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암행어사-조선비밀수사단>(극본 박성훈·연출 김정민)은 조선시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비리에 맞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어사단의 통쾌한 활극을 다룬 퓨전 청춘 사극이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홍보 부족, <펜트하우스>같은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 등으로 인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새해들어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잇달아 경신하고 있는 <암행어사>는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1월 26일 기준) 최근 방송된 12회의 시청률이 12%까지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암행어사>의 매력은 이른바 '한국형 히어로'가 주는 판타지에 있다. '암행어사(暗行御史)'는 말그대로 신분을 감추고 여러 지방을 순행하면서 부패하거나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고을 수령이나 탐관오리들을 잡아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별감찰관이다. 조선시대에 실제했던 관직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부패하거나 이권과 결탁한 우려가 적은 충직하고 성실한 인물들이 주로 암행어사 직을 맡았다. 사회악을 물리치는 영웅이 평소에는 신분을 숨기고 백성들의 곁에 머무르는 친근한 신존재라는 점에서도 '영웅' 이미지를 입히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현대판 <암행어사>는 젊은 주연 배우들과 단순명료한 권선징악적 메시지, 트렌디한 활극적 요소들을 부각시킨 '젊은 사극'을 표방하며, 역사적 소재를 다룬 시대극에 따라붙는 부담감을 영리하게 피해갔다. <암행어사>는 메인 빌런인 김씨 세도가나 천주교 등 극중 설정을 감안할 때 대체로 19세기 세도정치기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모두 픽션이다. 극중 암행어사의 권한이나 사건 처리 방식 등도 실제 역사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 비슷한 퓨전사극을 표방한 <철인왕후> 등에 비하여 사극에 따라붙는 고증 논란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유연한 묘사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성이겸(김명수), 홍다인(권나라), 박춘삼(이이경), 성이범(이태환), 강순애(조수민) 등 의 <암행어사>의 주요 출연진은 모두 2030세대의 신세대 배우들이다. 등장인물들이 어사단 활동을 통하여 기성체제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이나, 실제 배우들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기력이나 케미로서 발전해가는 모습은 모두 한편의 성장드라마를 연상하게 한다.

정의로운 선비였던 성이겸은 한때 부패한 세상에 환멸을 느껴 궁중에서 내관들과 몰래 노름이나 벌이며 시간을 허비하는 등 방탕한 삶을 살다가 우연히 암행어사의 직책을 맡게되면서 다시 각성하게 되는 인물이다. 홍다인은 역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왕족 휘영군의 외동딸로서 다모로서 신분을 감추고 살다가 어사단에 합류하면서 아버지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성이겸의 이복동생으로 출중한 무예실력을 가지고도 음지의 의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성이범, 성이겸의 첫 정인이었으나 탄압받는 천주교도이자 힘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고초를 겪게되는 강순애 역시 기성 사회 구조의 한계 속에서 좌절하는 '청춘'들로 묘사된다. 이들이 잘못된 세상에 억압받고 시련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젊은이들의 의지와 성장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쾌한 유머와 긍정적인 희망을 잃지않는 모습은 사극임에도 트렌디 드라마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암행어사> 속의 빌런들은 주로 부패한 관료나 지방 수령들이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양민들을 노비장에 팔아 넘기는가 하면, 투전방을 소유한 양반 일가를 살해해 뒷돈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이밖에도 부녀자 겁탈과 양곡 수탈, 각종 불법 뒷거래까지 범죄행위도 다양하다. 또한 그들의 배후에는 정치 권력의 중심에서 정치 보복, 음해, 살인 등을 일삼는 거대한 '흑막'들이 있다. 견제와 감시를 받지않는 권력이 부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암행어사처럼 백성의 고통에 공감해주고 부패한 권력자들을 대리 응징해주는 영웅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오늘날 현대의 국민들에게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암행어사>는 편성과 타이밍 상으로도 운이 좋았던 작품이다. KBS 월화드라마는 2019년 <동백꽃 필무렵> 이후 오랫동안 침체기였고, <암행어사>의 시청률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펜트하우스>의 종영 직후부터였다. 현재 <암행어사>과 비교할만한 특별한 경쟁작도 없다. 드라마의 인기와 별개로 극의 완성도 면에서 호불호도 갈린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암행어사>의 성공에는 이러한 대진운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암행어사>는 부담없이 가볍고 유쾌하게 즐기기에는 무난하지만, 한편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무너지는 이야기 전개의 날림성과 캐릭터의 활용도 면에서는 아쉬움도 남는 작품이다. 물론 <암행어사>는 초반부터 코미디와 액션이 중심으로 이룬 어드벤쳐 활극에 가깝고, 치밀한 복선이나 반전이 있는 정통 수사극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소한의 개연성마저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사단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단순한 우연이나 충동적인 우격다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 이겸은 정의로운 데다 문무를 겸비한 사기 캐릭터에 가깝지만, 정작 극중에서는 가벼운 행동 때문에 이런 면모가 돋보이지 못한다. 도승지가 '문제아'에 불과했던 이겸을 뜬금없는 암행어사로 발탁하여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를 맡겨야 하는 당위성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번째 사건인 '비밀 가면' 모임에 침투하는 과정에서는 굳이 여장까지 하면서 힘들게 잠입했던 이겸은 우연히 붙잡혀 온 순애를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분노에 폭주하여 어사출도를 외쳤다가 순애도 범인도 모두 놓쳐서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 또한 어사단이 섣부른 행동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오히려 동생 이범이나 왕실 무예별감 최도관 같은 인물들이 튀어나와 구해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히로인인 홍다인은 11회에서 별다른 대책도 없이 부친의 비밀을 알고있는 관찰사(중견배우 김명수)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섣불리 드러냈다가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민폐 캐릭터가 됐다. 정작 홍다인을 구하기 위한 어사단의 대책이란 것도 군졸과 망나니로 침투해서 관찰사를 인질로 잡는다는 무모한 작전이었다. 어사단이 관찰사에게 다가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관아를 빠져나갈 동안, 지켜보던 수많은 군졸들은 내내 멀뚱멀뚱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제작비가 부족한 재연극이나 아마추어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엉성한 연출과 설득력없는 캐릭터는 극의 몰입감을 깨뜨린다.

이밖에도 휘영군의 무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증거를 빨리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산보하듯 뒷짐지고 걸어다니는 성이겸이나, 죄인으로 수배당한 상황에서 눈에 띄는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어사단의 모습 등 디테일적인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극적 전개는 아쉬운 요소가 많다.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내는 것과, 진지하지 못해 무성의하게 까지 느껴지는 연출은 분명히 의미가 다르다.

<암행어사>는 주연진보다 오히려 조연진이 더 화려하다. 손병호나 김명수, 최종원같이 중량감있는 명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놓고도 큰 매력이나 비중이 없는 단순한 일회용 빌런 정도로 전락시킨 것도 아쉽다. 연기 경력이나 사극 경험이 짧은 젊은 배우들이 주축이다보니 복잡한 감정변화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단조로운 캐릭터 연기로 흡인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주역 5인방중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연기를 구사하는 것은 막내인 순애 역의 조수민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연기하는 순애 캐릭터는 초반부 이겸-이범과의 반짝 삼각관계 구도가 정리된 이후로는 굳이 줄거리에 더 이상 섞여야 할 개연성없이 겉도는 모습을 주고 있다는 것도 캐릭터 낭비에 가깝다.

<암행어사>는 어느덧 휘영군과 왕실의 비밀을 중심으로 한 클라이맥스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사이다같은 활극과 유쾌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앞세워 호평을 받았지만 이제는 벌여놓은 설정들을 정리하고 좀 더 집중력있는 전개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   

중반부 이후 갈수록 엉성하다 못해 유치한 설정과 안이한 상황 묘사는, 그동안 <암행어사>가 공들여 구축해놓은 이야기의 매력까지 용두사미로 만들 수도 있다. <암행어사>는 과연 남은 에피소드 동안 시청자들을 위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만한 또다른 한 방이 남아있을까.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한국형히어로 퓨전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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