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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란 무엇인가? 소리는 진동에 의해 생긴 파동으로, 높고 낮음(음계)과 길고 짧음(음조), 맑음과 탁함(음색), 진폭의 크고 작음(세기)이 어우러져 만들어낸다. 이 파동이 공기와 같은 매질을 통해 퍼져 나간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리를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소리에 쉬이 반응할까? 음악처럼 익숙하고 친근한 소리다. 특히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 자체로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처럼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어떤 소리든 듣는다. 이는 곧 살아있음의 다른 표현으로, 존재하는 모든 삶이 소리 안에 담겨 있다. 소리를 자연의 순리에 맞게 배열하면 음악이 된다.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 그 자체가 곧 음악이다.
 
탄금대교 모습 3경간 중로식 닐센로제 아치교다. 충주시 칠금동과 중앙탑면을 연결하는 다리다.
▲ 탄금대교 모습 3경간 중로식 닐센로제 아치교다. 충주시 칠금동과 중앙탑면을 연결하는 다리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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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에는 탄금대에서 울려오는 가야의 소리를 닮은 멋진 3경간 아치교가 있다. 아치 틀은 넘실거리는 충주호 물결을 닮았다. 물결은 1500년 전 스러져간 가야의 소리다.

무너져 가는 가야 12부족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성립은,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문명이 변천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쇠는 국가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였고, 이를 통한 무기 발달은 영토 확장의 기본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는 고조선과 부여, 옥저와 동예, 삼한이 청동기를 받아들인다.

이들이 멸망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병립하면서 서로의 영토를 빼앗고 빼앗기는 시대가 된다. 유물과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이중 가야의 철기가 가장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가야는 여섯 나라 12개 부족 연맹체 형태로, 통일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달하지 못하고 결국 신라에 흡수되어 버린다.

우륵이 살던 때는 야만의 시대였다. 가야는 쇠락하고 신라가 흥기하고 있었다. 신라는 가야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중심에는 가야의 철로 만든 무기가 있었다. 무기는 이웃한 상대방의 군사적 약점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형태로 발달되어 간다. 그 속에서 군사들은 물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는다.

가야 각 나라 관료들은 서로 연대하여 신라에 대항하지 못했고, 가야 여러 고을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이 와중에 가야의 철을 생산하는 대장장이는, 가야 쇠로 만든 무기를 신라와 밀거래한다.
 
가야금 가야금은 오동나무 판에 공명 통을 만들고, 그 위에 줄 받침 기러기발 12개를 얹는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소리의 높고 낮음 순으로 배열하여 만든다.
▲ 가야금 가야금은 오동나무 판에 공명 통을 만들고, 그 위에 줄 받침 기러기발 12개를 얹는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소리의 높고 낮음 순으로 배열하여 만든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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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죽으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왕과 함께 순장시킨다. 엄청난 양(量)의 쇠가 왕의 무덤 속에 같이 묻힌다. 왕의 무덤이 만들어지면 제사장은 나라에서 최고로 뛰어난 악사를 불러 왕의 넋을 위로하고, 천기(天氣)의 흐름을 진정시킨다. 악사는 우륵이고, 위로는 그의 몫이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나가는 고을들을 지켜내지 못한 왕은, 우륵에게 가야 12부족과 그 고을의 모든 소리를 금(琴)에 담아내라 명한다.

12부족 소리를 담아내는 우륵

우륵은 무너져 내린 고을을 돌아다니며, 가야의 옛 금(琴)을 들고 각 고을의 소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소리는 이미 무너져 내린 고을과 함께 소멸해 없어져 버렸다. 무기로 변한 야만과 욕망으로써 쇠가 앞서서 고을을 무너뜨리면, 소리는 그 쇠가 짓밟고 간 길을 따라갔다. 소리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왕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고, 가야 왕자마저 신라로 도망쳐 버린다. 가야는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쇠를 만드는 기술자들도 점차 신라에 몸을 의탁한다. 12현의 금(琴)은 가야 12부족의 소리다. 우륵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 늘 무너져 내린 넋을 위로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금(琴)을 만든 우륵도, 그 금(琴)을 들고 신라로 들어가야만 했다. 제자 니문(尼文)과 함께였다.
  
가야금 산조 연주장면 '가얏고'라 부르는 악기로, 개량된 가야금은 줄의 숫자를 변형시켜 각종 악을 연주한다. 사진은 부산에서 만든 산조를 단체로 연주하는 장면이다.
▲ 가야금 산조 연주장면 "가얏고"라 부르는 악기로, 개량된 가야금은 줄의 숫자를 변형시켜 각종 악을 연주한다. 사진은 부산에서 만든 산조를 단체로 연주하는 장면이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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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유역으로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은 직접 우륵을 불러 12현 금(琴)의 소리를 듣는다. 정복자의 권위와 승리의 위용을 금(琴)의 소리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륵은 12현의 금(琴)은 다 무너져 내려 사라져버린 가야 12부족의 소리임을 확인시킨다. 그 소리에는 어떤 회한이나 노여움도 없다. 사라져는 갔으나, 신라의 모습으로 남아 살아가야만 하는 가야 백성들이 내는 '침묵의 소리'였다.
  
탄금정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충주벌판에서 대패한 신립 장군이 몸을 던져 자결한 곳이 탄금대다. 탄금정에 서면 남한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 탄금정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충주벌판에서 대패한 신립 장군이 몸을 던져 자결한 곳이 탄금대다. 탄금정에 서면 남한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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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은 우륵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며, 신라 젊은 악공들로 하여금 가야의 금(琴) 소리를 익히게 한다. 충주 '탄금대(彈琴臺)'다. 이렇게 12고을의 소리를 담은 가야의 금(琴)은, 신라에서 침묵으로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마치 신라로 투항하여 진골의 품계를 이어간 김유신 집안처럼 말이다.

소리는 1500년을 살아남아

금(琴)은 나무 판에 공명 통을 만들고, 그 위에 줄 받침 기러기발 12개를 얹는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소리의 높고 낮음(음계) 순으로 배열한다. 오른 손으로는 줄을 튕기며 맑고 탁함(음색)을 조절하고, 왼손으로는 줄 받침 안쪽의 줄을 누르거나 들어 올려 소리의 길고 짧음(음조)과 진폭의 크고 작음(세기)을 어루만지면서 연주하는 악기다.

튕기는 오른손에서 나는 소리는 스러져간 가야 고을 자연의 소리다. 왼손으로 조절하는 소리는, 각 고을에서 살았고 신라인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백성의 소리다. 가야의 금(琴)이다. 가야 12고을 자연의 소리와 사람들과 축생(畜生)들의 생멸을 한 악기의 울림통 안에 온전하게 가둬놓고, 소리가 그리울 때마다 튕기고 조여서 꺼내 듣는다.

1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소리를 통해 야만의 시대에 생멸해간 가야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사라져 버린 1500년 전 가야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노래하고 있다. 아직도 살아 있는 가야 백성들의 소리를 내는 가야금이다. 그들의 노래다.
 
탄금대 모습 옛 탄금대교가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2013년 이전 모습이다. 멀리 충주시가지가 보이고, 남한강가 절벽으로 이뤄진 탄금대 모습이 수려하다.
▲ 탄금대 모습 옛 탄금대교가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2013년 이전 모습이다. 멀리 충주시가지가 보이고, 남한강가 절벽으로 이뤄진 탄금대 모습이 수려하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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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이 그 시대를 살다간 가야 사람들의 소리를 모으고 간직한 곳이 탄금대다. 이곳에서 진흥왕의 명령으로 신라 악사들을 가르친다. 신라 악사들은 망한 가야의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12곡을 5곡으로 줄여버린다. 가야의 곡이 음란하다는 명분이다. 우륵은 개의치 않았다.

가야의 소리처럼 넘실거리는 아치곡선, 탄금대교
  
탄금대교 3경간 아치 중로식 닐센로제 아치다. 74m-125m-74m 규모의 아치가 연속되어 있다. 폭 21m에 580m 길이다. 아치 틀을 연속하여 이어 붙이고, 곡면 하단에 교각을 세워 거치했다. 아치 틀 바닥에서 약간 띄워 올려 보강 형을 거치해 중로식 아치교가 되었다.
▲ 탄금대교 3경간 아치 중로식 닐센로제 아치다. 74m-125m-74m 규모의 아치가 연속되어 있다. 폭 21m에 580m 길이다. 아치 틀을 연속하여 이어 붙이고, 곡면 하단에 교각을 세워 거치했다. 아치 틀 바닥에서 약간 띄워 올려 보강 형을 거치해 중로식 아치교가 되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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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칠금동과 중앙탑면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탄금대 인근이다. 다리 이름이 탄금대교(彈琴大橋)다. 탄금대교와 엇갈린 곳에선 엑스트라-도즈드교인 우륵대교가 지나고 있다. 탄금대교는 3경간 중로식 닐센로제아치다. 74m-125m-74m 규모의 아치가 연속되어 있다. 폭 21m에 580m 길이다.

3경간을 구성하는 아치 틀(Rib)을 곡면으로 연속하여 이어 붙여 연결하고, 곡면 하단에 교각을 세워 거치했다. 아치 틀의 맨바닥에서 약간 띄워 올려 보강형(補剛桁, stiffening girder, 아치교나 현수교 등에서 교량 전체 또는 상부 강성을 보충하기 위해 설치하는 벤딩 강성이 있는 거더)을 거치해 중로식 아치교가 되었다.
 
탄금대교 경관조명 아치 틀에 경관조명을 달아 충주호의 물에 비친 야경은, 우륵이 타는 구슬픈 가야금 소리를 연상시킨다.
▲ 탄금대교 경관조명 아치 틀에 경관조명을 달아 충주호의 물에 비친 야경은, 우륵이 타는 구슬픈 가야금 소리를 연상시킨다.
ⓒ 충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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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간 아치가 마치 충주호의 물결을 닮았다. 넘실대는 충주호 물결은 가야의 소리, 가야금 가락이다. 아치 틀엔 경관조명(경치를 밝게 비춰 주는 야간 형형색색의 조명)을 달았다. 밤에 충주호의 물 위에 비친 야경은, 마치 우륵이 타는 구슬픈 가야금 소리가 퍼져나가는 형상이다. 1500년을 살아낸 속 깊은 울음소리를 닮았다.

색을 달리하면서 변하는 조명은, 가야 백성들의 울부짖음처럼 흔들거린다. 짙푸른 충주호는 탄금대교 아치모양으로 출렁거린다. 퍼렇게 멍이 든 남한강은 우륵의 울음과, 침묵으로 신라를 맞이한 가야 백성들의 통곡 소리를 껴안고 있다. 탄금대교 연속되는 유려한 아치곡선은, 이들을 달래는 진혼(鎭魂) 무(舞)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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