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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 첫 출근날, 아침 해를 보며 다짐했다. 연초 계획을 장황하게 세워봐야 일일이 기억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걸 숱하게 경험한 바다. 올해부턴 금연이나 금주처럼 굵직한 것 딱 하나만 계획하고, 똑 부러지게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해마다 플래너를 사서 월별 계획을 적어 넣으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물론 설렘과 기대는 그때뿐이었고, 늘 작심삼일로 끝났다. 한 해의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보잘것없었다. 그래놓곤 연말이 되면 다시 플래너를 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돌이켜 보면, 성공 사례가 아예 없진 않다. 2004년 정초엔 담배를 끊었고, 2010년엔 TV를 끊었다. 이후 담배를 입에 댄 적 없고, 축구 생중계를 보는 것 외에는 TV 앞에 앉지 않는다. 당시 가족들 보는 앞에서 담뱃갑을 부러뜨렸고, 리모컨을 없애는 걸로 다짐을 표현했다.

결혼 조건, 채식
   
 채식을 실천하자는 건 결혼의 약속이자 조건이기도 했다.
 채식을 실천하자는 건 결혼의 약속이자 조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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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단연 첫손에 꼽는 건, 2001년 아내와 함께 시작한 채식이다. 새로운 천 년의 시작이라며 의미를 부여하는 호들갑스러운 분위기 속에 나름 뜻깊은 일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기실 채식을 실천하자는 서로의 다짐은 결혼의 약속이자 조건이기도 했다.

처음엔 즐겨 하던 삼겹살과 치킨을 끊는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아내와 둘이서 원칙을 세우는 과정에서 금기 사항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실천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임을 시나브로 깨닫게 됐다. 채식은 음식을 넘어 익숙한 일상을 통째로 바꿔야만 하는 일이었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굳이 단계를 구분한 건, 채식이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채식은 각자의 생각과 여건, 체질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행위일진대, 따로 정답이 정해져 있을 리 없다.

참고로 채식에는 폴로(Pollo)부터 페스코(Pesco), 락토-오보(Lacto-Ovo), 락토(Lacto), 비건(Vegan)까지 다섯 단계가 있다. 폴로는 소나 돼지 등 네 발 달린 동물만 먹지 않는 가장 낮은 단계이고, 비건은 모든 동물과 유제품, 달걀 등 부산물까지 먹지 않는 가장 높은 단계다.

페스코는 소나 돼지를 포함해 닭과 오리 등 가금류까지 먹지 않고, 락토-오보는 육류와 함께 생선도 먹지 않는 단계다. 락토는 우유나 치즈 등 유제품을 제외하곤 동물과 부산물을 전혀 먹지 않는다. 비건은 완전 채식 단계로, 심지어 달걀과 우유가 함유된 과자도 먹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폴로로 시작해 20년이 지난 지금은 페스코 단계다. 소, 돼지, 닭 등 육류만 먹지 않을 뿐이라 남들 앞에서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긴 좀 뭣하다. 대개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비건을 떠올리고, 채식한다면서 생선과 달걀은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삼겹살과 치킨의 기름 냄새에 비위가 상할 만큼, 이제 채식 습관은 되돌릴 수 없는 일상이 됐다. 비록 동료들끼리의 회식 자리를 멀리하게 되어 관계가 조금 서먹해지는 느낌이 있지만, 크게 괘념치 않는다. 대신에 몸은 가벼워졌고, 마음은 느긋해졌다. 누가 뭐래도 채식 덕분이다.

무엇보다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는 건 교사로서 상당한 이점이다. 특히 기후 위기가 국제적으로 이슈화하는 상황에서, 강의 내용에 진정성을 불어넣어 준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목초지 조성을 위한 삼림 훼손을 문제 삼을 때 채식주의자의 말이라면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근래 들어 기후 위기와 관련된 내용은 과목과 상관없이 교과서마다 수록되어 있다. 도덕과 사회, 국어 등 인문 교과의 경우, 아예 채식의 실천이 대안이라고 못 박고 있을 정도다. 요즘엔 수능에서도 기후 위기와 채식을 관련지은 지문이 종종 출제되곤 한다.

실패한 채식 전도
  
 10년 전 아이들에게 채식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채식을 시작해보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얼마 못 가 대부분 뜻을 접었다.
 10년 전 아이들에게 채식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채식을 시작해보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얼마 못 가 대부분 뜻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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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시작하고 10년쯤 지났을 때다. 우연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법정 스님의 수필을 읽은 뒤, '채식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좋은 걸 나만 하면 되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채식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는 판단에서다.

법정 스님의 글은 소고기 1인분을 생산하기 위해서 30인분의 곡식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지구는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지만, 한 사람의 탐욕을 채워줄 수 없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일갈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다. 채식주의자들이 실천의 당위로 삼는 구절이기도 하다.

수업 시간 짬을 내어 육류 소비의 증가와 아마존 밀림의 파괴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소개하곤 했다. 축산 폐수와 분뇨의 메탄가스가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것도 각종 통계를 보여주며 공감을 얻으려 했다. 이따금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채식을 시작해보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얼마 못 가 대부분 뜻을 접었다. 어릴 적부터 육류와 가공식품에 길들어진 입맛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아이들이다.

얼마 전 한 아이는 채식을 실천하겠다는 옹골찬 다짐이 고작 반나절 만에 꺾였다며 멋쩍게 웃었다. 점심시간 급식소의 메뉴판을 보자마자 이내 포기하게 되더라고 했다. 그의 의지를 단박에 꺾은 점심 메뉴는 치킨 마요네즈 덮밥이었다. 핑계 삼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멀리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는 당장 학교 급식소의 메뉴부터 문제 삼았다. 1년 365일 점심시간에 고기반찬이 하루도 빠지지 않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채식을 권하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라고 했다. 불고기에 환호하는 친구들 옆에서 밥에 김치만 먹고 있으면 자칫 놀림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양교사도 할 말은 있다. 고기반찬을 내놓지 않으면 아이들은 아예 급식소 대신 매점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부모들의 항의까지 빗발쳐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애초 가정에서 잘못 길들어진 식습관을 학교가 바로잡을 수 있는 방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채식 메뉴를 별도로 제공해달라는 요구는 지금까지도 소리 없는 메아리 신세다. 극소수일지언정 알레르기나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과 채식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배려해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절대다수를 위해 극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이었다.

가짓수를 늘려 채식 메뉴를 준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채식하려는 이들만 먹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식판에 담게 돼 급식비가 인상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댄다. 채식주의자의 까탈스러운 식성을 위해 왜 내가 비용을 치러야 하느냐는 반발인 셈이다.

채식을 시작한 지 20년, '채식 전도사'를 자처한 지 10년 동안 홀로 힘겹게 싸웠으나, 급식소 메뉴의 일점일획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매일 같은 급식소를 사용하는 100명에 이르는 교직원 중 단 한 명도 함께 채식하자고 설득해내지 못했다. 이쯤에서 패배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20년 동안 이어온 채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일상이 된 마당에 고기를 먹는다는 건 이젠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단지, 식습관을 건드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등의 감정 소모를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채식은 스스로 마음이 동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 급식소에서 내 텅 빈 식판으로 인해 불편을 끼쳤다면 이 글을 통해 정중히 사과한다. 주방 선생님들은 날 보며 한사코 미안해했고, 동료 교사들이 내심 불편해했음을 안다.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급식비 환불을 요청하라는 이도 있었다. 그건 실은 조롱이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2021년 새해 첫 출근날, 다시 나만의 방식으로 채식을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바쁜 아침이지만, 매일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고기반찬으로 뒤덮인 급식소와 정든 식판과의 이별이다. 대학 기숙사와 군 복무까지 포함하면 30년 넘게 식판에다 밥을 먹었는데 서운한 마음도 있다.

모두가 급식소에 간 점심시간, 휴게실에 덩그러니 앉아 홀로 먹는 식사가 맛있을 리 없겠지만, 여기저기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먹을 순 있을 것 같다. 급식소 메뉴는 못 바꿨지만, 아이들에게 채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 계속된다.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으니 가르쳐야 한다.

사족 하나. 한 동료 교사에 대한 험담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스크 쓰는 게 너무나 귀찮다고 한다. 입만 열면 대체 백신은 언제 나오냐며 정부의 무능을 질타한다. 또, 머그잔과 텀블러가 불편하다며 종이컵을 곁에 쌓아두고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고기반찬 없이는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는 과연 일회용품 사용과 육류 소비의 증가 등이 코로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걸까. 그의 앞에서 채식 이야기를 꺼내는 건 무망한 일이다. 기회가 되면 그에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세상이 저절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지를. 명색이 그는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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