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1 08:02최종 업데이트 21.01.2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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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방부,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0.10.23 ⓒ 공동취재사진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지난해 12월, 육군 주임원사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이로 생활하는 군대는 아무 데도 없다"라며 "명령을 했을 때 왜 반말로 하느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 문화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주임원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육군참모총장이 장교는 부사관에게 반말을 해도 된다며 인격권을 침해했다'라는 취지로 진정서를 냈고, 육군은 발언의 취지와 진의가 왜곡된 것이라며 부정하고 나섰다. 육군본부 법무실은 진정인들을 징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는 진정인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하극상을 저질러 군인복무기본법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요구하는 글도 올라왔다.    


이 사안의 표면적인 쟁점은 '장교가 부사관에게 반말하는 것이 온당한가?'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문제가 숨어 있다. 

하극상이란 자극적인 소재

지난해 3월, 미사일사령부 예하 대대에서 남군 중사 1명과 하사 3명이 직속상관인 남군 중위 한 명을 성추행하고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 부사관들은 숙소에서 주특기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피해자 중위를 찾아가 목적 암기(군 업무와 교범 등을 외우는 것)를 강요하고, 문제를 낸 뒤 답을 맞히지 못하면 폭행하고 성추행했다. 심지어 샤워하고 나오는 모습을 숙소 창문을 통해 촬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기가 막힌 하극상으로 보도되었고,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7일 고등군사법원은 중사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하사 3명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부하들이 상관을 대상으로 집단 폭행과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점은 실로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황당한 사건을 가능하게 했을까. 실마리는 피해자가 중위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군인권센터의 2020년 4월 28일 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평소 중사를 중심으로 자주 음주를 한 뒤 취한 상태로 난동을 부리거나 다른 간부들에게 음주를 강요하였다고 하며, 심지어 중사는 2018년부터 부하들을 상대로 음주·취식 강요를 일삼고 남의 물건을 부수고 폭행도 빈번히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상급자들은 못 본 체했고, 하급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침묵했다. 미사일사령부는 임무 특성상 예하 부대들이 독립부대로 외딴곳에 산재해 있다. 부대 위치나 구성원도 비밀로 취급된다. 내부의 일이 밖으로 알려지기도 어려운 구조다.

이 사건의 본질은 하극상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가해자들이 군부대 안에서 3년 가까이 안하무인 격으로 휘젓고 다니며 범죄 행각을 벌였는데도 감찰부서나 군사경찰이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겁낼 것이 없어진 가해자들이 종국에는 상관까지 괴롭힌 것뿐이다.

피해자가 상관이란 이유로 '군의 기강이 무너져서', '정신전력이 약체화 되어서', '하극상이 만연해서'와 같은 피상적인 진단을 내려서는 문제의 본질에 닿는 해결책을 마련할 수가 없다. 구체적으로 전국 각지의 독립부대에 대한 상급 부대의 관리 감독이 소홀하지는 않은지, 인권 보호 기능은 잘 작동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 문제 해결 방향이다.

그러나 당시 이슈의 초점은 자극적인 소재인 하극상에만 집중되었다. 대책 마련도 기강 잡기, 정신교육 강화 등으로 수렴되었다. 이런 식의 메커니즘은 미사일사령부 사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상병이 여군 중대장을 야전삽으로 폭행한 사건에서도, 2014년 남군 원사가 여군 대위를 상대로 성희롱을 저지른 사건에서도 그랬다.

군에서 남군 하급자가 여군 상급자를 무시하거나 따돌리는 현상은 비일비재하고, 성폭행에 이르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아직까지도 여군을 군인이 아닌 여성으로 보는 우리 군 전반의 문화, 여군을 대하는 남군의 태도, 여군의 복무 여건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를 납작하게 기강의 문제로 치환해서는 근본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군은 이러한 문제들을 마주할 때도 기강을 바로 잡겠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다.    

기승전'기강'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육군참모총장과 주임원사 간에 벌어진 이번 사태는 갑자기 벌어진 촌극이 아니다. 그간 군이 '만물기강론'으로 내부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회피해 온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군에서의 계급은 책임과 역할의 차이에 따라 나뉜다. 하지만 군대도 사람이 꾸려가는 하나의 사회고 대한민국의 일부다. 한국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나이 권력, 젠더 권력 문제를 군대라고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러나 군대라는 공적 조직의 지휘명령체계에 나이 권력과 젠더 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건 군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나 공적 조직의 체계에 책임과 역할이 아닌 다른 외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다. 조직 내 책임 관계가 잘 정립되어 있는지, 조직 운영에 책임 관계와 무관한 외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남 총장은 하급자가 상급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물의를 일으키거나, 정당한 지시에 응하지 않는 일련의 상황을 언급하며 '반말 지시'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끌고 왔다. 군은 원래 계급사회인데 신분, 계급 간의 기강과 질서가 바로 서지 않아 자꾸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남 총장의 문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도 모든 것이 기강 문제라는 '만물기강론'이 작동한 것이다. 주임원사들을 모아놓고 초급장교와 부사관이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점은 없는지, 일선 부대의 조직 문화에 불합리한 점은 없는지 등을 살피기보단 '장교는 부사관보다 위고, 그러므로 이에 순응해야 한다'라는 손쉬운 대책을 주문한 남 총장의 대응이 빚은 소동이다.

남 총장 식의 접근은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도리어 조직 내 집단 간 갈등을 부추기는 엉뚱한 결과로 나아갈 개연성이 높다. 이미 공론장에서는 장교 집단과 부사관 집단이 대립 관계로 설정되어 상호 복종 관계인지 존중 관계인지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부사관은 이 사태를 두고 "대부분의 일선 부대에서는 장교와 부사관이 서로 존중하며 잘 근무하고 있는데, 일각에서 범죄나 비행의 원인을 부사관 계급의 총체적 문제로 일반화하는 듯한 말을 해 도리어 위화감만 생겼다"라며 남 총장의 문제 인식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군이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식의 낡은 접근법을 버리지 않는 이상 조직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는 문제들은 계속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만물기강론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회피기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육군이 진정인들을 징계하지 않고, 국방부가 이번 기회에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과 책임을 명료하게 정립해 나가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고무적이다. 뒤늦게나마 군이 사태를 잘 수습하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형남 기자는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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