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스타 출신 방송인 현주엽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먹방'과 '꼰대'로 요약할 수 있다. 현주엽은 그를 예능인으로 부각시킨 <원나잇 푸드트립> <사장님귀는 당나귀귀>등을 통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식사량과 고기사랑으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식신' 캐릭터를 구축했다. 반면 본업인 농구인으로서의 모습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아랫사람들에게 다소 권위적이고 경직된 면모로 꼰대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주엽은 지난해 프로농구 창원 LG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본격적인 방송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 TV는 사랑을 싣고 > 등에서 MC역할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미숙한 진행능력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안정환이나 서장훈같이 역시 스포츠스타 출신으로 방송계에 성공적으로 장착한 동료들에 비하여 예능인으로서의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현주엽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2월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JTBC 신규 스포츠예능 <뭉쳐야쏜다>는 현주엽에게는 어쩌면 중요한 기회이자 시험무대가 될 수 있다. 조기축구를 소재로 한 <뭉쳐야찬다>의 후속편인 <뭉쏜>은 허재·안정환·홍성흔·이동국 등 예능에서 다채롭게 활약 중인 스포츠스타들의 아마추어 농구 도전기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주엽은 허재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뭉쏜>은 현주엽의 본업인 농구를 소재로 한 데다 프로그램 성격상 먹방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성공한 전작의 후광과 호화 출연진으로 인한 기대치는 높은 반면, 현주엽 혼자 무언가를 보여줘야한다는 부담이 쏠리는 프로그램도 아니다. 가뜩이나 방송경력이 정체될 위기에 놓여있던 현주엽의 입장에서는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본인의 장기도 살리고, 식상한 이미지에 변화도 줄 수 있는 최적의 프로그램을 만난 셈이다.

현주엽은 과거에도 농구를 소재로 한 방송에 여러 차례 출연한 바 있다. 길거리 3대 3 농구를 소재로 한 <리바운드>, 연예인 농구대회 도전을 다룬 <버저버터> 등의 프로그램에서 감독의 역할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이 당시의 현주엽은 훗날의 먹방 예능에서 보여주던 친근한 이미지보다는, 창원 LG 감독 시절 <당나귀귀> 출연 당시의 깐깐하고 무서운 전형적인 '농구 감독'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선수로 참여했던 참가자들은 물론 상대팀 멘토들조차 연장자이자 전문 농구인인 현주엽의 눈치를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을 정도다. 프로그램 자체는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리바운드> 촬영 당시 상대팀 선수로 참가했던 김정년(인천 전자랜드)과 시비가 붙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될 정도다.

역시 농구를 소재로 하여 지난해초 방영했던 SBS <핸섬 타이거즈>는 어설프게 진지함만 추구하려다가 오히려 실패한 스포츠 예능의 대표적인 '반면교사'라고 할만하다. <핸섬> 역시 농구계 레전드 출신 방송인인 서장훈이 감독을 맡아 연예인 농구팀의 아마추어 대회 도전기를 다뤘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핸섬>은 서장훈에게 감독 역할을 맡긴 것은 물론 프로그램의 서사까지 전적으로 의지했지만, 정작 방송인 서장훈과 농구인 서장훈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농구인으로서의 서장훈은 비전문가인 연예인 선수들을 상대로 무리한 대회 스케줄과 자신의 농구철학만 일방적으로 강요했고 결국 프로그램은 어정쩡한 방송으로 전락했다. 

진지함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주엽 또한 <당나귀귀>에서 먹방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도 정작 본업인 농구 감독으로서의 에피소드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결국 '농구가 본업인 전문가'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농구를 소재로 한 방송'도 잘 풀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안정환이나 현주엽 모두 '예능인'으로 친근한 모습을 보여줄 때와 '스포츠인'으로서의 진지한 본모습은 별개인 경우가 많다. 핵심은 완급조절이다. 안정환이 감독을 맡았던 전작 <뭉찬>이 예능과 스포츠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수 있었던 것은 웃을 때는 즐겁게 웃더라도, 축구해야할 때만큼은 한없이 진지해지는 안정환의 유연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쟁과 승부 자체가 목적인 '스포츠 경기'와, 스포츠의 매력을 팬(시청자, 관중)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얻는 게 진짜 목적인 '스포츠 소재 예능'의 차이이기도 하다.

<뭉쳐야쏜다>가 현주엽이 출연했던 기존의 스포츠 예능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본인이 리더가 아닌 감독이자 선배인 허재를 보좌하는 코치의 역할을 맡았고, 선수로 등장하는 출연자들 역시 현주엽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선배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현주엽이 기존 방송에서처럼 자신이 하고싶은 역할만 한다거나,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현주엽이 <뭉쏜> 출연을 통하여 고민해야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농구인으로서 농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어떻게 유쾌하고 편안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이다. 현주엽이 애초에 현역 감독 시절에도 <당나귀귀> 등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명분은 농구를 대중적으로 홍보하겠다는 농구인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뭉쏜>도 <뭉찬>이나 <핸섬>처럼 팀의 방향성을 주도해야하는 코칭스태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뭉쏜>은 프로팀처럼 대회에서 나가서 우승하거나 농구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 아니다. 예능의 웃음과 스포츠의 진지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특히 코치라는 중간자적인 입장이자 '분위기 메이커'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은 현주엽에게는, 이러한 방송의 방향성을 빨리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본인의 방송 이미지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다. 현주엽은 그동안 방송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수시로 정색하거나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하여 많은 지적을 받았다. 무릎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몸을 사리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뭉쏜>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틀을 깨는 모습도 보여줘야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힘든 일도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동료들의 짓궂은 예능적 장난도 웃으면서 당해주는 여유가 있어야한다.

허재-안정환 등 편안한 동료들이자 현주엽의 카리스마에 꿀릴 것이 없는 멤버들이 다수 존재하는 <뭉쏜>은 그간 현주엽의 부담스럽던 꼰대와 강자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해체하면서도, 좀더 다채로운 인간적 면모를 어필할 수 있는 최적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하다. 예능인과 농구인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던 현주엽이 <뭉쏜>을 통하여 그간의 한계를 딛고 과연 새롭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현주엽 뭉쳐야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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