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에 출전할 농구대표팀 최종명단을 둘러싼 후유증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대표팀 운영을 책임져야 할 김상식 대한민국 농구대표팀 감독과 추일승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다음 달 18∼22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 일정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지난 22일 12명의 대표팀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프로 10개구단과 상무, 아마추어에서 각 1명씩의 선수들을 차출했다. 프로농구 시즌 중 열리는 국제대회인 만큼 KBL(프로농구연맹)도 2월12일부터 23일까지를 A매치 휴식기로 잡았다.

하지만 명단 발표 이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해외 입국자는 방역 지침에 따라 귀국 후에도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 대표팀에 다녀온 선수들이 격리 해제 이후 소속팀에 복귀하더라도 팀훈련을 통하여 다시 실전에 나갈만한 몸상태를 끌어올리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이번에 차출된 대표선수들은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속팀이 떠안게 된다. 모두 각 팀의 핵심선수들인 만큼 가뜩이나 순위경쟁이 치열한 시즌 후반기 판도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또한 차출된 팀마다 선수의 비중과 몸상태가 제각각이다 보니 대표팀의 형평성과 선발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논란이 거세지자 24일 김 감독과 추 위원장이 연이어 사의를 표명하겠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일단 농구협회와 경향위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있다. 차기 농구월드컵 진출권이 걸려있는 아시아컵 본선진출을 노리는 대표팀 입장에서 이번 예선은 반드시 참가해야만 하는 대회였다. 농구협회는 지난해에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예정된 홈경기 일정을 취소하며 FIBA의 벌금 징계를 받기도 했다.

상대팀이 필리핀을 제외하면 인도네시아-태국 등 약체이기는 하지만 이변이 많은 단기전과 국제대회의 특성상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대표팀은 프로 최정예 멤버와 대학선발, 프로 저연차와 상무팀 위주의 구성 등 여러 가지 안을 고심한 끝에 결국 차선책으로 10개 각 프로구단과 상무, 아마추어에서 총 1명씩의 선수만을 선발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김상식 감독과 추일승 위원장은 절차와 원칙에 따라 부끄러움없이 대표팀을 선발했으며, 경향위에 참여한 현직 프로 감독들도 동의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프로구단 입장에서도 이의를 제기할만한 근거가 있었다. 전준범(울산 현대모비스)-안영준(서울 SK)처럼 최근까지 부상으로 오랫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거나 팀내 비중이 높지 않은 멤버들도 발탁되었다는 것이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켰다.

라건아(KCC)나 허훈(KT), 이승현(오리온) 등은 팀내에서 사실상 대체자가 없는 핵심선수들이다. 또한 팀당 1명 차출 원칙이 아니었다면 이대성(오리온)-이정현과 송교창(KCC)-양홍석(KT) 등도 당연히 이번 대표팀에 뽑혔어야만 할 선수들이다.

경향위와 대표팀감독 입장에서는 선수단 포지션 안배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전준범과 안영준의 경우 대표팀 경험도 있는 데다 최근 부상에서 복귀하여 대표팀에서 활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박도 나왔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일부 구단들이 대표팀에 선수 선발에 대하여 청탁 혹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섣불리 한쪽만을 탓하기 어려운 문제다.

결국은 한국 농구 행정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원 '상호간 충분한 소통 부재'-'절차적 투명성에 대한 신뢰 부족'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팀 선발과 운영은 농구협회의 고유 권한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대표팀 선수들의 대부분은 프로구단 소속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농구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있는 가운데 국제대회도 중요하지만, 프로농구도 시즌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협회와 KBL이 충분한 대화와 공감대를 통하여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대표팀 관계자들과 프로 구단들이 책임 공방을 놓고 서로 감정싸움만 벌이는 형국에 가깝다. 물론 프로구단에서 선수선발에 직접 개입하여 누구를 뽑고 누구는 뽑지말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하지만 프로팀의 정당한 불만 제기를 무조건 '이기주의'로 치부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이 시점에서 김상식 감독이나 추일승 위원장이 사퇴 카드를 꺼내는 것도 그리 책임있거나 성숙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선수선발 문제에 자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해명하고 절차대로 풀어나가면 됐다. 농구대표팀과 사정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야구나 축구, 배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대표팀 선수 선발의 자격-공정성 등을 둘러싼 논란은 종종 벌어진다.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대표팀은 허재 감독의 친아들 허웅과 허훈의 '부자 특혜 발탁'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고, 대회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아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선수선발에 책임을 지고 있는 농구협회는 유재학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과 허재 감독이 연이어 사퇴하는 것만으로 대충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당시 대표팀 발탁 논란에 대한 시원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소통과 과정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농구계의 무책임하고 구태의연한 관행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대표 선발논란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이번 사태가 대표팀 감독과 위원장의 사퇴 논란으로까지 번진 것도 농구계 특유의 '불통 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추태일 뿐이다. 정작 지켜보는 다수의 농구팬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이 더 씁쓸하다.

무엇보다 좁은 한국 농구판 안에서 내부 구성원들끼리도 원활한 설득이나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민들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농구협회장이나 KBL 총재 같은 최고책임자들이 나서서라도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모양새를 취해야한다. 농구인들은 서로간의 유치한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이성을 찾고 이번 논란을 어떻게 책임있게 풀어나갈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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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표팀 김상식감독 추일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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