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의 흉터를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볼드모트(랄프 파인즈)'가 나오는 꿈속에서 깨어난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그는 퀴디치 월드컵 결승전에서 하늘에 떠오른 볼드모트의 상징을 목격하고, 호그와트로 돌아가서는 수백 년 만에 개최된 트라이위저드 시합에서 예상치 못하게 호그와트의 대표로 선정된다.

트라이위저드 시합, 크리스마스 무도회, 리타 스키터와의 만남 등 일련의 사건을 '론(루퍼트 그린트)'과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그리고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인 '매드아이 무디(브렌단 글리슨)'의 도움을 받으며 헤쳐 나가는 해리.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악몽과 '덤블도어(마이클 갬본)'의 기억이 예상할 수 없는 계략을 경고하는 가운데, 해리는 모든 진실을 밝힐 마지막 시합에 나선다.  

10일에 4dx 버전으로 재개봉한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시리즈의 전작들과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 전작들의 부제인 '마법사의 돌',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가 각각 결말에 이르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반면에 '불의 잔'이라는 부제는 별다른 역할을 맡지 않는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여할 각 학교의 챔피언을 선정하는 게 전부이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 뒤 퇴장한다. 그런데도 불의 잔이 당당히 부제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불의 잔은 단순히 한 작품이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초석을 닦은 효과적인 맥거핀으로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불의 잔'의 허무한 퇴장

불의 잔은 웅장하게 등장해 화려하게 타오른다. 그래서 활약상은 유독 실망스럽다. 이 잔은 유일한 임무인 챔피언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다. 보바통의 플뢰르, 덤스트랭의 빅터 크룸, 호그와트의 세드릭 디고리까지 세 마법 학교의 대표를 착실히 뽑은 후 또 한 명의 챔피언으로 해리를 선정한다.

이후 트라이위저드(Tri-Wizard)라는 이름과 달리 4명의 마법사가 시합을 펼치면서 불의 잔은 곧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맥거핀이 본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희석되는 영화적 장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불의 잔의 허무한 퇴장은 나름 자연스럽다.  

다만 불의 잔이 그저 대비되는 등장과 퇴장을 보여줘서 효과적인 맥거핀인 것은 아니다. 맥거핀은 작가가 의도한 대로 사라질 때 역할을 다한다. 불의 잔은 이야기를 촉발하고 존재감을 잃는 과정에서 영화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중 불의 잔은 세 마법학교의 학생들 중 진정한 챔피언을 뽑는 도구다.

최고의 마법사인 덤블도어도 뒤집을 수 없는 마법의 계약으로 맺어졌고 덤블도어가 나이가 차지 않은 학생을 막는 경계까지 설정한 만큼, 불의 잔의 선택은 그 자체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뢰감을 갖는다. 그래서 불의 잔이 혼동 마법에 걸렸는데도, 시합에 참여할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해리를 선택했는데도, 그 누구도 잘못되고 거짓된 현실을 뒤집지 못한다. 

이처럼 진실 대신 거짓을, 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게 만든 후 불의 잔은 자신과 같은 역할을 맡는 캐릭터와 도구들 사이로 사라진다. 예언자 일보의 기자 리타 스키터가 사용하는 속기 깃펜은 해리의 나이, 기분, 심정, 과거사에 이르기까지 리타가 취재 대상으로서 원하는 해리의 모습을 적어나간다.

스네이프 교수도 해리에 대한 원한을 토대로 자신의 연구실에서 폴리주스 마법약의 재료를 빼가는 사람이 해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약인 베리타세룸으로 해리를 협박한다. 불의 잔의 결정 이후 영화 내내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믿고 싶어 하는 거짓은 해리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된다.

그 정점에는 해리가 있다. 그는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인 매드아이 무디를 깊게 신뢰한다. 실제로 무디는 작중 해리의 완벽한 조력자처럼 보인다. 용을 어떻게 대적할지 모르는 해리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주고, 호수에서 숨 쉴 방법을 찾는 해리에게 그 방법을 알고 있는 네빌을 붙여준다. 미로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의 옆에서 격려해주며, 볼드모트와의 결투에서 간신히 돌아온 해리에게 마음을 안정시킬 시간을 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정체를 들킨다. 폴리주스 마법약으로 매드아이 무디처럼 변장한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데이비드 테넌트)'는 볼드모트가 육체를 되찾을 때 필요한 해리의 피를 얻기 위해 호그와트에 잠입한 첩자였다. 사실 해리는 무디가 계속해서 숨겨놓은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나 무디의 사무실에 이상한 울부짖음이 들리는 거대한 가방이 있었던 것처럼 1년 간 그에게서 수상한 점을 수차례 목격한 바 있다. 또한 리들 하우스에서 음모를 꾸미는 볼드모트와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를 꿈에서 목격하고, 덤블도어의 기억을 통해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의 과거사를 깨달았으며, 바티 크라우치가 사망한 것을 봤는데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 해리는 무디가 미로 안에 숨겨둔 우승컵이 속임수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시합 도중 빅터 크룸이 마법에 걸린 것을 봤지만, 시합이 끝난 후에는 무디를 다시 믿고 그에게 몸을 맡긴다. 혼동 마법에 걸린 불의 잔처럼 수상쩍은 사건들을 1년 내내 마주했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렸다. 그 결과 볼드모트는 해리의 피를 얻는 데 성공했고, 그가 새로운 몸을 만들어 귀환하면서 마법 세계에는 악이 되돌아온다.   

'선과 악' 대립구도에 '진실과 거짓'을 더하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과 설정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 불의 잔이라는 맥거핀을 통해 <불의 잔>은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성공한다. 선과 악의 대립 구도에 진실과 거짓의 갈등을 더해 선을 가장한 악, 악처럼 보이는 선이라는 새로운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며 시리즈에 깊이를 더한다.

이후 해리가 볼드모트가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혔다가(<불사조 기사단>), 볼드모트에 맞설 유일한 '선택받은 자'로 추앙받고(<혼혈왕자>), 볼드모트가 마법부를 장악하자 덤블도어의 살인자로 몰리는 것처럼(<죽음의 성물>) 선과 악의 대결은 이제 실재하는 진실과 사람들이 믿고 싶은 거짓을 밝히는 싸움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불의 잔의 활용은 '과학소설과 판타지 소설에게 수여되는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원작의 작품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작을 재해석한 새로운 장면을 더해가면서 관객들까지도 신뢰와 의심 사이에서 헷갈리게 만드는 연출의 공헌도 무시할 수는 없다.

무디가 호그와트에 들어서는 순간 대연회장에서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추가하며 무디의 정체를 암시한 뒤 덤스트랭의 교장인 카르카로프가 불의 잔을 조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선을 돌리는 연출이 대표적이다. 또한 마법 생물로 가득해야 할 미로를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할지가 불분명한 공간으로 각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여러 언론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인 <아즈카반의 죄수>와 피날레를 장식한 <죽음의 성물 2부> 다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트라이위저드 시합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는 강렬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드래곤과의 대결, 호수에서 펼쳐지는 수중 액션, 움직이는 미로 속에서의 우승컵 찾기와 마지막 볼드모트와 해리의 결투까지 마법의 스펙터클은 좀처럼 긴장을 풀 기회를 주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무도회 장면을 통해 조금씩 확실해지는 사랑의 작대기는 일종의 하이틴 영화로서 기대하는 바도 충족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판타지 영화의 전형적인 선악 구도에서 탈피해 향후 시리즈의 중심을 이룰 진실 대 거짓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제시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볼드모트의 귀환이라는 중대한 이벤트를 맥거핀을 통해 영리하게 소화한 결과, 아동용 판타지의 느낌이 강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기점으로 보다 어둡고 현실적인 작품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다양한 마법학교를 통해 영국 이외의 마법세계를 소개하면서 프리퀄 시리즈인 <신비한 동물사전>의 토대를 놓은 점까지 고려하면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시리즈의 특이점으로서 손색없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해리 포터 시리즈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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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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