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 제작진이 사과했다. 의대 6군데 합격으로 화제가 된, 과학고 출신 의대생 섭외와 관련해서 제작진은 "무지함으로 시청자분들께 큰 실망을 드렸다"라고 사과했다. 방송 이후 "과학고서 의대 간게 자랑? 세금 먹튀다"라는 비판이 연일 기사화 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과학고를 나와' 과학도의 길을 가지 않고 '의대에 진학한' 것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읽다 보니 30여년 전, 열여섯의 내가 생각났다. 

중학교 졸업반이었던 열여섯의 여름이었다. 시골의 작은 중학교였지만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나는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대학까지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사남매의 장녀인 내가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집안 살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 남은 동생들의 선택마저 제한하게 될 수도 있었다.

부모님은 가능하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교육 환경이 좋은 학교를 고르고자 하셨고, 아빠는 어느 날 '대전 과학고등학교'의 지원서를 갖고 들어오셨다. 과학고등학교의 조건은 꽤나 좋았다. 무엇보다 기숙사가 있었으니 안심하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하숙비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대학에 가지 못할까 걱정했던 동생들의 기원 덕분이었는지, 나는 60명을 뽑는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대전 과학고등학교의 신입생이 되었다. 

"네가 그때 과학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중학교 3학년 여름 이후로 3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엄마는 아직도 그 해 여름이 놀랍고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거쳐 KAIST로 진학한 덕분에, 세 명의 동생들을 모두 대학까지 교육할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과학고등학교를 2년 만에 마치고 KAIST에 진학해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의 12년 동안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큰 돈을 가져다 쓰지는 않았으니 가계에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셨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얘기한 이야기에서도 짐작하시겠지만,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은 '훌륭한 과학자'나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군'이 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싶었고, 대학교육을 받은 후 괜찮은 직업과 함께 '가난한' 고향을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과학고를 졸업했습니다만, 사회는 왜 이런 거죠
 
 과학고 입학을 결정한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좋은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다.?
 과학고 입학을 결정한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좋은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나는 이제 마흔여덟이 되었다. 같이 입학했던 60명의 동기들 중 몇몇은 국가 출연 연구소에서 선진 연구를 수행하거나 대학 교수로 근무하면서 후학을 키워내고 있지만, 대다수는 기업체에 자리를 잡았었다. 지금은 일찍 은퇴를 했거나, 도중에 전공을 바꿔서 다른 직업을 선택한 친구도 여럿 있다.

과학고와 KAIST에서 공부를 하던 시간 동안 나도 '훌륭한 연구자'라거나 '대한민국 산업의 역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환경이 좋은 연구소나 대학의 일자리 문은 무척이나 좁았고, 나는 첫 직장이었던 전자회사를 거쳐 지금은 철강회사가 만든 연구소에서 일하는 중이다. 그리고 20년 차 직장인인 나는, 더 이상 산업이나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일을 한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나만을 위한 일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기업이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성공할 때까지 수십 년씩 걸리는 연구소보다는 산업체에 바로 적용되는 연구가 좀 더 실용적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일터의 규칙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내가 경험한 대한민국의 일터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는 일터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0년 동안 나는 계속 실패했다. 반복되는 실패와 일터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겠다는 몸부림은 나라는 개인을 끝없이 위축시켰다. 과학고 입학을 결정한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좋은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다. 

이상이 내가 살아온 30년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나는, 과학고 후배들이 '먹튀'라고 욕을 먹더라도, 그들의 선택을 말릴 자신이 없다. 그들은 1983년에 과학고등학교가 처음 생긴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의 선배가 살아온 삶을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좋은 연구자가 된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고 산업체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대다수의 선배들은 나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지켜봤을 것이다. 

모든 것을 지켜본 그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먹튀'라고 욕을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어른들이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대한민국의 무서운 현실에서, 그들이 나의 삶을 되풀이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응원해야 하는가? 자신이 없다.

엘리트 교육이 쓸모 없어지는 세상이 오길
 
 우리의?일터가?좀?더?일하기?좋고?안전한?곳으로 변해야 하고, 개인이?존중받는?곳이어야 하며, 무엇보다?원하는 일을?하면서도?만족스러운?삶을?살?수?있도록?바뀌는?것이?먼저여야 한다.
 우리의?일터가?좀?더?일하기?좋고?안전한?곳으로 변해야 하고, 개인이?존중받는?곳이어야 하며, 무엇보다?원하는 일을?하면서도?만족스러운?삶을?살?수?있도록?바뀌는?것이?먼저여야 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상상을 해본다. 능력이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는 꿈이 제대로 이뤄진 2020년의 대한민국을 말이다. 연구자로 세상에 나온 나의 친구, 선후배들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저 그런' 직장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자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어땠을까?

일터가 조직의 논리로 그들을 길들이려 하지 않고 창의적인 의견이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면, 연구자는 '승진'이나 '성과급'에 기대지 않고도 그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속의 세상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고, 이런 세상을 만들지 못한 어른들에게 향해야 하는 비난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열여섯, 열일곱의 아이들에게 향해 있다. 이것은 결코 옳지 않다. 

나는 언젠가 이런 식의 '엘리트 교육'이 쓸모 없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우리가 가만히 지금의 방식을 되풀이하는 현실에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우선 우리의 일터가 좀 더 일하기 좋고 안전한 곳으로 변해야 하고, 개인이 존중받는 곳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바뀌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그렇게 된 후에야 소수의 선별된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엘리트 교육이라는 '특권'이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지금의 '먹튀 논쟁'도 쓸모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 정말 묻고 싶다. 당신은 특권이 사라진 '공정한'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