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계의 전설'로 불리우는 이경규는 최근 출연한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11일)에서 뜻밖의 고민을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경규는 '자신이 분노가 많은 스타일'이라고 고백하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아무 때나 불쑥불쑥 화가 나서 고민이다, 옛날보다 더 심해졌다"고 고백했다.

다소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경규는 "카메라 앞에서는 화를 잘 안 낸다. 이미지 관리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나 스태프들에게 화를 잘 낸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것저것 많은 일을 시키면 화가 난다. 휴대폰을 던져 버린 일도 있다. 그런데 막상 촬영 현장에 오면 시키는대로 다 한다. 녹화가 끝나고 화가 풀리면 스태프들에게 밥이나 술이라도 한 번씩 사주면서 사과한다"며 자신이 상처를 줬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유머를 섞어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경규의 언행은 작가나 스태프들에 대한 '갑질'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방송 이후 일부 시청자들은 이경규의 갑질을 희화화하는 모양새에 불편하다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이경규가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내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데 더 주목했다. 사실 이경규 정도의 위치에 오른 연예인이 굳이 자신의 흠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알고 보면 이경규의 흑역사 들추기는 <물어보살>이 처음은 아니다. 이경규는 최근 몇 년간 예능에서 자신의 과거 일화와 이미지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진땀을 흘리며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다.

JTBC <한끼줍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희극인 후배 윤정수에게 과거 화장실에서 신발을 집어던지며 꾸지람을 했던 일화를 인정하며 반성하기도 했다. 이경규의 독설과 막말에 상처받았다는 방송계 후배들과 제작진들의 일화는 지금도 심심하면 등장한다. 그만큼 이경규는 전형적인 '꼰대'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이경규의 이미지는 많이 바뀌었다.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등 당시 진행하던 주요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슬럼프를 겪었고, 달라진 방송계의 트렌드에 적응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걸까. 요즘은 권위를 내려놓고 후배들의 공격과 장난을 받아주는 샌드백 역할을 수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카카오TV <찐경규>나 채널A <도시어부> 등에서 이경규는 골탕먹고 망가지는 선배의 모습을 보인다. 화를 내고 버럭하는 모습만큼이나 웃음의 포인트가 되고 있다.

'씨름 전설' 이만기는 지난 9일 방송된 KBS2 <사장님귀는 당나귀귀>에 출연해 후배인 김기태 영암군 씨름단 감독을 향한 사이다 팩폭으로 화제가 됐다. <당나귀귀>는 대한민국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보스'(사장님)들과 그 소속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터와 일상 속 관계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특별 손님으로 초대된 이만기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직접 샅바를 메고 모래판에 들어가 선수들에게 일일이 코칭을 해주는가 하면, 뒷짐만 지고있던 김기태 감독에게는 "젊은 꼰대가 됐다"며 농담 속에 뼈 있는 쓴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한편으로 회식 자리에서 김기태 감독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선수들에게 감독의 입장에서의 고충을 대신 해명해주는 훈훈한 모습도 보여줬다. '리더가 되려면 말이나 권위가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레전드의 일침은, 그동안 갑질을 웃음으로 미화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당나귀귀>의 젊은 보스들에게도 울림을 주기 충분했다.

재미있게도 이만기는 현재 고정출연 중인 또 다른 예능 <뭉쳐야 찬다>에서 한때  '꼰대' 이미지로 욕을 먹기도 했다. 가장 떨어지는 축구실력에도 발전이 더디고 경기때마다 후배들의 실수를 탓하는 모습으로 방송 초 시청자들의 비판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뭉찬>이 시즌1의 피날레 무대인 전국대회 편에 돌입하면서 이만기의 역할이 재조명받고 있다. 방영 초반 후배들을 주눅들게하던 잔소리나 권위적인 모습은 사라졌다. 오히려 첫 경기에서 어쩌다FC가 선제골을 허용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자 "우리가 이보다 더 힘든 고비가 넘어왔는데 이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후배들을 격려하는 든든한 맏형의 모습을 보여줬다.

출전기회를 얻지 못해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후배들이 좋은 활약을 펼칠 때마다 벤치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환호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호평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8강진출이 확정된 가운데 경인축구회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마침내 출전기회를 잡아 그동안의 한을 풀 듯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정환 감독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영화계 전설인 배우 박중훈은 최근 라디오 방송인 <정은지의 가요광장>에 출연하여 '꼰대가 되지 않는 비결'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의 어제를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진심으로 상대를 친구처럼 대하면 진짜 친구가 되더라"는 것이다.

덧붙여 박중훈은 "가끔씩 나이가 계급인 양 쓸데없는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침을 놓기도 했다. 박중훈은 연예계에서 어느덧 대선배급의 나이가 되었지만 다양한 세대와 분야의 선후배들과 폭넓은 인맥과 친분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경규, 이만기, 박중훈의 공통점은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과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경규 이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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