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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석천 임억령을 비롯 시가문학을 통해 성산가단을 이룬 곳이다.
▲ 식영정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석천 임억령을 비롯 시가문학을 통해 성산가단을 이룬 곳이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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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 다분히 현실을 벗어난 관념적인 수식어 같기도 하지만 그 이름을 지은 이는 어떤 시대적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광주광역시를 듬직하게 지키고 있는 무등산 자락 성산에는 '가사 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식영정(息影亭)이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인적 끊긴 적막함 속에서 고고하게 서있는 소나무는 청빈한 선비의 기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날렵한 처마의 아름다움이 새삼 멋스럽게 느껴지는, 정자 한가운데에 오롯하게 붙어있는 전서체의 현판 또한 식영이 주는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식영정은 <장자>의 '제물편'에서 '자신의 그림자가 두려워 도망치다 죽은 바보' 이야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림자는 사람의 욕망을 의미하며 누구나 욕심으로 가득 찬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이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세속을 떠나 그림자도 쉬는 그곳을 '식영세계'라 불렀다. 식영정은 바로 이러한 식영세계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한다. 16세기 사림들의 취향이 잘 반영된 이름이라 할수 있다.

식영정은 성산 일원 가사문화권의 핵심으로 식영정을 중심 무대로 송강 정철(1536~1593)은 이곳 환벽당, 송강정 등 성산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으며 〈성산별곡〉을 노래하였다. 또한 '호남 시학의 스승'이라 일컫고 있는 석천 임억령(1496~1568)은 시문학을 통해 호남가단의 한 맥을 이루게 하였다.

이곳 성산 일대에는 식영정을 비롯하여 서하당, 부용당, 환벽당, 취가정 등 많은 정자와 당이 있고, 인근에 별서정원 소쇄원이 자리하고 있어 16세기 사림문화의 산실이 되고 있다.
 
성산가단을 이룩한 석천 임억령

 
서하당 석천 임억령의 사위인 김성원이 지은 건물로 식영정과 함께 호남 시가문학의 중심이 된 곳이다.
▲ 서하당 석천 임억령의 사위인 김성원이 지은 건물로 식영정과 함께 호남 시가문학의 중심이 된 곳이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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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진 가사와 시가 문학권을 일컬어 '성산가단'이라 한다. 성산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 명봉산록에 있는 식영정과 서하당 일원을 말하는데 이 일대의 당과 정자에서 석천 임억령은 <식영정 20영>과 <서하당 8영>을 비롯하여 400여 수의 주옥같은 시를 창작해 전성기를 이룬다. 일생동안 3000여 수의 시를 쏟아 냈다는 석천 시문학의 중심 활동지가 된 곳이다.

이 일대 정자와 별원을 무대로 석천은 양응정, 김성원, 고경명, 백광훈, 정철 등에 시가를 전수하며 16세기 최고의 문인학자들을 배출하였고, 정사룡, 송순, 이황, 김인후, 박순 등과 교유하며 성산가단을 형성한 것이다. 식영정은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 하는데 부근에는 김성원이 지은 서하당도 있다.

식영정은 다분히 도가적 의미가 느껴진다. 16세기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동댕이쳐진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지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자연과의 일치를 꿈꾸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곳 일대에 유독 많은 정자와 별서정원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잘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호남은 시가문학, 영남은 도학

16세기 사림시대, 영호남의 학풍을 지역적인 특성으로 굳이 구분한다면 영남은 도학, 호남은 문학이라 말한다. 이는 영남지역에 발달한 서원문화와 호남지역의 정자문화를 통해 그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혹자는 "16세기 호남의 문풍은 호남지역의 독특한 풍류문화와 결합하여 영남이나 기호지방과는 달리 성리학적 엄숙주의에서 한발 비켜서 있어, 호남의 문사들은 시사를 만들고 문학적 교유에 힘써 문재를 발휘하게 된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영호남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석천 임억령과 퇴계 이황이다. 석천 임억령은 문학을 통해, 퇴계 이황은 도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데, 석천의 학맥은 호남파 시인으로 일가를 이루어 시학이 가장 꽃피게 되고, 퇴계의 학맥은 성리학으로 이어져 영남학파를 이룩하고 신유학을 중흥시킨 것이다.

이같은 영향으로 호남은 정자문화, 영남은 서원문화가 발달하여 퇴계의 도산서원이 있는 안동 청양산은 유교문화권을, 석천의 식영정이 있는 광주 무등산은 시가문화권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16세기에 걸출한 인물이 지방에서 많이 배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가문학과 성리학의 융성은 이 시대를 살다간 사림들의 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산임씨 임억령과 재지사족들
 
석천 임억령 묘 임억령이 고향 해남에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며 살았던 문암제가 있는 곳에 석천의 묘가 있다.
▲ 석천 임억령 묘 임억령이 고향 해남에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며 살았던 문암제가 있는 곳에 석천의 묘가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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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줄기의 성산가단을 일으킨 석천 임억령, 그가 문학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한 곳은 식영정 일원이지만 재지사족의 기반을 쌓은 곳은 미암 유희춘이 태어나 살았던 해남이다. 임억령(1496~1568)과 유희춘(1513~1577)의 생몰연대를 보면 임억령이 앞선다. 유희춘의 형인 유성춘(1495∼1522)과 비슷한 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둘은 관향(선산), 고향(해남), 타향(담양)의 3향이 같은 인연을 갖고 있다. 석천과 유희춘은 어려서부터 해남고을 가까운 곳에 살았다. 석천은 그가 자연에 묻혀 살았던 만대산 아래 골짜기 이름을 따서 석천(石川)이라 하였으며, 미암은 자신이 살았던 집 뒤 금강산 중턱의 미암바위에서 미암(眉岩)이란 호를 취하였다.

<미암일기>를 보면 미암은 석천의 만년에 몇 번의 조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인해 유배를 갔던 미암은 1567년 선조의 등극으로 풀려난 뒤 고향 해남에 귀향하여 마산에 있는 석천 서재로 찾아간다. 병중에 있는 석천을 문안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1567년 12월 5일
임담양(석천의 담양부사를 지칭)을 찾아뵈었는데 병중에 방안으로 인접을 하여 회포를 하나하나 털어 놓았고 심지도 솔직했는데 돌아가신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1567년 12월 16일
생전복 10개와 생 노루의 뒷다리 하나를 임석천 영공에게 보냈더니 임석천이 사람을 시켜 사례의 편지를 보내왔다.


유배에서 풀려 난지 얼마 안 되어 해남에 돌아온 미암이 와병중인 석천을 거듭 찾은 것은 평소 동향의 선배로서 존경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희춘은 석천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예복 차림으로 석천의 제청을 찾아 제사를 지원하였다.

선산임씨는 석천의 조부 진안현감 임수(林秀)가 해남정씨 문명의 사위가 되어 해남에 정착하였다. 해남윤씨 어초은 윤효정 역시 정문명의 아들 정귀영의 사위가 됨으로 인해 해남에 정착하게 된다. 처가 동네로의 귀환인 것이다.

해남에서 태어나 성장한 석천은 관직 생활 중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날 것을 내다보고 신병을 핑계로 낙향 하였다. 석천의 동생인 임백령은 기질이 호방하고 기백이 있어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의 총애로 을사사화의 주동인물이 되어 사사(賜死)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석천은 동생 백령에게 거사를 중단 할 것을 요청하다 이에 응하지 않자 형제의 의를 끊고 고향에 낙향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석천은 고향에 내려온 뒤 고향 해남 마포별업(마산면 장촌)에서 강학하며 제자를 기르고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지금 이곳은 옛 터만 남아있고 문암제란 이름만 전해오고 있다.

현재 해남읍 금강산 아래 관동리 일원에는 해남에 처음 뿌리를 내린 석천의 조부 임수(林秀)를 비롯하여 석천의 아버지 임우형(林遇亨), 석천의 형인 임천령(林千齡)의 묘가 있어 이곳이 선산임씨들의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석천의 선산임씨들은 하동정씨 정운, 수원 백씨 백광훈, 장흥고씨 고경명, 광산김씨 김성원, 장흥임씨 임발영, 무안박씨 박백응 등 여러 재지사족들과 혼맥을 맺어 문풍을 드날린다.

절의를 지키는 선비의 기질을 타고난 석천의 시문학이 이처럼 전성기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당시 16세기 사림시대를 살다간 사대부들의 아픈 시대 혼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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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저서로 '해남윤씨가의 간척과 도서경영' <민속원> 2012년, '녹우당'<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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