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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싱어게인> 29호님에 푹 빠졌다.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은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재야의 실력자들을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30호님에 대한 팬심으로 시작했다가 본격적인 결승전으로 돌입하면서 29호님에 빠져 버렸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과도 카톡으로 29호님 이야기를 하며 대동단결하고 있다. 한 친한 동생은 29호님의 1-4라운드 1시간 연속듣기 동영상을 보내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아침에 들어야 하루가 힘이 나요."

이만하면 1일 1깡 부럽지 않은 인기 아닌가. 사람들이 'OO호'라 부르는 이 가수들에게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영리한 기획과 출연자들의 실력 외에도 아마 출연자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9호님, 헤비메탈 하며 학원 운영으로 생계
 
 싱어게인 29호님이 노래부르는 장면.
 싱어게인 29호님이 노래부르는 장면.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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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다들 구구절절해서 그나 나나 비슷한 처지일 텐데도 자꾸 엄마 마음이 된다. 그래서 보다 보면 떨어트릴 사람이 없다. 한편으론 저런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잘 나가는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생계까지 위협받는 방송작가직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오지랖이다.

역시나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래만 부르고는 살 수가 없어서 다른 일을 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29호님 역시 헤비메탈 그룹을 하면서 학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저 맘 내가 알지' 하면서 무한 공감충이 되어 버린다.

어느 날 갑자기 방송국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책도 쓰고 간간이 기고도 했지만 글 쓰는 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뼈아프게 경험한 탓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겠다 싶어서 결국 쓰는 일을 그만둔 적도 있다.

비단 나만 겪는 이야기도 아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지인들 중에는 글쓰기 강의를 뛰며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꽤 많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더'의 기회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 더'의 기회를 잡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시 방송작가로 일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적이네."

나는 방송작가의 생태계상 오십을 넘은 나이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는 '한 번 더'의 기회가 주어진 것, 그래서 투잡을 뛰어도 되지 않게 된 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스스로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런 걸 기적으로 여기는 게 당연한 걸까.

29호님을 비롯해서 싱어게인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무명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가수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기적을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기적에 기대서만 살 수는 없다. <싱어게인>이라는 무대에조차 서지 못한 수많은 무명들만 생각해도 그렇다. 기적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노래도 밥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

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투잡을 안 뛰고 자신의 '업'만으로는 살 수 없는 걸까. 왜 가난해야 할까. 씁쓸한 질문이 꼬리잡기를 한다. 글만 쓰고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삶. 노래만 부르고는 밥 벌어 먹고 살 수 없는 삶이 너무 공기처럼 많다. 어디 글쟁이와 가수뿐이랴.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심은우씨가 출연해서 배우 활동과 동시에 요가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배우만의 일도 아니다. 서울시와 방송연기자 노조가 공동으로 실태조사(2020년 10월~11월)를 한 결과, 연기자 10명 중 8명은 한해 1000만 원 미만의 출연료를 받고 있으며, 방송연기자 절반 이상이 생계를 위해서 투잡을 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판이나 대중문화 쪽 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실태조사에서도 1년 동안 예술인이 창작활동으로 벌어들이는 개인소득은 연평균 1281만원. 월평균 106만 원가량이었다. '수입 없음'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28.8%로 가장 많았다. 아마 코로나를 겪은 작년 통계를 내면 더 참담하지 않을까.

자신의 업만으로는 밥 벌어 먹기 힘든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속이 뻥 뚫리는 로커의 진정성 있는 노래를 듣고 웬 밥타령인가 싶지만, 노래도 밥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 오래오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싶어서, "이거 아침에 들어야 하루가 힘이 난다"는 친한 동생의 말마따나 요즘 같은 때, 노래가 주는 힘과 위안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대신 꾸깃꾸깃한 현실을 꺼내봤다.

29호님이 포효하듯 불렀던 노래처럼, 29호님뿐만 아니라 아직 '한 번 더'의 기회를 기다리는 이 세상의 못다 핀 꽃 한송이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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