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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길에 쓰러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 했다. 심지어 엄마까지 바꿔 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급이송을 해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전화를 '뚝' 하고 끊었다. 후들대는 손가락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고" 하는 익숙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에 다시 피가 돌았다.
 
 엄마가 길에서 쓰러져 긴급이송을?해야?하는데?돈이?필요하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전화를 '뚝' 하고 끊었다.
 엄마가 길에서 쓰러져 긴급이송을?해야?하는데?돈이?필요하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전화를 "뚝" 하고 끊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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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다급함을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숙모가 그랬다.  

"옛날에 느그 할매도 보이스 피슨가 뭔간가 당했다 아이가."
"에이~ 말도 안 돼! 그 시절에 전화도 없는 데... 무슨~"
"니 말 들어 보이 까니, 따악 그긴데? 보이스 피스."
"보이스피싱?"
"그래, 그 보이스 머시기...딱 그기다."


숙모는 보이스 피싱의 옛날 버전인 할머니 사기 사건의 전말에 대해 말해주었다.

내 할머니는 쪽진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분이었다. 참빗으로 가르마를 반으로 나눈 뒤 뒷머리를 쫙 쫑여맨 뒤 은비녀를 꽂고 다녔다. 머리는 반들반들했고 한복 깃은 늘 빳빳했다. 할머니는 안채, 남편은 사랑채에 살았다. 부부가 같이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은 없지만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가난한 살림에 어렵사리 자식들을 키워내고 막내까지 도회지로 내보냈을 시절이었다. 많이 돼야 쉰 안팎쯤 됐으려나. 미끈한 한복을 입고 은비녀를 꽂은 채 그녀는 읍내에 장을 보러 나갔다. 그 많던 자식도 다 제 밥벌이 하러 떠나고 없으니 장보는 것도 수월했다. 하지만 타지에 나간 자식을 생각하면 맘이 장바구니처럼 가벼울 수만은 없었다. 그때 한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는 체를 해왔다.

"거, 아들 있지요?"
"네. 맞아요."
"에헤이, 이래 지금 장 볼 때가 아이다. 지금 클났다. 아직 못들었는갑네. 외지에 있는 아들이 크게 사고가 났다 안 카나."
"누구? 운전하는 우리 막딩이 말인교?"
"그래 그래, 가 말이다."


다른 말은 안 들리고 '아들', '사고'란 말만 크게 들렸다. 그 당시 막내 삼촌이 타지에서 택시 운전을 할 때라 그 말에 더 동요됐는지 모른다. 빳빳이 풀먹인 한복을 입은 여인네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그 사람을 붙잡고 사정사정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수중에 있는 돈을 요구했다. 할머니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고 주섬주섬 속곳에 넣어둔 쌈짓돈을 꺼냈다. 그리고 머리에 꽂힌 은비녀까지 뽑아서 그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뿐인데 우야지요?"
"그라믄, 이래 합시데이. 내가 이걸 들고 가서 급한 불부터 끌테니까 아지매는 집에 가서 수술비랑 챙겨서 오소. 우선 아들부터 살리야 할 거 아니가. 그라고 이건 미신이긴 한데 집에 금붙이 같은 거 있으면 저 쪽 읍사무소 뒤에 큰 느티나무 알지요? 그 아래 하루동안 묻어 놓고 기도 하소. 그라믄 막둥이 아들은 별 일 없을 끼고만. 나도 그래가 자식 하나 살맀다 아인교."


할머니는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집으로 달려가 장롱을 헤집었다. 몇 안 되는 패물을 몽땅 꺼내 느티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처음 본 작자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냐 싶지만 당해본 내가 알건데 그 순간은 뭐에 홀린 듯 믿게 된다.

자식의 생사를 두고 그 얼마나 잔인한 상상을 했을까? 뭐라도 매달리고 싶은 게 부모 심정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전 재산인 패물을 아무도 모르게 느티나무 아래에 구덩이를 파서 묻고 기도를 했다. 마주한 손바닥에 뜨거워질 때까지 "내 아들 살려주소, 내 아들 살려주소" 하며 눈물을 흘렸다. 미신이든 뭐든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들을 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간절한 기도를 마치고 급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동네 사람을 만났다. 파랗게 질린 할머니 표정을 보며 그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가 말했다.

"그거 사기 아이가?"

사기? 사기?! 사기!!! 사기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할머니는 그 길로 냅다 느티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반짝이던 할머니의 보석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후였다. 수소문 끝에 막내 삼촌도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 날 이후, 할머니는 병이 났다. 얼토당토않은 사기를 당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광이 나지 않는 비녀를 꽂을 때마다 몹시 비참해졌다. 점점 야위어 가는 그녀를 보고 자식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은비녀와 금반지를 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끙끙 앓았다.   

나는 인중을 오무리며 말했다.

"반세기 전 얘긴데 수법이 어쩜 이렇게 똑같지?"
"맞제? 이거 보이스 피스하고 똑같재?"
"할매가 내보다 훨씬 더 일찍 보이스 피싱을 당했네. 근데 사기꾼들도 창의성 부족 아니가? 맨날 써먹던 거 또 써먹고..."
"그기 왜 그런 줄 아나?"


하수를 대하는 고수처럼 숙모가 말했다.

"사기꾼은 부모 자식 갖고 사기 치는 게 젤 쉽다. 자식 잘 된다카믄 거리에서 빨가벗고 춤춰라 캐도 춘다 아이가. 백 년이 지나 봐라. 보이스 피스가 없어지나. 지금 맨치로 부모, 자식 들먹이며 등쳐 묵고 있을끼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과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그것. 대관절 부모와 자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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