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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를 이끈 네 명의 장군들. 김좌진, 최운산, 김혁, 홍범도. 그 뒤로 평범했던 독립군들이 새겨져 있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를 이끈 네 명의 장군들. 김좌진, 최운산, 김혁, 홍범도. 그 뒤로 평범했던 독립군들이 새겨져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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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대로 일제의 간도출병에는 막강한 군사력이 동원되었다. 독립군을 겹겹이 포위하여 뿌리를 뽑겠다는 전략이었다.

국내에서 의병을 학살할 때 쓰던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 즉 ① 모조리 죽이고 ② 모조리 약탈하고 ③ 모조리 불태운다는 무지막지한 전략이다.

일본군은 이 거대한 병력으로 독립군을 이중으로 포위하여 섬멸하려고 하였다. 즉 ① 일본군 5개 사단에서 차출한 2만 5천 명의 병력과 관동군에서 동원한 병력으로 북간도의 독립군 부대들 전체를 동서남북으로 모두 넓게 포위하여 그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고, ② 그 포위망 안에서 다시 제19사단 주력의 1만 2천 명의 3개 지대 병력으로 각 지대가 1개 구역씩 맡아 오지에 들어가서 내부에서 독립군 부대를 좁게 포위하여 독립군 각 부대를 수색해서 전투를 통하여 독립군 부대들을 모두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주석 8)

 
최운산·최진동 형제
 최운산·최진동 형제
ⓒ 최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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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은 한국의 3ㆍ1혁명의 영향을 받은 베이징대학생들이 주도한 5ㆍ4운동(1919년)이 발발하고, 10월에는 중화혁명당(중국국민당으로 개칭)이 창당되고, 1920년 안직(安直) 전쟁에서 북양군벌의 단기서(段祺瑞) 총리가 물러나고, 8월 진독수 등이 상하이에서 사화주의 정당을 결성했다. 12월에는 손문이 광주에서 광동군정부를 재조직하는 등 국정이 혼란한 시기였다. 

아무리 그렇기로 일본군 2만 5천여 명이 자국 경내로 진입해오는 데도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사실상의 침략행위였다. 중원에서는 권력투쟁으로, 동북 쪽에서는 군벌의 득세로 외적의 침략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 것이다. 상당수 군벌수장들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일제는 이 틈새를 노리고 파병을 감행한 것이다. 당장의 목적은 한국독립군 섬멸이지만, 종국적인 목표는 만주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이었다.

일본군은 독립군 토벌의 작전 목표를 2단계로 나누어 설정하였다. 즉 ① 제1단계에서는 작전 개시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독립군 무장대를 철저히 색출하여 섬멸하고, 반복토벌을 되풀이 실시하여 독립군을 전원 섬멸하거나 검거해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을 근원까지 철저히 박멸한다는 것이고, ② 제2단계에서는 제1단계가 끝난 후로부터 다시 1개월 이내에 촌락에 잠복하고 있는 독립군 지원세력과 민간인 독립운동가들을 철저히 색출하여 무장독립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비무장독립운동까지 완전히 뿌리를 뽑겠다는 것이었다. (주석 9)


최운산 형제들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봉오동을 떠나 길을 재촉했다. 많은 대군단이 함께 움직일 수 없어서 소속 별로 나누어 행군하였다.

대한북로독군부 총사령관 최진동 장군과 최운산ㆍ최치흥 형제는 주력부대 1000여 명과 함께 봉오동 북쪽 라자구 방향으로 행군하기 시작하였다. 홍범도ㆍ김좌진 등은 봉오동 서쪽 백두산 방향으로 이동했다. 동포들이 사는 마을에 한 독립군부대가 지나가고 나면 며칠 후 다른 독립군부대가 지나갔다.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고 봉오동 독립전쟁의 승전을 함께 기뻐했다.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운 독립군에 감사하며 음식을 대접하고 식량을 보급해 주었다. (주석 10)


주석
8> 조선총독부, 「간도 출병사」, 『조선통치사료』2권, 44쪽, 신용하, 앞의 책, 213쪽.
9> 앞과 같음.
10> 최성주, 앞의 책, 6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동안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연해주와 서간도의 독립운동은 많이 발굴되고 알려졌지만, 2020년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보내고도 두 대첩에 크게 기여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역할은 여전히 묻혀진 상태이다.
태그:#최운산, #최운산장군평전, #무장독립투사_최운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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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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