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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과속스캔들> 스틸사진
 영화 <과속스캔들> 스틸사진
ⓒ 토일렛픽쳐스, 디씨지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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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도 모르는 딸이 손자까지 데리고 나타났다는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인 차태현·박보영 주연의 <과속스캔들>이란 영화가 있었다. 중학교 때 첫사랑인 이웃집 누나와 사이에서 태어난 딸(박보영)이 또 미혼모가 되어 아들을 키우다 아버지(차태현)를 찾아와 아버지 역할을 요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3대가 가족으로 뭉친다는 코미디 드라마다. 영화가 개봉한 지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인 미혼모 가정과 모성을 희화화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로 기억된다.

우리나라가 미혼모, 미혼모 자녀를 다루는 방식은 늘 이래왔다. 어느 날 옛사랑이 홀로 낳아 키운, 존재조차 몰랐던 아이가 나타나고, 아이는 멋진 청년이거나 사랑스러운 숙녀로 뚝딱 자라 있다. 현실은 결코 간단하지도, 녹록지도 않은데 말이다. 20대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걱정 아닌 걱정은 어느 날 아이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 상상이 아닐지.

실제로 갑자기 미혼모, 미혼부가 된 자식의 자식을 키운다는 이야기는 한 다리 건너 두어 사례로 들려온다. 그게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싶어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의 준엄함에 대해, 아이를 키울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피임은 의무임을 강조해 왔다.

갑자기 미혼부모가 되는 것은 행실이 단정치 못해서도 아니고 음란해서도 아니지 않는가. 과연 나는 자기 생도 책임질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아이가 아이를 데려오면 기쁘게 맞아줄 수 있을까.

- 냉장고에 사망한 2세 영아가 2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 탯줄 달린 태아가 창밖으로 버려져 동사한 채 발견되었다.
- 공중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 여대생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마치 발견한 것처럼 신고했다.
- 당근마켓에 생후 36주 된 아기를 20만 원에 내놓았다.


읽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고 살이 에이는 사건들이다. 통계를 보면 2010~2019년 영아살해 110건, 영아유기는 1272건이다. 1년에 120건, 매달 10명의 영아가 유기되어 온 셈이다.

영아유기 막기 위해 익명출산제, 비밀출산제 도입되어야
 
 탯줄도 간신히 끊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도망쳐 나오는 비정한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탯줄도 간신히 끊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도망쳐 나오는 비정한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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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모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생명을 키우며 한 몸이 되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출산 직후 자동 피임되는 것도, 유선을 자극해 젖이 도는 것도, 열 달을 거치면서 신체 메커니즘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다음 임신 때까지 태어난 아기도, 태어날 아기도 안전해졌다고 판단될 때까지 여성의 몸은 철저하게 양육자의 상태가 된다. 가임기, 특히 출산한 여성의 몸은 온전히 여성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역설이다.

여성들은 태동을 느끼며 생명의 신비를 말 그대로 몸으로 체득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출산하고 유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호르몬이라는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당사자로서도 매우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영아 유기한 여성은 어떠한 방법이나 대안도 없었거나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나는 모성이 특별히 강하거나 생명존중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퉁퉁 불어서 흘러내리는 젖에 거즈를 대고 찬 겨울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가는 어린 엄마의 천길 지옥 같은 마음을 헤아린다.

임신과 양육의 공동책임자인 남자친구는 소식이 끊기거나 안다 해도 외면하는 현실에서, 이해와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가족마저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곳은 어쩌면 공중화장실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탯줄도 간신히 끊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도망쳐 나오는 비정한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갈등과 고충을 상담할 기관이 마땅치 않고, 미혼모를 지원하는 기관의 존재를 몰라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화장실에서 홀로 이 산고를 견뎌냈을 어린 여성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는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을 들여다보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미혼모가 영아를 유기하면 아이를 버린 당사자를 처벌하는 현행법상 '여성만' 처벌된다. 친부는 임신 사실을 몰랐든, 알고도 외면했든,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한다. 미혼모의 출산은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소위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취급된다. 미혼인 딸의 임신을 가족의 수치로 여겨 낙태나 입양을 종용하는 것도 다반사다. 이는 결혼을 통한 가족 제도 안에서만 출산을 축복하고 나머지는 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비뚤어진 가족주의의 소산이다.  (*未婚母는 한글에서 한자로 자동생성되는데 未婚父는 두 낱말로 찾아 넣어야 한다. '미혼부'를 존재하지 않는 낱말 취급하는 이것이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영아유기에 대해 해당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만 접근해서는 영아유기를 막을 수 없다. 낙태죄가 폐지되었으니 영아유기는 감소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생명을, 그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실효적이지도 못한 지하철 임신 배려석 같은 것을 만들면서 모성을 대단히 위하는 것처럼 할 게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임신·출산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결혼 여부를 떠나 임신했을 때 임신 지속과 임신 중단, 양육과 입양, 지원내용 등에 대한 포괄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상담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하여 친모, 친부가 양육하지 못하면 국가가 키워야 한다. 그것이 저출산 정책에 쏟아붓는 수십조보다 더 실질적인 길이고, 나아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울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법이다.

또한 영아유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익명출산제, 비밀출산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2010년 낙태금지 이후 영아유기가 증가하자 2012년 8월 국회는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출생신고를 의무화했다. 그러자 2013년부터 신분 노출을 두려워한 산모들에 의해 영아유기가 급증했다. 20대 국회에서 오신환 의원이 2014년 비밀출산제를 도입한 독일 사례 참고한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영아 인신매매와 인터넷 불법 입양의 여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병원에서 당국으로 출생을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계획'을 밝혔으나 행정업무를 떠넘긴다며 의료계가 강력 반발하고, 보호(익명)출산제 도입계획에 대해서도 미혼모단체와 아동인권단체가 시기상조라고 비판하고 있다. 저출산 정책에 지금까지 수십조 원을 쏟아부은 나라에서 버려지는 아기는 매년 120명에 이르는데, 출생신고 의무화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리고 기댈 데 없는 여성들이 강요당하는 선택이 영아유기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정상'가족 고집하는 한국의 민낯

다행히 베이비박스로 가지 않고 어떻게든 엄마로서 책임을 다한다 해도 미혼모 가정에 대한 정부 지원은 위탁가정이나 입양가정을 지원하는 것에 턱없이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혼제도 안이든 밖이든 의지만 있다면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결혼을 통한 가족제도와 '정상'가족만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 8일 내복 차림으로 집 밖을 서성이다 발견된 서울 강북구 만 4세 여아의 어머니는 20대 한부모 여성으로, 몇 달 전 시설에서 독립한 뒤 홀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지난 8일 내복 차림으로 집 밖을 서성이다 발견된 서울 강북구 만 4세 여아의 어머니는 20대 한부모 여성으로, 몇 달 전 시설에서 독립한 뒤 홀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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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최근 내복차림으로 배회하던 아동도 아이를 혼자 두고 일하러 가야만 하는 한부모 여성을 어머니로 두고 있었다. 엄마가 생계비를 벌러 나간 동안 아이를 혼자 둔 건 다름 아닌 국가와 사회이다. 설령 그 아이에게 멍 자국이 있었다 한들 그 어머니를 벌할 자격이 있는가.

2016년 기준 18세 미만의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는 2만 3천 명이고, 미혼부는 9천 명이다. 이 중 10~20대 미혼모는 22%에 이르고, 2016년 국내외로 입양 간 아이의 94.3%가 미혼모 자녀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제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표류하는 사이, 경제 규모 10위권을 자랑하는 한국은 아직도 '미국 입양의 TOP3'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고기도 아닌데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등급으로 매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는 엄마들에게도 해당된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을 신성시하는 모성 신화가 굳건한 가부장제 사회 분위기에서 '정상'가족 제도의 틀 안에서 보호받으며 아이를 낳는 어머니는 1등급 엄마, 동거하거나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2등급 엄마가 된다.

그 집단 안에서도 무수히 다양한 결로 등급을 나눈다. 엄마에 대한 사회의 차별은 고스란히 아이의 차별로 이어지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우주가 필요하다'는 말은 정상가족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남을 뿐이다.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사건(정인이 사건)은 소위 정상가족에 가면 행복할 거라는 입양정책의 출발이 얼마나 허구인지 보여준다. 아동학대로 죽은 아이의 양부모에 돌팔매질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는 소중하지만 어떤 아이는 더 특별히 소중하다 혹은 어떤 아이는 덜 소중하다"고 외치는 것이 국가는 아닌지, 나 자신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여성의 관점에서 임신과 출산, 양육을 고민하기보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1억을 준다거나 대출금을 대신 갚아준다는 식의 재정적, 제도적 저출산 정책에 머무는 한 저출생은 단연코 해결할 수 없다. 

여성의 몸과 출산을 통제했던 과거 국가주의 정책처럼 가임기 여성의 지도를 만드는 등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저급한 성인지감수성이 근절되지 않는 한, 결혼한 남녀와 자식만이 '정상'가족이고 동거가족, 다양한 생활공동체가족, 동성가족, 미혼부모나 한부모 가족을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취급하는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고 호명에 이의를 제기한 지 오래인데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도 가족 정책이 철저하게 국가 중심, 사회를 운영하는 남성의 시각 중심이라는 방증이다.

결혼과 출산을 떼어놓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입양을 취소하거나 바꿀 수 있게 하는 등'이라는 앞뒤 맥락을 자른 대통령 발언으로 시끄럽다. 아이를 강아지 취급했다고 거품을 문다.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정인이 양모도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고 토로했다. 몇 시간의 교육만으로 입양 부모의 자격을 얻은 것은 오로지 '정상'가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입양이 아니라 아동학대라 지적하는 것도 맞지만, 아동학대에 사회 구조적인 책임은 없는지 따져보는 게 지도자의 역할 아닌가. 숙고한 결정이라 해도 혈통 중심, 부계 중심의 가족주의가 굳건한 한국에서 타인의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복병이라도 만나면 후회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입양아동을 키우는 것이 맞을까. 숙려기간을 거치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진정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일일까. 오히려 후회와 자책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게 하는 것이 아동학대인 것은 아닐까.

어려운 일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세상에서 이처럼 준엄한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해왔다. 아이는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일 뿐 무엇이 되었든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함부로 말할 것이 못 된다.

대통령의 부주의한 한마디에 벌떼같이 달려들 관심으로 국가가 미혼부모의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입양산업이라 할 만큼 전적으로 민간에 위임한 입양정책을 면밀하게 재설계할 것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영아유기, 친권포기, 해외입양, 저출생 등은 안타깝지만 결혼과 출산을 하나로 보는 데서 기인한 문제이다. 단언컨대 결혼과 출산을 떼어놓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웹진 <뉴스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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