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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청소년'이라는 단어의 차이점을 아는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주변의 친구들에게 두 단어의 차이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다섯 명 남짓한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는데 한 명의 친구만 차이점을 안다고 대답했다. 구분하기 어려운 단어다. 하지만 구분해야만 한다. 모든 청소년은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제도권 학교 안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도 있고, 제도권 학교 밖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도 존재한다. 모두 학생은 아니지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이다. 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청소년이지만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오늘도 교육에서 소외되고, 언어에서 소외되고 있다. 교육부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2019학년도 초중고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1.0%로 5만 2261명에 이른다. 이처럼 상당수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않아 학생증이 없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 사회적,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가진 편견을 무너뜨리고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언어 사용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투명인간들은 학생이라는 단어 안에 없다. 제도권 학교에 진학하지 않았기에 학생으로 불리지 않는다. '학생'이라는 단어를 '청소년' 대신 사용하는 것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배제이며 차별이고 편견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던 나도 한 번 실수한 적이 있다. 청소년 활동을 해나가면서 했던 실수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휴대전화 강제 수거에 반대하는 챌린지 관련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걷지 않는 학교의 학생이나 성인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아는 지인에게 학교 밖 청소년을 배제하는 글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 잘못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 밖 청소년을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었다. 깊이 반성한다. 그 이후로는 학생과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쓸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쓴다.

우연히도 이 기사를 쓰던 도중 정부에서 실내체육시설에 대한 방역 조치를 일부 완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완화 조치의 내용은 실내체육시설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9인 이하의 영업은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나는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나는 규제 완화보다, 쏟아지는 기사 제목에 더 눈길이 갔다.

 
뉴스1에서 '학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도한 기사입니다.
 뉴스1에서 "학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도한 기사입니다.
ⓒ 안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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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학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KBS에서 "학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 네이버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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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과 '학생'을 대상으로 9명 이하에 한해 영업을 허용한다고 한다. 이 기사의 제목에도 학교 밖 청소년은 없다. '학생' 대신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사는 많지 않았다. 학교 밖 청소년은 기사 제목에서도 배제되었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우리가 한때 쓰기도 했고 쓸 수도 있지만, 이제는 쓰지 않는 말들에 대한 글을 쓰고 함께 읽는 프로젝트이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써온 '여자 같다', '남자 같다' 와 같은 차별적 표현, 내가 쉽게 써왔던 혐오 표현들도 보였다.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당연하게 써 왔던 표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 표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학생'이라는 단어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얼마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만 잘해도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의 속담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속담을 반대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반대로 해석하면 말을 잘못하면 쉬운 일도 해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말은 양날의 검이다.

나는 이제 '학생'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한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교정이 아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과 차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며, 학교 밖 청소년 문제에 대한 작은 연대이다. 여러분에게도 작은 연대와 동참을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태그:#학생, #청소년, #언어, #차별, #학교밖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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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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