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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1일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시상식이 오마이뉴스TV를 통해 유투브로 생중계 된 적이 있었다. 당일 아침 남편은 평소에 안 입던 정장 코트 하나를 꺼내면서 오늘은 충남 공주시를 다녀와야 하는데, 학원 시작 전까지 오지 못하면 학생 차량을 부탁한다고 했다. 새만금 모니터링을 하는 날도 아닌데, 평일에 왜 가냐고 물으니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환경상을 받게 되었다고, 대표로 참석하는 거라고 했다.

남편은 나의 고향인 군산에 와서 환경보호활동을 하는 단체에 관심을 두더니,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회원으로 활동해왔다. 대부분의 환경 단체 사람들은 영리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본성이 자연 친화적이고 공공 사유가 발달되어 부정의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는데, 남편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환경단체에서 활동한 지도 어언 18년이 되었는데, 회원들은 그 흔한 단체증 하나 없이 순수하게 각자의 자비를 들여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특히 새만금의 개발로 인해 파괴되는 생태계 환경에 관심을 두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새만금의 수질이나, 조류 등의 생태계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개선할 부분에 대한 대안책을 제안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오랫동안 자기 돈을 써가며 활동하는 단체에게 누가 무슨 상을 주나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사)세상과 함께'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이 상을 발표하는 호소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었다.

'환경파괴의 현장에서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을 걸으면서 저항하고 대안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삼보일배 오체투지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느날 남편도 절둑거리고 들어온 날이 있었는데, 이유를 물으니 삼보일배를 했다고 했다. 무슨 객기를 부리는 거냐고, 그러다가 쓰러지면 환경운동이고 뭐고 무슨 의미가 있냐고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행사와 관련되어 새만금 시민 생태 조사단이 이번 상을 받는 건가 하고 진위를 물었다.

'세상과 함께'는 2020년 9월 1일부터 10월 16일까지 제1회 오체투지 환경상 공모를 진행했다. 그 결과 환경상 심사위원회는 총 15건의 개인과 단체를 수상자로 선정했고, 그중 남편이 활동하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의 수질-생태계 모니터링 사업'이라는 제목으로 연구활동지원기금과 상을 받는다고 했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새만금 삼보일배와 4대강 사업 반대 오체투지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 이런 시상식이 열린 거라고 했다. 어찌 됐든 환경을 위한 활동가들에게는 대단히 의미가 있는 상임은 틀림없었다. 당일 오마이뉴스를 보니 지난 10여 년간 4대강 사업에 맞서 죽어가는 강을 고발하고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대안을 제시한 김종술 시민기자님의 대상 소식도 있었다.

시상식에 다녀온 남편은 기념패와 연구비 상금 2000만 원 사인판, 따뜻한 보온병, 관련 책자들을 가득 들고 자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별도의 단체 사무실이 없는 관계로 학원의 방 한 칸에 이 물건들을 전시하고 사진을 찍어 조사단 회원들의 단톡에 올리는 데 몰두했다. 그동안 공식적인 단체증도 없이, 별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20여 년 가까이 꾸준히 새만금의 개발 전후를 지켜본 조사단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듯, 옆에서 보는 나도 흐뭇했다.

새해 들어서면서 나도 남편과 함께 월 1회의 조사단 활동여행에 참가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새와 자연을 보며 여행하는 맘으로 참석한다고 했다.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특히 오늘의 행선지가 미군부대가 차지한 군산 하제 마을의 팽나무 근처 저수지와 새만금 방조제에 날아든 철새들을 카운팅 하는 거라고 해서 즐겁게 여행길에 올랐다. 군산의 몇몇 시민단체들이 내땅찾기 운동을 할 때 하제마을의 팽나무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언젠가 꼭 내 눈으로 보아야겠다고 다짐하던 터였다.

미군의 탄약창고가 지척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살아온 하제마을 사람들이 이주를 당해야 했단다. 그곳에 서 있는 600년 수령의 팽나무를 지키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다 전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이 내 땅에서 왜 내 땅 찾기 운동을 하는지, 왜 팽나무가 내 땅의 나무가 되어야 하는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광지 팻말을 앞으로 한 채 앙상한 제 뼈를 다 드러내 놓고 서 있는 팽나무. 수많은 세월의 더께를 인 채 '지역사람들과 함께'가 아니라면 자신의 존재 역시 살아있을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두텁고 거친 팽나무의 살결을 만지면서 그의 고뇌를 함께 느꼈다. 지역민으로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동감하고 물러났다.

근처의 옥구저수지에 모여든 청둥오리떼, 기러기떼의 카운팅을 시작으로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하제포구, 새만금 방조제 초입을 거쳐 많은 철새들이 눈에 보였다. 물의 결빙도가 100%에 가까워 철새들의 먹이 활동이 제한적이라고 동승한 지인이 말했다. 까까머리 중학생의 머리털 만큼 자란 보리싹이 가득한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왜가리와 비오리 떼를 보면서 공생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하제 마을 곳곳에 서 있는 입간판의 문구들은 오로지 '금지' '처벌' '위반' 이란 빨간 글귀들이 가득했다.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이 글귀들이 닿기나 할 것인가. 미군이 설치한 철조망 아래 써 있는 'Controlled Area'를 읽을 줄 모르는 새들이 부럽기도 했다. 찬 공기를 타고 내려온 햇살 속에서 자유롭게 비행하는 쇠기러기와 말똥가리들의 날개짓을 보면서 이 하제마을이 우리 땅이길 기원했고, 수호신 같은 팽나무가 우리 지역민의 품에서 안녕하길 기도했다.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시상식에서 남편(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 김형균)은 이런 소감을 전했다.

"환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새만금의 국책 사업에서 해수유통이라는 용어가 우리 마음에 마중물처럼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물은 생명의 물이 될 것입니다.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 자연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환경은 하루만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길고 긴 시간, 어느덧 나에게 다가옵니다. 여러분들의 정열과 꾸준한 힘, 연대의 힘이 모여서 좋은 환경을 다가올 것입니다."
 

태그:#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제1회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세상과함께, #새만금방조제, #군산하제마을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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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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