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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방부,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3일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방부,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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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남영신 총장님, 남 총장님, 남 총장, 총장
선배님, 남영신 선배님, 남 선배님, 남 선배, 선배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군 조직안에서 불릴 수 있는 가능한 호칭들이다. 누가 이 호칭 중 하나로 육군참모총장을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흥미롭지 않은가?

<한국일보> 고종석 편집위원이 2000년 6월 7일 <한국일보>에 "민주주의 진전 따라 경어체계도 사라질까"라는 글을 게재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일부만 맞다.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더 공고해지면 언젠가 경어체계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게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육군 주임원사들이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의 회의 중 발언을 문제 삼아 "육군총장이 인격권 침해"를 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고 한다. 문제가 된 발언은 다음과 같다.

"나이로 군 생활을 하는 사람은 용서가 안 됩니다."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을 쓴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을 쓰는 문화는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으며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와 한국 사회의 비민주적 특성

언어는 우리의 사회생활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본 수단이며, 의사소통 상황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와 결합한다. 우리는 자신과 상대방의 사회적 관계를 암시하는 다양한 종류의 언어적 선택을 끊임없이 한다. 그러한 선택들 중 하나가 호칭과 공손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절한 호칭이나 공손법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 이유는 언어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표하는 것이 실로 다양한 사회적 요인과 콘텍스트의 규제를 받으며 복잡하게 얽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장애를 초래한다.

이번 논란에서 보았듯이 이 발언은 우리 문화에서는 지위나 계급보다 앞서는 게 연령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장교들이 계급이 높다고 나이 많은 부사관들에게 반말하는 것은 대화만이 아니라 군대 내의 관계에 장애를 주어 결국에는 군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위가 나보다 낮더라도 나이가 나보다 많으면 그에 적절하게 언어적으로 대접을 해야 한다. 언어적 정중함이다. 사실 나는 이 연령에 따른 대접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사회문화와 주고받는 영향의 예로써 공손법과 신분 질서의 관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002 월드컵 때 우리나라의 국가대표팀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 간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창조적인 플레이에 방해가 되며,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판단하에 선수들 간 '형'이라는 호칭 사용을 금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고 존댓말 사용을 금하였다고 한다.

이천수 선수가 이를 제일 잘 따랐고, 당시 최고참 중 하나인 홍명보 선수를 "명보"라고 불렀다는 후문이 있다. 홍명보 선수는 이천수 선수의 하늘 같은 K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물론 그 하나에 의해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4강에 올랐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언어가 인간 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구속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분명 더 민주화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종석 편집위원이 20여 년 전 했던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것에 맞추어 한국어의 경어체계가 지금보다 덜 복잡해질 가능성은 있으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진전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말이 유효하다.

그는 한 언어의 경어체계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짜임새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언어와 사회가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라면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와 한국 사회의 비민주적 특성 사이에는 일정한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고종석은 실상 한국어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과 자신 사이의 위계를 설정하기 전에는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언어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여러 가지로 그 위계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이를 묻고, 학번을 묻고, 고향을 묻고, 출신 학교를 묻는다.

복종과 순종이 아니라 공존과 배려

이렇게 모든 언어는 해당 문화를 반영한다. 공손법은 우리의 문화이다. 이 문화가 다시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고종석은 말한다. 언어로 표현되는 그 위계질서를 우리는 다시 그 언어를 통해 내면화한다. 경어를 썼느냐 반말을 썼느냐가 흔히 사람들 사이의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이 그 증거다.

사람들은 "당신이 나를 당신이라고 했어?" "얻다 대고 반말이야!"라고 하며 싸운다. 공손법은 연령의 위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분의 위계를 드러내고, 그 신분의 위계는 그것을 드러내는 공손법에 의해 다시 강화된다.

공손(독일어 Höflichkeit)은 물론 상이한 방식이지만 모든 사회형태에서 문법화되어 있다. 독일어에도 영어에도 있다. 이는 공손이 공동의 가치구조를 토대로 개인들의 사회적 공존을 보장하고 가능한 한 마찰 없는 공존을 형성하는 사회의 상위의 목표를 쫓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손의 반대개념인 불손, 불공손, 무례는 세상의 어느 언어에도 거의 문법화 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공손'이라는 용어 때문이다. 우리말 '공손', '공손하다'는 '말이나 행동이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순종', '복종' 등과 같은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공손'은 우선적으로 순종적이고 유대지향적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손' 대신 '정중'을 제안했다. 언어적 정중함이라는 것은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사회적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면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행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적 수단이다. 홈스(Holmes, 2001)에 따르면 "언어적 정중함이란 상대방과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고 또 그의 감정과 기분을 배려해서 그를 언어적으로 적절히 대우하는 방법"이다.

복종과 순종이 아니라 공존과 배려인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어떤 공손법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해당 언어 공동체 내에 규정된 언어 관행과 사회적 규범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실행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존댓말/반말 체계가 차별과 억압 만든다

문화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발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가변적인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는 바로 이런 문화적 변화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 문화도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여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가족 간의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부부간에 너나들이를 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널리 확산되었다. 독일에서는 부모까지도 이름을 부르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독일 사람들이 우리보다 무례한가?

우리는 살면서 누구를 만날 때 그를 언어적으로 적절하게 대우한다, 그리고 관계나 사태를 진전시켜 나간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발화에 국한되지 않고, 나를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합당하게 대우하느냐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자식이 부모를 du/you라고 지칭한다. 호칭 결정 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유대', 즉 친소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만큼 가까운 사이가 있는가? 반면에 우리 호칭은 '관계'에 기반 한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고 "Du, Gott im Himmel"이다.

2021년 우리는 여전히 친한 사이 성명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고 대부분 직업과 관련된 호칭을 사용하며, 이 언어적 정중함을 일종의 권력장으로 유지하고 있다. 출신과 나이, 본관, 경력, 취미 등을 묻고 자신과 상대의 언어적 사회적 위상 파악하여 "나보다 아래구먼", "그럼 내 후배네" 하면서 상대를 무게가 아니라 선후배로 재배치한다. 서열화를 한다는 것이다. ~임의 사람보다는 ~로서의 사람인 것이다.

나는 존댓말/반말 체계가 차별과 억압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는 차별과 억압의 근본적 원인은 '존댓말'과 '반말'로 이루어진 '존비어' 체계에 있다. 그렇다면 언어사용에서 우리가 평등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민주주의 진전 따라 경어체계도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존비어 체계는 예절의 문제가 아닌 차별과 억압의 구조이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거나 서로 반말을 해야 한다. 그래도 충분히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존중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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