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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박사학위 논문주제는 '성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이었다. 이 논문을 쓸 때 아렌트는 정치이론가로 자처하기 이전, 철학박사 과정생이었다. 1929년에 아렌트는 이 논문을 완성했다. 독일어로 작성·제출된 이 논문은 1996년(아렌트 사후 20년), 후학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성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  Sandro_Botticelli의 그림
▲ 성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  Sandro_Botticelli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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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당시 마르틴 하이데거(M. Heidegger)의 제자로 공부하던 아렌트는 공부를 마치기 위해 하이데거의 친구 칼 야스퍼스(K. Jaspers)의 학교로 학적을 옮겼다. 학위과정 중에 지도교수를 급변경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렌트가 유부남 교수 하이데거와 연애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20세기 초반,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말하자면 결혼 바깥에서의 자유로운(?) 남녀관계가 제법 많았던 듯하다('권장할 만한' 건 아니었겠지만).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와 여비서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C. von Kirschbaum),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 Brecht)와 이른바 '브레히트의 뮤즈'로 불리웠던 다수의 여성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S. de Beauvoir)와 장-폴 사르트트(Jean-Paul C. A. Sartre) 철학자 커플도 그와 같은 자유연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또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사회학자 막스 베버(M. Weber)도 아내 마리안네의 허용 및 묵인 하에 혼인기간 내내 다른 여성과의 성관계를 충분히(?) 누릴 만큼 누렸다고 한다. 혹시 이런 류의, 이름하여 다만 가십거리가 아니라 혼외정사(Love Affair)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문예중앙에서 번역출간된 한넬로레 슐라퍼(H. Schlaffer)의 <지성인의 결혼(2012)>을 읽어보기 바란다.

다시 아렌트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공적으로 또 사적으로 하이데거와 이별한 후, 아렌트는 야스퍼스의 지도로 박사논문을 완성했다. 논문주제는 성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이었다.

성 어거스틴(St. Augutine, 아우구스티누스로도 불림)은 4-5세기경에 활동한 신학자다. 그는 구교와 신교를 통틀어 신학계에서 공히 우러르는 성인(Saint)이다.

박사과정 당시 아렌트는 신학도가 아니었다.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인도 아니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나고 자라며 철학을 공부한 다른 지성인들처럼 아렌트의 철학은 신학의 영역과 꽤 겹친다.

아렌트가 주목한 성 어거스틴 신학

아렌트는 성 어거스틴의 신학에서, 사랑 개념이 두 가지 양상으로 분석되었다는 사실에 우선 주목했다. 하나는 욕망과 갈망의 개념으로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대에게 끌리고 상대를 욕망하는 사랑이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 혹은 은총이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 사랑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통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 어거스틴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알 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죽을 운명을 나랑 공유하는 인간존재, 동시에 하느님께로부터 동등한 은총을 받는 한 인간존재로서 이웃을 알아볼 때 '너랑 나랑 같은 처지구나'를 깨달으면서, 인간은 자기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을 두 갈래로 분석하면서 이웃사랑 개념을 강조한 아렌트는, 훗날 '세계사랑(Amor Mundi)'이라는 개념을 주창하게 된다. 아렌트의 세계사랑은 욕망에 이끌리는, 타자와의 합입을 지향하는 욕망 가득한 첫 번째의 사랑이 아니다. 소유욕의 사랑이 아니다.

아렌트의 세계사랑 개념은 얼핏 기독교의 이웃사랑과 유사해 보인다. 세계사랑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서 이웃사람들이 가득 들어서있는 공적 영역을 지향하는 사랑이다. 공적 영역을 향하여 자신을 여는 사랑이다. '너랑 나랑 동등한 인간이구나'를 진심으로 깨닫고 체험하는 사랑이다.

공적 영역에서 타인을 만날 때 '동등성'을 탐색하기보다 은근히 비교하면서 나도 모르게 '차등성'을 찾고 있는가? 내가 높다 느낄 땐 타인을 멸시하는 마음이 들고, 내가 낮다 느낄 땐 비굴한 자세가 되는가? 그렇다면 세계사랑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마음 한 자락을 품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자신과 타인의 인간적 동등성을 망각하고서, 세계(세상만사)와 거리를 두는 무심함과 혐오감을 일컬어 '세계혐오'라 말했다. 현학적 탁상공론을 일삼는 철학자나, 해결책을 우아하게 제시한다고 잰체하는 전문가들 중 의외로 세계혐오에 빠져있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아렌트는 지적했다.

아렌트는, 세계를 사랑해서 자기대로 깊이 관심 갖는 것을 정치의 첫걸음이자 기본태도로 보았다. 그러므로, 세계사랑은 정치적 동물의 근본이며, 민주주의 정치체를 형성 및 유지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세계사랑의 밑바닥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과연 제대로 실천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독교의 이웃사랑 개념이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 함께 읽을 책: <인간의 조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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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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