. 주식, 펀드, 예적금, 부동산, 기념주화 수집뿐 아니라 블로그, 일러스트, 웹툰,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 제작에도 열을 올렸다.

쉽지 않을 거라는 당시의 직감은 아주 정확했다. 재테크와 부업은 신통치 않았고 여전히 월급만으로 꾸려가는 내 삶은 그리 여유롭지 않다. 선견지명이 대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13년 전에 그냥 점집을 차렸어야 했는데, 재능을 잘못 알아본 내 실수다.

사회생활 13년 차인 지금, 살고 있는 집만 봐도 이제야 안방과 거실 정도만이 내 소유다. 다른 곳은 여전히 은행에게 빌려 쓰고 있다. 내가 쓸고 닦고 겨울이면 데우고 여름이면 식히는데도 사용료가 만만치 않다. 약간 억울한 감이 있지만 뭐라 할 수도 없다. 아쉬운 건 나니까.

돈을 쫓으면 진짜 도망가는 것인지 어째 움켜쥔 것이 없다. 그렇게도 달려들었는데,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생각해 보면 허무하다. 그간 무엇을 위해 그리도 열을 올렸던 것인가. 잠을 줄이고 멀티태스킹을 시도하고, 빨리 가려다 더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냥 무리해서 서울에 집 한 채만 사 둘 걸'하는 아쉬움이 자연스레 생각에 배인다.

수준이 다른 요즘 사람들의 재테크

나 같은 사람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인지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재테크는 수준이 다르다. 이른바 '몸테크'를 하는 이들이 있단다.

'몸테크'는 2030세대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미래 가치가 높아질 만한 낡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즉, 간단하게 말하자면 몸을 희생해 재테크 한다는 소리다. 이들은 중심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의 안도를 얻고, 재건축이 되면 새집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쫓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집도 장만하고 잘 살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수도 없이 사람들의 발등을 찍는 것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집을 장만하면, 살 수는 있을 거야"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요즘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영끌'이 걱정되지만, 그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찌 보면 영끌은 무모한 시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신중한 선택 같아 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뭇 걱정이 되는 것은 내 지난 행적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불씨를 키우기 위한, 아니 최소한 꺼뜨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다.
▲ 혼신을 다한 재테크 불씨를 키우기 위한, 아니 최소한 꺼뜨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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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테크란 신조어를 접하곤 재테크라고 해왔던 그간의 행적을 더듬어 봤다. 그리곤 깨달았다. 그동안 해왔던 것들은 그냥 '재테크'를 넘어선 나만의 '영끌 몸테크'였음을.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엄동설한에 맞서고, 잠을 줄여가며 콘텐츠를 만들고, 밤낮없이 주식에 매달렸던 일 등등... 당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했고, 나를 갈아넣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신의 소모가 컸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미국 주식을 시작한 일이다. 낮 동안 한국 증시에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던 때였다. 조바심이 났고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10년 넘게 꾸준히 우상향한 미국 주식에 '맘 편하게' 분산 투자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금을 나눠 미국 주식에 옮겨 담았다. 하루 20시간 마음 졸이는 주식 투자가 이렇게 시작됐다.

내가 호기심 많고 조급한 인간인 걸 깜빡했다. 자기 전에 잠시만 보려던 시세와 외신기사가 자꾸만 나를 끌어들였다. 기사의 하이라이트를 겨우 다 보고 늦은 잠이 들어도 미국 장 마감 시간(한국 시간으로 대략 새벽 5시)에 깨어 밤새 쏟아진 외신을 확인했다. 알람이 따로 없었다. 어째서인지 자동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학생 시절 그리도 어려워했던 일을 기계적으로 해냈다. 학창 시절에 미국 주식을 알람으로 썼어야 했는데, 아쉽다.

심신을 갈아넣었던 나의 '몸테크'

처음엔 그런 대로 좋았다. '사람이 이렇게 생산적일 수 있다니', '이러다 영어도 늘겠다'며 좋은 쪽으로 생각을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시장은 정말 우상향 했고 늘어나는 평가금액에 나의 모든 활동이 생산적으로 여겨졌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피곤도 잊었다. 그냥 흐름이 그랬던 것을, 마치 매일같이 열심히 외신을 확인하는 나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그 여파로 나는 코피가 터졌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사태는 두 달여의 시간을 거쳐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말할 것도 없이 세계 모든 증시가 곤두박질쳤다. 그렇게도 강했던 미국 증시도 예외일 수 없었다. 사상 유례 없던 폐쇄 조치에 소비가 경제 규모의 70%를 차지하던 미국의 상황은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만큼이나 불안해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나라는 개미였다.

날카롭게 떨어지는 주가를 보니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잠은 오지 않았고 선잠을 자고도 눈이 번뜩 떠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은 모든 걸 이겨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영원할 수 있나. 잠시의 피곤을 잊을 순 있었지만 갈수록 부족해지는 수면은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렸고, 만성피로에 입이 부르트고, 근육통에 코피까지 보고 나서야 세 달여 지속된 미어캣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맘 편하자고 시작했던 해외주식이 '무리'로 치달았던 씁쓸한 기억
▲ 미국 주식 투자 맘 편하자고 시작했던 해외주식이 "무리"로 치달았던 씁쓸한 기억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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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하다 보면 손을 놓게 되는 시점이 있다. 확신할 때와 포기할 때다. 당시 나는 반반이었다. '다시 올라오겠지'와 '내가 어찌한다고 되는 게 아니네'라는 반반. 새벽에 들여다본 거울 속의 초췌한 나에게 더 이상의 미안함을 가질 수 없었다. 당시 내 얼굴 어디 한 구석에도 여유나 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반쯤 포기한 절반의 확신이 원금 회복으로 화답(?)하긴 했지만, 온갖 고생 끝에 제자리에 온 나는 결국 밑지는 장사를 했다. 수익은 고사하고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성 변비를 하사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도 자도 피곤한 몸과 먹어도 먹어도 나오지 않는 변은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삶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저마다의 노력에 여유가 채워지길

저마다 나름의 불안함과 간절함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재테크, 몸테크, 혼테크, 영끌. 돈이 행복의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이긴 하나, 돌아봤을 때 치열함 속에 일말의 즐거움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여유도 촘촘히 박혀 있으면 좋겠다. 최악의 코로나 기간을 돌아본 내 삶엔 여유가 없었다. 초조했고 조급했으며 좀 날카로웠다. 많은 것으로부터 조금은 무뎌진 지금, 당시의 나의 최선이 못내 씁쓸하기도 하다.

모든 이의 노력에 여유 한 줌이 있길,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이 좀 더 여유 있는 삶의 결과로 나타나길 기원한다. 그리고 식상한 이야기지만 "돈보다 건강"이라고 하니, 건강 하나만큼은 절대 희생하지 말길. 잘 먹고 잘 싸는 게 간절한 바람이 되는 일이 없길. 부디 나와 같은 원초적인 절실함을 경험하는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그림에세이, #몸테크, #재테크, #돈보다는건강, #노력속에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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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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