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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들러 의사의 진단으로 치료를 받는다.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할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음의 상처는 많다. 친구, 부모, 동료 등 삶의 곳곳에 뾰족한 가시들이 깔려있다. 상처 나고 찢긴 마음에 제대로 치료를 받고, 휴식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음의 상처는 대충 덮어두기 마련이다.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다른 가시들이 밀고 들어와 또 다른 생채기를 내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 상처가 상처를 덮어버린다. 

나도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매일 단칸방 집에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 선생님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 동료에게 다친 마음의 흉터들이 더께가 꽤 두터운 굳은살처럼 박혀버렸다. 굳은살은 상처를 받기 전에 타인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상처가 많은 사람이 교사가 되고 보니 학생들 또한 상처가 많아 보였다.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워낙 작아 하나하나 상처를 품어주고 함께 아파해주지 못했다. 최소한 나같이 상처받고 숨어버리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서교사로, 독서 상담자로서 학생들과 함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평소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여 뾰족한 가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학생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책으로 학생들의 여러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도, 옆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가슴 따뜻해지는 경험도, '아' 하며 탄식을 하던 시간도 그들에게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보다 효과를 본 건 나였다. 충분히 아파했고, 의미를 발견했다. 상처에 유연한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나 자신을 잊고, 단단한 겉껍질로 포장했던 나였다. 그림책 하나를 읽을 때마다 나를 찾았고, 껍질을 벗었더니 주변이 보이고 삶이 풍요로워졌다.

그림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을 글로 표현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끄덕인 고개의 의미를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지, '아' 했던 탄식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썼다. 글을 쓰니 명료해졌다.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가 명료해졌다. 그러나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 과정을 반복했더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다.

위 과정을 어떻게 했는지 연재 형식으로 나누고 싶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글이 되면 좋겠다. 첫 번째로 마음의 깊은 상처로 남은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내 곁에 없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그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보통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내 어린 시절 함께 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997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는 살던 집에 빨간 딱지를 남긴 채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어린 나이에 왜 그러는지,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일이 진행됐다. 우리 집을 잃어버리면서 나는 아버지도 잃어버렸다. 아버지가 길을 잃었는지, 우리가 아버지에게 연락을 못 한 채 이사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사는 첫해는 불편했다. 재래식 화장실,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없는 것은 물론 고장 난 문짝은 몇 달째 고쳐지지 않고, 곰팡이를 수놓은 벽지는 우리가 이사 온 것을 환영하는 듯 점점 더 멋지게 수를 놓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도 잠시 아버지가 없는 삶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엄마는 나와 여행을 제안하였다. 뜻밖이었다. 어려서는 자주 여행을 갔지만, 단칸방으로 이사를 온 후, 한 번도 여행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행이라니? 여행은 엄마가 석유 배달할 때 타던 '라보'라는 조그마한 용달차를 빌려 타고 떠났다. 2시간 정도를 달렸나? 바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표를 사더니 차를 배에 실었다.

처음부터 여행의 설렘보다 엄마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것이라 목적지가 어딘지도 몰랐다. 근데 차를 배에 실으니 목적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아주 작은 섬에 도착했다. 이런 작은 섬에 돈 아깝게 차를 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위해 짐칸에 짐을 많이 실었던지라 차를 배에 태운 것을 금세 이해했다.

그렇게 배에서 내려 차로 1분 움직였고, 엄마는 짐을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10여 분쯤 걸으니 자그마하고 허름한 집이 나왔다. 여행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는 숙소라는 생각만 했다. 그렇다고 풍경이 멋지지도 않았다. 멋지지 않은 풍경과 허름한 숙소에서 나온 사람은 아버지라는 사람이었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행용 짐 가방을 풀어보니 아버지의 옷가지, 김치, 밑반찬이었다. '엄마는 나를 왜 이곳에 데려왔을까?' 생각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별말 없이 하루가 지나고 다시 배를 타고 나왔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섬에서 나와 집에 왔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여기 같이 살아도 될까?"

당연하지만 약간은 억울한, 참 묘한 말이었다. 갑자기 울컥해졌지만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엄마의 여행 제안은 다시 만날 아버지를 미리 만나보게 한 엄마의 배려였을 것이다.

내 곁을 지켜주는 아빠가 진짜 아빠다?

존아노 로슨이 기획하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린 <거리에 핀 꽃>은 글이 없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물론 '이 그림책에서 아버지를?'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글이 없는 그림책은 해석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명징한 메시지가 있겠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인 셈이다. 
 
 <거리에 핀 꽃> 표지.
 <거리에 핀 꽃> 표지.
ⓒ 국민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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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그림은 흑백과 컬러의 대조로 서사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흑백의 거리에는 아빠로 보이는 사람과 빨간색 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있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길바닥에 피어오른 노란 민들레는 아이의 손으로 들어온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며 거리에 핀 분홍, 보라 꽃들을 조심스레 꺾어 향기를 맡는 아이의 시선에 따라 책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은 색깔이 입혀진다. 참새, 꽃, 예쁜 병. 공원을 지나다 거리에 쓰러진 새에게 꺾어온 꽃을 올려둔다. 벤치에 누워계신 아저씨, 아버지 친구의 강아지, 엄마, 동생에게 꽃을 선물한다. 아이가 꽃을 선물하면서부터 그림책은 색깔을 입고 화사하게 피어난다.

그림책을 처음 읽을 때는 색을 따라가느라 아이에게 시선이 쏠렸다. 두 번째 펼쳐 읽을 때 아이 옆에 항상 서성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꽃을 꺾을 때, 꽃을 선물할 때 아버지는 항상 옆에 있었다. 아이와 간격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손바닥을 펼치고 손을 잡으라는 모습으로 뒤돌아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버지의 존재로 마음껏 꽃과 세상에 한눈 팔 수 있다. 사람이 바쁘게 오가는 회색의 도시에서 따뜻한 온기를 품은 꽃을 볼 수 있다. 쓰러진 새에게, 외로운 아저씨에게, 거리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꽃을 건네는 아이의 마음은 넉넉하다. 그 또한 아버지의 기다림으로부터 커진 마음이리라. 거리에서 꽃을 선물한 이후부터는 그림이 색을 가진다. 나무와 풀, 거리와 거리 위의 자동차,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색이 입혀진다.

색이 입혀진 사람과 강아지에게 꽃을 선물한 아이는 아버지 보다 앞장서서 걷는다. 늘 한눈팔기 위해 뒤처진 아이는 아버지보다 열 걸음 앞서 걷는 모습에 나눔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엄마를 안고 엄마 머리에 꽃을 꽂아준다. 마당에 있는 동생들에게도 물론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꽃을 선물한다.

사랑할 줄 아는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우리는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 없이는 세상에 태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동학대 부모만큼 잔인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곁을 지켜주며 기다려주는 아버지는 나에겐 없었다. 책 속 아이의 모습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아버지가 바빠서 통화를 하든 가끔 다른 곳을 보든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

든든한 아버지를 믿는 아이는 마음껏 거리를 누빈다. 거리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경험은 아이의 마음을 키운다. 마음이 넉넉해진 아이는 스러져가는 것들에게 손길을 보냈고,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한다. 이 그림책의 백미는 하늘의 새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꽃 하나를 선물하는 일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는 커서 어떻게 살까?

난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결핍은 사람을 사귀는 일을 어렵게 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어색한 경우가 많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라고 한다면 그건 내 노력의 흔적이다.

본성을 숨기려는 노력은 사람들과 관계를 좋게 하는 데 기여했지만,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 사람에게 보여줄 노력이나 방법을 소모해버렸다면 더 이상 만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아버지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다음 연재에 소개할 그림책과 책들로 내 삶에서의 아버지라는 흔적을 조금씩 발견해낼 수 있었다.

*2화에서 계속

거리에 핀 꽃

존아노 로슨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국민서관(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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