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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던 딸은 일 년 전 아이들 방학에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찾아오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가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뒤로 하고 결국 딸네 가족은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코로나19는 금방 멈출 것 같지 않고 딸네 가족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했다. 여러 가지 전개되는 상황으로 보아서 딸네 가족은 살던 곳으로 금방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위와 딸은 머리를 맞대고 매번 고민을 하고서,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세를 얻어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부모가 곁에 사는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고서 만류했다. 따로 살림을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살던 곳에 살림을 다 두고 나왔으니 새로이 살림은 준비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사위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살던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한국으로 보내올 때까지 부모님에게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하고서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멈출 줄을 모르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는 입국을 중지하고 있어, 출국 날을 기다리고 견디는 날들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비자 나오는 것조차 어려웠다. 사람이 무슨 방법으로 자연재해를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기다릴 수밖에.

딸과 막내 손자는 우리 집에 살고 큰손자와 사위는 본가와 군산 우리 집을 나누어 오가며 생활해 왔다. 양가 부모님 힘들까 봐 서로 배려하려고 하는 일이지만 본인들은 얼마나 불편하고 피곤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는 마음이 아프고 답답한 나날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19라니, 세상 사는 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딸네 가족은 살던 곳에서 아무 일 없이 평탄하게 살아왔으나,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때문에 인생 행로가 바뀌고 말았다. 지금은 위기이지만 지금이 중요한 때라고 사위는 가끔 말했다. 먼 나라에서 오래 아무 일없이 안정된 생활 속에 살아왔다면 부모님 삶을 이해 못하고 놓치고 살았을 일을 알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소중한 일상을 보내게 됐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가 어려운 경험도 해 보아야 삶의 성숙함도 배우는 거라고.

"언제 부모님과 평생같이 살아 볼 날이 있었을까요. 이런 날들이 소중합니다." 힘든 가운데 긍정적인 생각으로 힘든 상황을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마음을 가졌다. 마음 안에 선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 같이 있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마법을 가졌다.

9월 중순 드디어 비자가 나오고 사위는 중국을 들어가 14일을 격리 후 짐을 한국으로 보내고 10월 초순 한국으로 나왔다. 혼자서 그 많은 일을 해내고 한국으로 나오기까지를 생각하면 아스라이 꿈만 같은 많은 일들을 견뎌내고 마무리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사위는 수지 본가 옆에 살 집을 구했고 리모델링까지 다 마친 후 중국에서 보내온 짐도 다 정리한 후 군산으로 내려왔다. 이곳 와서 짐을 싣고 딸과 아들을 데리고 군산을 어제 떠났다. 같이 살 때 늘 힘들기도 하고 서로가 불편한 점도 많았다.

자식도 성인이 되면 생활 방식과 사고가 달라 나이 든 부모와 사는 게 쉽지 않다. 먹는 음식도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은 입맛도 다르다. 때때로 섭섭함에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자식과의 다툼은 돌아서면 금방 본래 마음으로 돌아온다. 생각하면 마음이 애달프고 아프다. 참 부모 자식 사이는 모를 일이다.

서로가 다름을 견디고 살아온 일 년, 사람 사는 게 항상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비례한다고 나는 말한다.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언제 10살짜리 손자의 재롱을 보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또 젊은 사람의 활기 있는 삶 속에서 살아 볼 수 있어 사는 게 활력이 많았다.

딸과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나이 든 남편과는 못 해본 일도 즐거웠다. 어찌 보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던 일 년 동안의 삶이었던 것 같다. 쾌활하고 이벤트를 좋아하는 딸은 우리 부부 데리고 다니며 여행도 하고 생기 넘치는 일상을 선물했다.

항상 마음에만 그리던 셋째 사위! 나는 셋째 사위가 나와의 정서와 삶의 방향이 맞아 좋아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귀한 사람이다. 사위와의 보낸 삶은 오랜 추억으로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다.

코로나19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생활할 때 사위와 함께 화전놀이도 하고 쑥절편도 만들고 아카시 꽃 따다가 떡도 만들고 가까운 곳을 여행하며 추억도 많이 쌓았다. 생각하면 좋은 일이 더 많았던 일 년이다.

6인승 승합차에 가득한 딸 짐
 
승합차에 실은 딸네 이삿짐
▲ 이삿짐 차 승합차에 실은 딸네 이삿짐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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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들어올 땐 캐리어 하나이던 짐이 많이 불어 6인승 승용차에 사람 앉을 자리만 빼고 꽉 채운다. 딸네 가족이 새롭게 시작하는 삶 어렵지 않게 양념과 김치와 밑반찬을 챙기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산다는 것은 항상 만나면 혜어짐이 공존하기 마련인데 이별은 아프고 슬픔이다. 집 안으로 들어와 색종이에 손자가 써 주고 간 편지를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엔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집을 떠나면서 손자는 편지를 써 주고 갔다.
▲ 손자가 써준 손 편지 우리집을 떠나면서 손자는 편지를 써 주고 갔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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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사랑해요. 저 없어도 밥도 잘  드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 할아버지 손자 준하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사랑해요. 가서도 영상통화 많이 할게요.
- 할머니 손자 준하가. 


손자가 써준 편지가 고마워 두고두고 읽어보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가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딸네 가족, #이삿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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