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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부천 소신여객 지회장이기도 한 김헌수씨에 따르면, 과거 노조의10년 간의 투쟁으로 배차시간 압박으로 신호위반을 하는 관행이 사라질 수 있었다고 한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경기지부장 김헌수 부천 소신여객 지회장이기도 한 김헌수씨에 따르면, 과거 노조의10년 간의 투쟁으로 배차시간 압박으로 신호위반을 하는 관행이 사라질 수 있었다고 한다.
ⓒ 김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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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꿈이요? 가정형편이 안 좋아서 희망보다는 어떻게든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도 실내디자인에 관심이 좀 있었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경기지부장 김헌수(49)씨. 2002년,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겨울방학에 대입 원서 값을 마련하기 위해 부천의 한 프레스 공장에 취직했다. TV케이스를 찍어내는 회사였다. 이 공장에서 헌수씨는 처음 '노동조합'이란 것을 경험했다.

어느 날, 그 큰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기계들이 '올스톱'되었다. 노동조합원들이 회의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깜짝 놀란 그는 회사 식당에 올라가 회의 모습을 구경했다. 난생처음 보는 노조회의 모습은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짧은 공장생활을 마치고, 어렵게 마련한 원서비로 대입시험을 치른 그는 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군대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IMF가 터졌다. 전체적으로 경기가 안 좋았지만, 디자인 쪽은 더욱 나빴다. 당시 취업해 일을 하고 있었지만,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나마 들어갈 수 있었던 자리는 영업직이었는데, 술을 전혀 못 하는 헌수씨에겐 곤욕이었다. 그때 헌수씨의 이모부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라며, 버스 기사 일을 소개했다. 그렇게 부천의 소신여객에 입사해 일을 시작했다. 입사 당시만 해도 그는 이 일을 길게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버스 기사에 대한 인식도 안 좋고, 솔직히 사회적으로 '명예'라는 게 없는 직업이었으니까요."
  
"시민들에게 친절하고 싶어도 노동 강도가 강해서..."
  
그러나 헌수씨의 뜻대로 '조금만 하다가 그만두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그는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노동조합 대의원'이 됐다. 그리고 노조활동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노조에 가입하고, 노동자들을 위해 이것저것 바로잡아 보려고 하니, 오히려 노조간부들과 사측이 한 몸이 되어 현장 노동자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헤게모니가 완고하고 탄탄해서 깰 수 없었죠.

그래서 2011년 7월, 법적으로 복수노조가 가능해진 뒤 민주노조를 따로 만들었는데 해고됐어요. 그때 조합원으로 28명이 함께 했는데, 2년 후인 2015년 12월 복직하고 보니 다 나가고 3명 정도만 남아있었어요."


그가 일하는 부천 소신여객은 경기도 버스 회사이다.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 등 6개 광역시와는 달리 경기 버스는 지자체로부터 인건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경기 버스는 10년 가까이 적게는 3천억에서 5천억까지 적자를 내고 있기에 어려움은 크다. 광역시에 비해 노선 거리가 길고, 손님이 없는 외진 곳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경기 버스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퐁당 근무'를 하고 있어요. 격일제 근무로 하루 20시간 일해요. 그중에서 실제 버스 운행 시간은 15~16시간이고 나머지는 세차, 정비, 식사 시간인데요.

장시간 노동을 하다 보니 노동자의 건강과 버스 운행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어요. 이 점은 경기도가 다른 시·도에 비해 가장 열악한 것 같아요. 격일제 근무를 하면 하루는 자면 된다지만, 인체가 그게 가능하지 않잖아요? 쉬는 날 깊게 오래 잔다는 게 불가능하죠.

불면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충분한 수면을 못 취하니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졸음운전, 집중력 저하 같은 위험이 있고, 이런 위험은 당장 시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고요. 한시바삐 하루 8시간 일하는 교대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버스 기사들은 직업 특성상 여러 가지 건강상의 위협을 안고 있다.

"긴장상태로 온종일 앉아서 일하기 때문에 디스크 같은 근골격계 질환도 많고, 화장실 사용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 질환도 잘 생기는 편이에요. 이런 것들 외에도 아까 말씀드린 근무 조건 때문에 동료들에게서 늘 피로가 누적된 모습을 겉으로도 볼 수 있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 회사에서 제시한 촉박한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 위반도 많이 했어요. 요즘에는 10년간의 노조 투쟁 덕에 많이 바뀌었죠. 그래도 신호는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버스 기사들이 불친절하다'는 경기도 버스 고객들의 불만도 하루 20시간 근무와 관계있다고 했다.

"시민들에게 친절하고 싶어도 노동 강도가 강해서 그렇지 못한 점이 늘 아쉽죠."

실제로 준공영제 실시로 주 40시간 근무하는 6개 광역시의 버스 서비스에 대한 시민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그에 비해 경기도 버스 기사들은 주 52시간 근무가 기본이다. 그러나 12시간 더 일해도 준공영제를 하는 광역시 기사들보다 임금은 훨씬 적다.

그 때문에 대다수 기사가 연장근무로 주당 68시간 노동을 하면서 생활임금을 보존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면서, 연장 근무가 가능한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그마저도 못하게 된 지금, 이들은 전보다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시내버스는 '공공재', 완전 공영제로 시민의 일상과 안전 보장해야
  
"버스는 공공재이기에에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민간회사에 맡겨둘 수 없으므로 '시내버스 공영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김헌수씨와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 2020년 11월 17일 민주버스 소신여객 지회 개소식에서 연설하는 김헌수씨 "버스는 공공재이기에에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민간회사에 맡겨둘 수 없으므로 "시내버스 공영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김헌수씨와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 민주버스 소신여객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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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현장 노동자들만 바라보고 활동했는데, 노조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결국은 정치, 법, 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개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노조 활동뿐 아니라 정치적 노력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버스 회사도 이윤 사업이라지만, 사실 버스는 공공재잖아요? 대중들, 특히 자가운전을 할 수 없는 어린이나 노인 같은 교통 약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이잖아요.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민간 회사에 맡겨둘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요. 시내버스 공영제로 가야 합니다."


광역시처럼 준공영제, 더 나아가서는 완전공영제를 도입해 근무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당장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가능한 개혁이라도 해나가야 한다.

준공영제가 실시되는 광역시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직장이라는 인식 때문에 버스 기사들의 자존감은 높아졌지만, 시민 의식은 여전하다. 지난해 봄, 운전자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법에 제정된 이후부터 폭행과 욕설은 줄었지만, 술 한 잔 마시고 반말로 시비를 걸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우는 아직도 있다. 

"지금 우리는 대중교통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질 좋은 대중교통 서비스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대중교통, 시내버스는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공공의 삶을 위한 자산이기에, 시내버스 완전 공영제가 꼭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사들의 과로로 인한 부주의로 승객들이 다치는 사고들도 막을 수 있고요."

시민의 일상을 받쳐주는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당장 우리 모두의 삶도 멈출 수밖에 없다. 소중한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정적 삶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도시 전체의 건강과 안전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태그:#민주버스, #소신여객, #경기 버스, #시내버스 공영제, #노동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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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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