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바스크어, 투르크어, 타밀어 등이 한국어에서 유래했다거나, 누르하치는 한민족 '김씨'이고 금의 국호는 신라 왕성에서 비롯했다거나 하는 유사역사학, 유사언어학이 일부 언론의 지면을 잠식하고 있다. 한국어가 무슨무슨 언어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가짜동족어 현상에 기대어 대중들을 혹하게 만든다.

사실은 흔한 현상, 가짜 동족어(false cognate)

동족어(cognate)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가까운 언어들에서는 당연히 동족어가 매우 많다. '국제적인'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서 international(e)로 철자가 똑같고, 이탈리아어에서 internazionale, 포르투갈어, 스페인어에서 internacional라서 거의 비슷하다. 라틴어에서 기원한 동족어들이다.

도서관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에서 biblioteca, 독일어에서 Bibliothek, 프랑스어에서 bibliothèque로 거의 비슷하다.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동족어들이다. 세월 따라 변화를 겪어서 발음, 철자, 뜻이 서로 달라진 동족어들도 있다. 겉보기에 많이 달라도 어원을 추적해서 공통 기원이 나오면 동족어라고 한다.

그런데, 어원이 다른데도 오직 우연에 의해 뜻과 발음이 비슷한 단어쌍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단어쌍을 가짜동족어라고 부른다. 동족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동족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스페인어로 초사(choza)는 초가집이란 뜻이다. 영어 덩(dung)은 똥이란 뜻이다. 독일어 비박(biwak)은 야영(非 宿泊)이란 뜻이다. 모카신은 '모카 색깔의 신발'인 것 같지만 미국 선주민의 단어 moccasin에서 왔다. 중국어 니(你)는 너라는 뜻이다. '못생긴'이란 뜻의 프랑스어 moche는 경상도 발음 '모쒱긴'과 비슷하게 들린다. '어이, 이거 봐요!'라는 뜻의 프랑스어 voyon의 발음도 '봐요'와 비슷하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다. 이탈리아어 popò(뽀뽀)는 대변, pipì(삐삐)는 소변인데, 한국 화장실 휴지 이름이 뽀삐인 것도 우연이다.

한국어와 타 언어 사이에만 우연히 비슷한 단어쌍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일본어, 러시아어-중국어, 스페인어-아랍어, 독일어-마오리어.... 어떤 두 언어를 짝지어봐도, 뜻과 발음이 얼추 비슷해 보이는 단어쌍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

가짜동족어에 속지 말자

가짜동족어는 이른바 아재개그를 만들기 좋다. 그리고 외국어 학습자는 쉽게 외워져서 좋아한다. 보리는 barley랑 비슷하네요. 당나귀는 donkey랑 비슷하네요. 스위스 글자는 스위스의 풍경과 비슷해요! 생소한 언어를 배울 때 학습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소하고 유치한 유사성을 갖다 붙일 수 있다.
 
스위스 전통 가옥 샬레(chalet),  스위스 용병 모습과 닮은 스위스 글자 스위스 글자가 스위스 풍경과 닮았다고 너스레를 떨면 한글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재미있어한다. 하지만 재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하다
▲ 스위스 전통 가옥 샬레(chalet),  스위스 용병 모습과 닮은 스위스 글자 스위스 글자가 스위스 풍경과 닮았다고 너스레를 떨면 한글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재미있어한다. 하지만 재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하다
ⓒ 김나희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이런 언어학적으로 상관없는 유사성을 진심으로 믿어버리면 곤란하다. 단어 몇 개의 유사성을 들어 언어의 기원을 주장하는 것은 '가짜동족어'에 넘어간 초보의 실수이다. 아니면 알고도 사람들을 낚으려는 사기꾼이거나.

도상성, 그리고 엄마, 아빠

오리 울음소리는 한국어로 '꽥꽥'이라고 쓰고 영어로 'quack quack'이라고 쓴다. 아니, 왜 이렇게 비슷하지? 혹시 한국어가 영어의 기원인가? 그럴 리 없다. 뜻과 발음의 관계는 자의적이지만, 극소수의 예외가 있다. 즉 뜻과 발음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도상성(iconicity, 비자의성)이 있을 수 있다. '꽥꽥'은 오리 소리를 본따 만들었기 때문에 뜻과 발음이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도상성이 강한 의성어는 당연히 언어마다 비슷하니 언어 간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데 적당한 도구가 아니다.

아기가 처음 내는 소리가 ㅁ, ㅂ, ㅍ 소리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에 해당하는 단어는 어느 언어나 대동소이하다. 엄마, 맘, 멈, 마망, 마마, 움무... 아빠, 파파, 빠빠, 압바..... 다 비슷하다. 즉, 엄마, 아빠 단어가 비슷하다는 건 언어 근연관계의 근거로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엄마, 아빠 단어를 근거로 들어서 모 언어가 한국어 기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면,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책을 덮고 표지에 커다랗게 빨간색으로 X를 그어놓으면 된다(바스크어 ama, 타밀어 amma가 엄마, 타밀어 appa가 아빠라는 이유로 바스크어-한국어, 타밀어-한국어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글은 더 이상 읽지 않고 '믿고 거를' 수 있다).

언어 간 근연관계를 추적할 때 의성어, 엄마, 아빠는 제외하고, 손, 발 눈, 코, 입, 딸, 아들, 물, 해, 달, 숫자 이름 같은 기본 단어부터 시작한다. 뿌리가 같으면 기본 단어들이 같을 수밖에 없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유사성이 많아 보여도 다른 어족으로 간주되는 것은 기본 단어들이 영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 단어들은 겹치지 않는데 생뚱맞은 몇몇 추상개념어만 들고 나와서 유사성을 주장하면 역시 '믿고 거를' 수 있다.

유사언어학의 추종자들은 큰 비밀을 발견한 것마냥 무슨 언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래서 뭐? 주어-목적어-동사 순서의 언어는 꽤 많다. 우선 주어는 거의 항상 맨 앞에 있으니, <목적어-동사> 아니면 <동사-목적어>, 선택지는 이렇게 둘 뿐이다. 한국어처럼 목적어-동사 순서인 언어들도 많은 것이 당연하다. 라틴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에서도 동사 앞에 목적어가 나올 때가 있다. - Je(저는) vous(당신에게) le(그것을) donne(줘요).

하지만 한국어와 프랑스어의 또다른 문장들의 경우에는 어순이 달라진다. 이렇게 다른 문장들을 확인하고 나면 한 문장의 어순이 같다고 해서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수긍하고 미련을 버리고 넘어가야 한다. 미련을 못 버리면 망상의 시작이다. 더 나아가 망상의 근거를 끌어모으기 위해 'je'와 '저'의 발음이 비슷하니(그렇다. 이런 단어쌍이 가짜 동족어다) 같은 어원에서 나왔고, 한국어가 다른 언어들의 조상 언어라고 생각하면 위험해진다.

억지 연상법으로 연결시킨 단어들

바스크어, 타밀어, 투르크어 등이 한국어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독버섯처럼 계속 자라나는 이유는 국내에 매섭게 검증할 전문가층이 얕은 소수언어를 대상으로 해서다. 한 마디로 만만해서 그렇다.

acknowledge는 '아쿠! 놀랬제', bastard는 '밭터아들' 즉 밭에서 얻은 사생아, bud는 '부드'러운 봉오리, Britain은 '불에 탄', England는 '잉걸불을 쓰는 나라'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영어가 한국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면, 이런 억지 연상법의 가짜동족어는 한국의 중학생부터 조목조목 비판하기 시작할 것이다. 언어학, 영어 전공자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반인들이 말끔하게 논박할 것이다.

하지만 소수언어의 전공자는 매우 적기 때문에 몇몇 연구자가 그 많은 낭설들을 상대할 수 없고 따라서 그 빈틈에 가짜동족어를 내세운 유사언어학이 자라난다. 한편 한국어 자체도 주요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로 된 유사언어학의 주장은 한반도 밖으로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유사언어학,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에 의해 우리의 후손으로 '점지'된 외국인들이 미처 그 주장을 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어로 된 억지 주장은 덜 알려지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덜 된다.

그러니까 바스크인들이 남한에서 떠도는 설에 대해 알게 되어 '쟤네, 뭐니?' 하고 반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거꾸로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사람들이 '우리 언어가 한국어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면, 한국인들이 그 주장을 오가며 얻어듣게 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것이다. 그 주장에 어이없어하며 반박하는 건 둘째 치고 예컨대 '코코파어(Cocopah)가 한국어의 기원이다'라고 코코파어로 쓰인 글이 한국인 눈에 띨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코코파어는 남미의 소수언어다.)

스페인 신문이 한국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유 

한국어로 쓰인 주장을 바스크 지방에서 알게 되어 논박할 가능성이 낮다는 유리함 위에 바스크족이 고조선의 후예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페인에도 이 소식이 전해져 스페인 신문이 이를 반박하는 진지한 기사를 냈다.

'한국인의 후손 바스크인: 유사역사학이 통제 불가능하게 될 때'(https://www.elconfidencial.com/cultura/2021-01-24/vascos-descienden-coreanos-pseudohistoria_2919167/)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의 한 일간지가 실은 칼럼의 내용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유사역사학적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바스크인들이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미국 선주민이 한국인의 후손이라거나, 한국인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부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고조선은 만주를 중심으로 한 거대 제국이었고 전 세계에 퍼진 문화와 문명의 단일한 원점이고, 한국어가 핀란드어, 터키어, 몽골어, 일본어 등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유사역사학의 단골 메뉴다. 이번에 바스크어가 추가된 것 뿐이다.

한국어가 바스크어의 기원이기는커녕, 한국어는 세계에서 같은 계통의 언어가 하나도 없는 비교언어학적 고립어다. 그리고 구한말 이전에는 한반도 외부에 한국어의 존재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설령 여러 지역 단어의 어원을 한국어가 제공했다 한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어떤 영어 단어의 어원이 새로이 그리스어로 밝혀진다 한들, 그게 현재 그리스의 국력(?)에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무 상관이 없다.

백 번 양보해서 한국어가 어떤 언어와 공통 기원이라고 하자. 이건 한국어의 조상 언어와 그 언어의 조상 언어가 뿌리가 같다는 뜻이지, 한국어가 그 언어의 직접 조상이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것이 침팬지가 인간의 조상이라거나 인간이 침팬지의 조상이라는 뜻이 아닌 것처럼. 어차피 모든 인류의 피는 섞여 있고 모든 문화는 짬뽕이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까지 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한족의 영향권이 중국 대륙 전체로 넓어지고 거란어, 여진어 등은 사멸해가는 동안, 한민족은 그래도 한반도 안에서라도 언어를 유지해가며 심지어 한글이라는 독자적인 문자체계마저 갖췄고, 21세기 들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어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중이라는 서사가 차라리 낫지 않지 않을까. 인도 정규교육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 채택, 국제특허협력조약에 따른 국제공개어로 한국어 채택, 한국어 학습자 증가 등의 객관적 사실에만 집중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