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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에 대한 본격 견제가 시작됐다. 지난 2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이낙연 대표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본소득을 정면 비판한 것을 계기로, 2월 4일 정세균 총리가 외신 보도를 통해, 또 2월 8일에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을 연속 비판했다. 그 와중에 이재명 지사도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여당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쟁이 벌어지는 형국이다(임종석을 여당 대선주자로 봐주어야 하는지는 논외로 하자).

한국에서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일이 드문 점을 생각하면 이 논쟁은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징표 같아서 일단 마음이 흐뭇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공방에는 부정확한 인식이나 무리한 주장이 섞여 있어서 자칫 논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동남권 신경제엔진 추진전략 발표 및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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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점 조준 실패

이낙연 대표가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을 하는 곳이 없다.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라고 평가한 것이나, 정세균 총리가 "기본소득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지구상에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를 성공적으로 시행한 나라는 없다"라고 지적한 것은 기본소득의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온 오발탄이다.
 
이 대표와 정 총리는 기본소득 개념을 모든 국민에게 충분한 금액을 똑같이 지급하는 현금 급여로 잡았음이 틀림없다. 탐구가 부족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므로 이재명 지사의 정책이 비현실적임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본소득을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빈곤선 이상으로 살기에 충분한 월간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는, 이재명 지사가 제시한 장기 목표를 달성하려면 317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공박했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기본소득 주창자들 가운데 그렇게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바로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오히려 범주적 기본소득이나 부분적 기본소득으로 작게 시작해서 국민의 동의가 형성되면 범위도 확장하고 금액도 늘리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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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적·부분적 기본소득

범주적 기본소득이란 지급 대상을 몇 개의 인구 범주에 한정하는 급여로서 보편적 아동수당과 보편적 기초연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제도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분적 기본소득은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부터 지급하기 시작하자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예상했던 효과가 나타나면 액수를 더 늘리고, 액수를 늘리는 경우 역효과가 나타날 것 같으면 거기서 멈추면 된다.

전 세계 기본소득 진영의 최고 이론가 필리페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는 완전한 기본소득을 바로 도입할 경우 소득 분배에 큰 충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며, 현실적인 대안은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과거에 공공부조나 사회보험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도 지급액은 현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전 세계 기본소득론자들이 대부분 범주적 기본소득과 부분적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창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낙연 대표, 정세균 총리, 임종석 전 실장의 이재명 비판은 과녁을 한참 벗어났다고 해야 한다.

사실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활용하지 않았지만, 이낙연 대표가 국회 대표 연설에서 밝힌 신복지체제 구상안이야말로 범주적·부분적 기본소득의 훌륭한 적용 사례에 해당한다. 아동·청년·성인·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생애주기별 소득지원을 언급하면서 아동수당을 만 18세까지 확장하고 청년들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낙연표 신복지체제의 구체적인 구상안으로 알려진 한 문건(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작성)에는 '2025년까지 생애주기별로 만 12세까지 아동수당 확대 및 인상, 만 20~34세 보편적 청년수당 도입, 만 50~64세 보편적 중장년수당 도입, 기초(장애인) 연금 유지 또는 인상' 등의 방안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점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 이재명 지사가 이와 유사한 내용의 생애주기별 배당 지급을 이미 정책 공약으로 제안했었다는 사실이다. 이 지사는 배당이라는 용어를, 이 대표는 수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이 다를 뿐이다. 이재명 지사가 이낙연 대표의 구상을 두고 경기도가 준비 중인 '기본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항변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검찰 자진출석하는 임종석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30일 오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자진출석하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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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정세균·임종석의 기본소득 비판은 허수아비치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기본소득론자와 이재명 지사는 세 사람이 비판 대상으로 삼는 유형의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한 이낙연 대표의 주장에는 일말의 근거가 있다.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론에서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판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존 복지제도를 대체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우파 기본소득론자를 제외하면, 기본소득으로 기존 복지제도를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이재명표 기본소득의 문제점

그렇다면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는 문제가 없을까? 이 지사의 주장에도 몇 가지 결함이 발견된다. 

첫째, 이 지사는 먼저 기본소득 지급액을 정책 목표로 제시했는데, 이는 재원의 정당성이라는 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임종석 전 실장이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 공정하고 정의롭냐는 문제의식을 떨칠 수가 없다"라고 토로하고,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이 지사의 기본소득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데는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 최근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단기에는 1인당 연간 50만 원, 중기에는 100만 원, 장기적으로는 600만 원을 지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들을 달성할 재원 확보 방안을 각각 제시했다.
 
이렇게 기본소득 지급액을 먼저 설정한 후에 소요 재원을 계산하는 방법은 다수의 기본소득론자들이 범하는 오류로, 불가피하게 정당성 논란을 수반한다. 정식으로 하자면, '정당한 재원 발굴 ⟶ 예상 수입 계산 ⟶ 1/n씩 분배'의 순서를 따라야 함에도, 거꾸로 '기본소득 지급 목표액 설정 ⟶ 소요 예산 계산 ⟶ 활용 가능한 재원 확보'의 순서를 따름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8일 오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제 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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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모인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은 대체로 기본소득을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배당으로 보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들은 토지, 환경, 빅데이터 등 모든 국민이 똑같이 권리를 갖는 자원에서 생기는 소득을 공적으로 환수해 똑같이 배당하자고 주장하는데, 여기에 반대할 명분을 찾기는 어렵다. 이재명 지사는 왜 재원 정당성 문제를 불식할 수 있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공식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논의를 전개하지 않았을까?

둘째, 이재명 지사는 소요 재원 확보 방안으로 증세를 제안하지만, 이를 장기 과제로 삼아서 최소한 10년 동안은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증세 논의와 철저하게 선을 긋는 이낙연 대표보다는 낫지만, 그것을 먼 미래의 과제로 미룬 것은 큰 실책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수 있는 세월 아닌가?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사람이 자기 임기 중에 하지도 못할 일을 과제로 제시한 점도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느 틈엔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증세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복지국가 실현과 증세를 과감하게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약 10년 사이에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정책에 큰 퇴행이 있었던 셈이다. 

이 지사는 증세 대상으로 탄소세와 토지세, 그리고 로봇세, 빅데이터세를 제시했는데, 탄소세와 토지세는 각각 기후 악화를 방지하고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유력한 수단이고, 로봇세와 빅데이터세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 분배체계 구상에서 중요한 대안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의 미래와 관련해 기본소득 자체보다는 이 세금들을 도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는 이런 중대한 정책 수단들을 단지 기본소득 재원 확보용으로만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대안, 변동형 기본소득제

'정당한 재원 발굴 ⟶ 예상 수입 계산 ⟶ 1/n씩 분배'의 순서를 따라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해마다 지급액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 어떤가? 이 방안은 이미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1인당 기본소득 지급액이 고정되지 않고 영구기금의 수익률에 따라 해마다 변한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필자는 이를 '변동형 기본소득제'라 부르고 싶다.

기본소득 지급액을 미리 결정하지 않고, 일단 정당한 재원을 적절한 방법으로 확보한 후에 해마다 그 재원으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모든 국민에게 1/n씩 나눠 지급하는 변동형 기본소득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초기에 1인당 기본소득 금액이 적어질 수 있다는 문제는 생기겠지만, 기본소득으로 일거에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 

임종석 전 실장 같은 사람이 기본소득에 대해 공정과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적지 않은 국민이 퍼주기 아닌가 하고 느끼는 것을 방지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방법은 우리 사회의 근본 질곡을 해소하고 미래의 진로를 바로잡는 수단과 연계될 수 있다. 그러니 변동형 기본소득제는 개혁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묘책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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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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