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모술> 스틸 컷.

영화 <모술> 스틸 컷. ⓒ 넷플릭스

 
ISIS가 점령한 뒤 폐허로 변한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 이곳에서 살상과 고문은 일상이 되고, 서로 다른 세력과 부대들은 모술을 유지하거나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어느 날, 경찰 '카와(아당 베사)'는 테러리스트를 체포한 후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다. 그는 정부군과 별개로 독자 작전을 수행하는 니네베 경찰 특공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지만, 전투 과정에서 삼촌을 잃는다. 특공대 리더인 '자셈(수헤일 다바치)'의 권유를 받고 팀에 합류한 후 카와는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적의 심장부를 향해 전진한다. 

2000년대 들어 <그린 존>, <허트 로커>,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같은 할리우드의 많은 밀리터리 영화들은 중동, 특히 이라크로 향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미군들의 사망과 PTSD 같은 심리적 고통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무분별한 전쟁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비판적 목소리가 장르 영화에 반영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고 반성하는 메시지가 유의미한 것과는 별개로 한 가지 의문을 낳는다.

대부분의 작품이 미국인의 시각으로 미군과 가족들의 고통, 전쟁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사회 정치적 이슈들에 주목하다 보니 "또 다른 당사자인 이라크 사람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공백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위 질문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답을 내놓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모술>은 더욱 특별하다.

<모술>은 짧게는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십수 년, 길게는 이라크-이란 전쟁으로부터 수십 년간 이어진 이라크의 현재를 모술에서 펼쳐지는 시가전 안에 담아낸다. 이라크 정부가 공식적으로 2017년 7월 9일 모술을 탈환했기 때문에 영화 내용이 현재와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란의 지휘를 받는 시아파 군인이 이란의 적대국인 미국과 유럽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한 이라크 국내외의 정치적 혼란은 언제든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니네베 특공대의 임무 수행 과정은 현재 이라크 상황을 압축한 것과 다르지 않다.

카메라에 담긴 이라크의 현실은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ISIS에 맞서 테러리스트를 체포하는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경찰은 무능하고 부패한 이라크의 공권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 SWAT 팀이 이라크 정부군의 명령을 무시하며 오히려 회유 내지는 협박하는 것, 민간인이 공격받는 와중에 정부군이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한편 작중 등장하는 전투들의 공통적인 양상은 이라크 내전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암시한다. 전투들은 대부분 자셈이 세운 작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을 낳는다. 전투가 끝난 후에도 부비트랩 때문에 희생을 감수해야 하거나 비중 있게 등장했던 인물이 적의 공격을 맞아 바로 사망하는 식이다. 이는 마치 후세인 정권만 무너뜨리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미군의 예상과 달리 미군의 철수와 동시에 이라크라는 화약고에 불이 붙어버린 역사가 국지적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전쟁이나 전투 과정에서 여러 변수가 발생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데, 사실적인 전투신 연출 덕분에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끊이지 않는 이라크의 현실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실제로 영화는 웅장하거나 비극적인 음악을 가급적 배제한 채 인물의 시점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 각 인물의 동선을 명확히 보여주면서도 핸드 헬드 카메라를 이용해 현장감을 살리고,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전투 상황의 긴박감과 긴장감을 적절히 살려냈는데도 불구하고 작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전투신을 뽑기는 어렵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투가 연이어서 벌어지다 보니 역으로 총소리가 나지 않고, 대사가 액션보다 많은 대목에 시선이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동적인 영화는 자셈이 길가에서 한 아이를 구하고 다른 가족에게 위탁할 때, 그가 무기와 물자를 교환하기로 합의한 자리에서 이란군 대령과 언쟁을 벌일 때, 그리고 니네베 경찰 특공대의 작전 목표가 가족과의 재회였음이 드러나는 순간 정적인, 즉 움직임이 적은 대신 감정선은 가장 격정적인 상태로 변한다. 

특히 두 번째 언쟁 장면에 주목할 경우 이 장면들은 이라크의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비판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희망하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란군 대령은 이라크가 진정한 국가도 아니고, 서방 열강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국가에 불과하다고 자셈을 힐난한다. 이 한 마디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제국의 일부였고, 식민지가 된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듯이 열강에 의해 억지로 국경선이 만들어진 결과 하나의 독립된 국가적 정체성을 공유한 경험이 길지 않은 이라크의 역사를 꿰뚫는다.

그나마 군부를 중심으로 주변국과의 전쟁을 통해 이라크를 통치하던 사담 후세인의 실각 이후 그의 빈자리를 쿠르드족과 이라크 정부의 갈등,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등이 대신한 것 역시 이란군 대령의 말대로 공통의 중심축이 없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라크의 역사와 이라크가 분열된 근본적인 원인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자셈은 위의 비난에 맞서 항변한다. 그는 ISIS에 맞서 싸우고, 승리를 위해 죽어가는 이들이 당장 어느 세력의 지배를 받든 간에 "이라크에 있는 이라크인"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들은 "사담도 서방도 테러리스트도 이란 대령도 없는 이라크"를 위해 싸운다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무능력한 이라크 정부도, 이라크의 상황을 이용해 시아파의 입지를 다지려는 이란도 아닌 지금 이 땅에 발을 딛고 피를 흘리며 살아가는 이라크인만이 전쟁을 종결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전투 중간중간마다 어지럽혀진 도시의 쓰레기를 치우고, 이란군 대령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부패 경찰을 데려가겠다고 고집하며 이라크인의 손으로 이라크를 청소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다. 자셈과 대령 사이의 언쟁이 경찰이었다가 특공대에 합류한 카와가 부패 경찰을 직접 죽일 때 비로소 끝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의 항변에 담긴 신념은 다른 두 장면에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더한다. 그가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모르는 가운데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긴 시간을 소비하는 것, 한 대원의 가족을 찾기 위해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제 그저 동정심이나 가족애로 인한 행동이 아니다.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고, 가족과 헤어진 이들은 가족을 다시 만나도록 도와주면서 새로운 이라크를 만들어갈 아이들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려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카와가 자셈의 신념대로 다른 대원들의 생존 가족을 찾으러 가기로 결정하는 결말은 결국 현재 이라크의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 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때 지금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바람과 희망을 담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이 작품의 제목과 배경이 '모술'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리아 제국 시기부터 이슬람 제국, 식민지 시절, 통일 아랍국가로서의 이라크, ISIS와의 전쟁 후 재건 사업까지 모두 경험한 도시인만큼 이라크의 현재와 과거를 되짚으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영화의 메시지와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SWAT 팀의 이름이 '니네베' 특공대인 것 역시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였던 모술의 역사를 이라크의 현재와 연결해주는 극적 장치로 볼 수 있다. 

물론 <모술>이 이라크 사람들의 시각을 온전히 대변하는지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는다. 이 작품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간결하면서도 심도 있고 강렬한 밀리터리 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 월드워 Z >나 <다크 워터스>의 각본가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매튜 마이클 카나한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액션의 장르적 쾌감을 적절히 살려낸 대목에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의 감독으로 유명한 루소 형제가 제작을 맡는 등 미국 자본이 투입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매튜 마이클 카나한 감독의 과감한 시도 덕분에 <모술>이 일반적인 경향성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반에 걸쳐 아랍어만을 사용한다. 영웅이 아닌 아닌 주인공을 묘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도 악마화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통해 이슬람은 폭력적이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는 선입견도 배제한다. 

그 결과 실제 '뉴요커'에 실린 이라크 SWAT 팀과의 동행 취재 기사를 각색해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그의 의도대로 <모술>은 이라크 사람들의 시각 내지는 최소한 중립적인 시각으로 이라크 내전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창문으로 기능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모술 넷플릭스 이라크 내전 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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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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