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역사에서 록키 마르시아노는 아주 특별한 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20세기 초중반 활약했던 그는 빼어난 복서임은 분명했겠으나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임팩트를 줬다고 보기는 힘들다. 엄청난 파괴력이나 경쾌한 스탭을 가졌던 것도, 테크닉의 정점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헤비급 치고 작은 키에 리치까지 짧아 신체적 이점마저 보기 힘든 백인 복서였다. 유태인 명트레이너 찰리 골드만은 이러한 록키를 혹독하게 트레이닝 시켜 승부처에서 아주 강한 선수로 만들어낸다. 선수의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파이팅 스타일을 완성시킨 것이다.

맷집과 체력에 더불어 근성까지 좋았던 록키는 이른바 버티는 복싱에 매우 능했다. 본인보다 더 빠르고 기술 좋은 선수를 만나 고전하더라도 끝까지 페이스를 지켜나가며 결국 경기를 뒤집어버렸다. 압도하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이겨버리는 승부를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승부사적 기질과 풍부한 경험도 한몫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록키에 대해 과대평가된 선수라는 혹평도 적지 않다. 어렵게 이긴 빅네임의 상당수는 전성기가 지난 노장들이었으며 당시 인기 좋은 백인 헤비급 스타라는 점에서 판정의 덕도 적지 않게 봤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작은 체구의 백인 복서가 스피드, 탄력, 유연성 등을 두루 갖춘 흑인 복서가 가득하던 헤비급 무대서 무패로 은퇴했다는 것 하나만큼은 높은 평가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록키가 세운 49연승은 경량급의 슈퍼스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건드리기조차 쉽지 않은 불멸의 기록 중 하나였다. 신체적, 기술적으로 상향평준화가 거듭되고 있는 현대 복싱 거기에 범위를 헤비급으로 좁히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까지 MMA무대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파이터를 꼽으라면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까지 MMA무대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파이터를 꼽으라면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 M-1글로벌 코리아 제공

 
러시아산 무패 괴물
 
최근까지 MMA무대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파이터를 꼽으라면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독수리(The Eagle)'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2·러시아)가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질적, 양적으로 엄청난 선수층을 자랑하는 라이트급에서 최근 수년간 명실상부한 '1강'으로 위세를 뽐내왔다. 자타공인 MMA 라이트급 역대 최강자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는 전적이 말해준다. 누르마고메도프는 29번을 싸워오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압박형 그래플러 이미지가 강하지만 판정승은 10회 밖에 되지 않는다. 공격적 경기운영을 통해 8회 넉 아웃(28%), 11회 서브미션(38%) 등으로 승리 방식 또한 다양하게 가져갔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커리어를 쌓아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패로 복싱계를 떠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비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누르마고메도프의 무패는 전적은 물론 경기 내용마저 압도적인 상태에서 만들어졌다. "내 패턴은 상대방을 철저히 때려 부수는 것이다. 그를 납작하게 만들고, 그를 포기하게 하고, 그를 망가뜨리게 한다. 이것이 나의 스타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그라운드 플레이를 보여 줬다.

누르마고메도프는 전형적인 압박형 그래플러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한 덕에 기본기가 탄탄하다. 완력도 체급 최고 수준이라 라이트급에서 폭군 수준의 그래플링을 과시하고 있다. 타격가, 주짓떼로는 물론 같은 레슬러조차 그라운드에서 굴려버릴 정도로 급이 다른 파워 그래플링을 구사한다.

그는 과거 클래식 시절의 레슬러들처럼 데미지를 각오하고 정면에서 파고들지 않는다. 인아웃은 물론 사이드 스텝까지 좋고 경기를 치를수록 타격까지 발전, 다양한 레퍼토리로 상대의 방어 시스템을 흔들어놓는다. A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하면 B로 들어가고, B를 대비하면 C, D로 공략하거나 A로 다시 허를 찌른다.

레슬링, 삼보, 유도 등 본인이 수련한 다양한 베이스를 고르게 섞어가며 상대를 그라운드로 끌고 간다. 싱글 레그, 더블 레그 태클을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가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으며 태클거리도 길다. 상체가 서로 맞닿은 상태에서는 다양한 다리 기술과 중심 흔들기 등 유도식 기술이 빛난다.

가장 무서운 것은 기술, 전략이 잘 통하지 않아도 힘을 통해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경기에서는 타격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보이며 약점이 없는 완전체 그래플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상대는 육체적 데미지는 물론 멘탈까지 산산이 깨져버리기 일쑤다.
 
 
 과연 누르마고메도프는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돌아올수 있을까?

과연 누르마고메도프는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돌아올수 있을까? ⓒ M-1글로벌 코리아 제공

 
은퇴선언,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장 강하고 압도적인 파이터가 체급을 이끌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UFC 주최측의 고민이 깊어진다. 누르마고메도프는 '더 하이라이트(The Highlight)' 저스틴 게이치(32·미국)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동기부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난해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버지를 잃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싸움에 큰 의미를 못 느끼겠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르마고메도프는 더 이상 MMA무대에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FC 주최측에서는 누르마고메도프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32·아일랜드)마저 무너진 상태서 누르마고메도프 만큼의 상품성과 기량을 겸비하는 선수는 당분간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날이 규모가 커지고 있는 또 다른 단체 M-1글로벌 또한 자신들의 마케팅에 누르마고메도프의 이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가 UFC에서 활약하기 이전에 본인들의 무대에서도 최고 기량의 경기를 보여 준 바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3일 M-1 데뷔전에서 샤블랏을 상대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전설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한 펀치력을 주무기로 가지고 있던 샤블랏은 11승 3패 1무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언제나 그랬듯 누르마고메도프는 개의치 않았다. 공격적 그라운드 파이팅을 통해 샤블랏을 바닥에 눕혀놓고 암바, 삼각조르기를 되풀이하다가 1라운드 4분 36초 만에 암바로 경기를 끝냈다.

누르마고메도프는 거쳐간 단체마다 그야말로 압도적 경기력으로 체급을 초토화시켜버렸다. 쟁쟁한 파이터들이 득실거리는 러시아 출신 중에서도 전설중의 전설을 언급하면 아마레슬링 헤비급의 폭군 '영장류 최강자' 알렉산더 카렐린과 MMA 헤비급 전설 '60억분의 1'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가장 먼저 언급된다.

누르마고메도프의 업적은 이제 그들과 비견될 정도로 높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비급 알렉산더 볼코프, 페더급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 등 또 다른 러시안산 괴물들이 UFC 정상을 노리고 있지만 누르마고메도프의 위상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러시아 파이터의 강함을 세계에 떨친 바 있는 누르마고메도프의 향후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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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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