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 포스터.

영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 포스터. ⓒ 넷플릭스

 
2036년, 우크라이나의 어느 도로 위에서 평화 유지군으로 파견된 미군 특수부대는 우크라이나 반군에게 기습당한다. 그들은 부상병을 데리고 퇴각하려 하지만 증원되는 적군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드론 조종사 '하프 중위(댐슨 이드리스)'는 독단적인 판단을 내려 부상병들의 사망을 무릅쓴 채 공습을 가한다. 이후 명령 불복종 때문에 징계를 받아 우크라이나 현지 미군 부대로 발령받은 하프는 새로운 상관 '리오 대위(앤서니 매키)'를 만난다. 리오가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 하프는 그와 함께 소련의 감춰진 핵무기를 반군이 장악하기 전에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군 부대를 둘러싼 철조망 밖으로 나선다.  

1월 15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는 처음과 끝 사이의 괴리가 큰 작품이다. 시작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전쟁 혹은 첩보 영화처럼 보인다. 전투용 로봇이 전장을 누비는 모습은 새로운 미래 전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테넷>이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숨겨진 무기를 찾아 작동을 막으려는 첩보원의 임무 수행은 기대와 긴장을 부풀린다.

그러나 몇 장면을 제외할 경우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기능을 활용하지 않는 전투신, 또 핵무기를 둘러싼 첩보물의 평이한 전개는 처음 부푼 기대를 채우기에 부족해 보인다. 이러한 실망감은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가 과학 기술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데 주목할 뿐, 전쟁 영화나 첩보물의 장르적 재미와 적절하게 결합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프의 냉정하고 건조한 면모

이 영화의 지향성은 우크라이나 반군의 공격에 맞서 미군이 반격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드러난다. 수십 명의 생명이 오가는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 카메라는 액션보다 하프의 냉정하고 건조한 면모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드론 조종사인 그는 해당 상황이 모든 인원을 전멸시킬 수도 있는 위험이라고 판단해 아군 부상병이 죽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습을 선택한다. 모두가 망설이는 사이 계산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동시에 비인간적인 선택을 내린 것이다. 징계를 받는 그는 마지막까지 "40명 중 38명을 구했다"라고 항변하면서 죽은 병사들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전략적으로 실리적이었음을 주장한다.

하프의 성품은 그가 로이를 만나 첩보 임무를 설명받고, 임무를 위해 부대 밖으로 나설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굶주림에 지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복된 미군 보급 차량을 약탈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 군사적 관점에서의 공격적인 대응을 촉구한다. 반면에 리오는 인공지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대치하는 의용군과 시민들에게 공감하면서 그들을 설득하려 한다. 또한 병사들이 전투 로봇을 구타하고 모욕하자 분노하고, 보육원과 병원에서 아이와 환자를 보며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리오의 모습은 하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이 영화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성을 되찾는 여정에 관한 것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오프닝과 초반부를 지난 영화는 인공지능보다도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던 하프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본토에서만 근무하고, 접전지에서의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판단력을 의심받았던 그는 이제 처음으로 전장에 직접 뛰어든다. 그곳에서 그는 주변 군인이 목숨을 잃고, 반군의 기습 공격에 생사를 오가고, 공습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부상당한 환자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명을 숫자로만 계산하고, 가장 합리적이기에 최선이라고 여겼던 과거 자신의 선택이 지닌 무게를 실감한다. 그 결과 아내에게만 따뜻한 사람이었던 하프는 조금씩 현지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변한다.   
 
이러한 하프의 서사는 그의 근무 환경을 고려할 때 과학 기술의 발전과 범람으로 인해 인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드론 조종사인 그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언제나 모니터 안에서 간접적으로 대면한다. 그래서 그는 현장에 나가 있는 부대원들과 달리 군인의 목숨을 단순히 숫자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부상병이 죽고 사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고, 이차적인 문제이며, 전투 현장 역시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분석해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사실 다양한 미디어와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및 가상 세계 등에서의 활동이 늘어나고, 현실에 발붙이는 일이 점차 줄고 있으며,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해 그 흐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하프를 마냥 영화 속 인물만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이미 전쟁을 생중계로 관전하고 숱한 테러 현장과 자연재해에 관한 소식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현대인들은 모든 사건을 인간적으로 대하기 어렵고, 작중 인공지능도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하프를 점차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목인 < 아웃사이 와이어 Outside the Wire >는 하프가 드론 조종석과 미군 부대의 철조망(Wire) 밖의 세상에 다시 발 붙이고 나서야 인간다움을 되찾은 것처럼 사람들도 일상생활을 둘러싼 과학 기술에 파묻혀 현실에 공감하는 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로 읽히기도 한다.

핵무기와 인간성의 상실

또한 <아웃사이드 더 와이드>는 핵무기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주제의 범위를 개인에서 국가와 지구의 영역까지 확장한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이 개발한 인공지능이지만, 리오는 핵무기를 미국으로 날려서 모두가 전쟁을 경험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전쟁을 끝낼 길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선택은 이미 태평양 전쟁을 끝내기 위해, 냉전에서 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평화 유지용으로 만들어진 핵무기가 한 국가는 물론 인류 모두를 파멸시킬 위협으로 자리매김한 현실의 데자뷔나 다름없다. 현실에 대한 성찰 없이, 윤리적 고려와 책임 없이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본래 의도와 달리 핵무기의 위치를 대체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결국 작중 인공지능과 핵무기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빚어낸 위협이라는 점에서 하프가 인간성을 상실한 것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이처럼 개인에서 시작해 더 넓은 범주로까지 주제를 확장시키는 전개는 이전의 SF 영화들과는 다르게 묘사된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간 인공 지능을 소재로 삼은 많은 영화들은 인간성의 기준으로 사랑, 동정심, 우정, 회한 등 감정에 바탕을 둔 공감 능력의 유무를 제시해 왔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 2>에서의 T-800, < A.I. >의 아동형 로봇 데이비드, <아이 로봇> 속 서니와 같은 로봇들은 인간의 외양을 갖더라도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을 공감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인공지능의 부족함과 인간의 우위를 제시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이 작품은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신체, 지능, 감성 등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완벽한 인공지능을 묘사하며 과학 윤리의 부재가 초래할 미래의 위험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주인공의 성격과 서사부터 영화의 배경과 소재까지 모두 활용하는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의 담론은 분명히 역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나 주제의식이 갖는 무게감을 체감하는 것만으로는 앞서 지적한 괴리감과 실망감을 온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영화의 메시지와 장르적 재미가 결코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풀어내는 SF적 메시지와 전쟁, 액션, 첩보 영화에서 차용한 장르적 재미가 성공적으로 결합 가능한 점은 이미 숱하게 증명되어 왔다. 작년에 개봉한 <테넷>만 하더라도 시간의 역행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시간 순서가 뒤바뀐 인물들 간의 격투나 추격신처럼 참신하면서도 흥미로운 스펙터클을 보여줄 뿐 아니라, 운명과 자유의지의 관계 혹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갈등처럼 무거운 주제도 영리하게 풀어낸다. 

그에 비해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는 인공지능, 전투형 로봇 등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도 못했고, 몇 안 되는 장면들도 장르적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연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적으로 작중 모든 이야기는 하프의 독단적인 결정으로부터 풀려 나간다.

그런데 전쟁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그의 선택에도 충분히 정당성이 존재하며, 이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전쟁 영화와 SF 영화 사이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 결과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정작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보기는 어려운, 훌륭한 구슬을 제대로 꿰는데 실패한 영화로 막을 내린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 넷플릭스 인공지능 과학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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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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