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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버님의 87세 생신 상을 차렸다. 평소 같으면 성남, 익산, 경기 광주, 여주, 분당 그리고 용인에 살고 있는 동생들이 함께 모여 축하 자리를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가족 모임을 가질 수 없는 관계로, 성남 가족들만 참여했다.

아버님 생신은 음력 11월 29일이다. 덕분에 해마다 가족 송년회를 겸하곤 한다. 물론 생신이 올해처럼 새해로 넘어오면, 가족 신년회가 되는 셈이다. 연중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횟수는 구정을 시작으로 아버님 생신까지 총 다섯 차례다. 하지만 작년 한 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가족 모임이 취소되었다.

그 여파가 올해까지 이어지다 보니 연초 아버님 생신에도 모일 수 없게 되었다. 동생들은 아버님 생신까지 거르는 게 내키지 않았는지, 날을 달리해서 부부 동반으로 잠깐씩 다녀갔다. 아버님이 연로한 탓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어서다.

동생 내외는 실내에서도 여간해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만나는 시간도 1시간 남짓이다. 아버님 얼굴 뵙고 준비한 용돈을 전하고 나면, 별반 나눌 이야기도 없다. 아버님은 귀가 어두워서 잘 알아듣지도 못한다. 할 수 없이 편지에 용돈을 넣어 드리면서 손글씨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우리 부부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버님을 뵈러 온 동생 내외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다. 따듯한 차 한 잔과 과일을 먹으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것도 30여 분 남짓이다. 코로나에 극도로 민감하신 아버님의 뜻을 잘 알기 때문에,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바쁘다.
 
가족의 마음
▲ 87세 생식을 축하 드립니다 가족의 마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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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중 맏이인 익산 동생을 제외하곤 대부분 성남에서 가까운 곳에 산다. 본가와의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동생들은 비정기적으로 아버님을 찾는 횟수가 잦은 편이다. 하지만 익산 동생은 공식 모임 외엔 참석이 쉽지 않은 탓에 늘 미안해한다. 맏딸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익산 동생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

"넌 괜찮아, 엄마가 많이 아파서 네가 8살 때부터 부엌살림을 챙긴 세월이 얼 만데, 자그마치 19년이다. 미안해할 이유도 없고, 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나무랄 동생도 없으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

다른 동생들도 다 안다. 큰 언니가 자신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필자는 물론 동생들도 익산 동생에게서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향수를 느낀다. 그래도 공식 모임을 거르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아버님 생신을 3일 앞두고 카톡으로 익산 동생 문자가 들어왔다. 

"오빠, 계좌 번호 문자 찍어 줄래. 조금 보낼게. 아버지 드시고 싶은 거 사드리게."

답신을 보내면서 아내에게 문자 내용을 알려주었더니 한 마디 보탠다

"그러니까 맏딸이지… 맏이는 다 그래, 알지 나도 맏딸인 거?"

한바탕 웃음으로 뻘쭘한 상황을 넘긴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다른 동생들은 자신의 처지에 맞게 자식 도리를 다 하지만, 익산 동생은 조금 다르다. 말 한 마디, 행동 거지 하나도 우리 부부를 배려하는 게 느껴진다.

궁극적으론 아버지를 위해 써달라는 돈이지만, 그 마음에서 우리 부부를 신뢰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익산 동생은 내게도 그렇지만 아내에게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말을 건넨다. 

"아버지 모셔줘서 고마워요."

아내는 아버님 모시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맏이로서 당연히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산 동생은 기회가 될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자신도 시부모를 오랫동안 모신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홀 시아버지를 모시는 아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게다.

돌이켜 보면 아내는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1남 5녀의 맏아들, 거기다가 깐깐한 홀 시아버지까지 모셔야 하는 집으로 시집 온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결혼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친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집 식구가 되겠다고 상복까지 입었다.

그런 아내가 30여 년이 넘도록 아버님을 모시는데 고맙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익산 동생의 말과 행동은 무뚝뚝한 동생들을 대신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겐 동생이지만 한 편으로 누나 같은 동생이다.

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 확산이 진정되곤 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이대로라면 구정 가족 모임도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님의 의지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코로나가 확실하게 잡히지 않는다면 가족 모임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6형제(1남 5녀) 가족이 모두 모이면 자그마치 스물셋이다. 아니나 다를까,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버님이 다가오시면서 한 말씀하신다.

"아범아, 구정 때 애들 오지 말라 해라, 알았지?"

태그:#87세 아버님 생신, #큰 딸의 마음, #코로나가 취소시킨 가족모임, #고마운 아내,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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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헤매지 않기 위한 ‘은퇴 살이 해법’을 고민합니다. 더하여 시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인생살이 요모조모’를 말과 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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