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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남의 일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조증과 울증을 넘나드는 기분이다. 집콕이 일상화되어 그럭저럭 견딜 만 하다가도, 연일 쏟아지는 대규모의 코로나 확진자와 병상배치를 받지 못한채 집에서 스러지는 생명들, 그리고 요양원의 코호트 격리 소식 등등 코로나와 관련된 암울한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언제쯤 코로나가 봄눈 녹듯 사라질 수 있을까.

기약 없이 이어지는 허망한 죽음 앞에서 나는 잠시 생각을 골랐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란 어쩌면 하루하루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삶일 수도 있겠다. 웰빙보다 웰다잉이라는데, 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혹은 잘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웰다잉의 사전적 의미는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라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건강 체크하기, 유언장 작성하기 등등 웰다잉 수칙이 몇 가지 나오는데 이 수칙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바로 자서전 쓰기.

무속인과의 만남, 그저 무섭기만 했는데  

웰다잉과 자서전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던 건 몇 년 전 어느 무속인을 인터뷰하면서부터였다. 첫 인터뷰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 신내림을 받은 무당을 만난다는 것이 어찌나 긴장이 되었던지 잠까지 설치고 나선 길이었다.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까, 내 속을 들여다보면 어쩌나?' 하는 근거 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머릿속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두려움을 숨기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응접실에서의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신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러한 나의 의지는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일렁거리는 촛불과 신당 가득 놓인 불상들, 점사를 위한 방울과 부채, 동자신을 위로한다는 온갖 장난감들과 제물로 보이는 쌀이 항아리 가득 놓여있는데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버린 나는, 대체 내가 점을 보러 온 것도 아닌데 왜 신당에서 인터뷰를 해야 하나 싶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마땅한 핑계거리가 떠오를 리 없었다.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라는데 별 도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촛불 일렁이는 신당에서 '큰 무당'이라 불리는 무녀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잔뜩 곤두선 나의 긴장을 한 방에 날려버린 건 다름 아닌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는 무녀의 눈물이었다.

지나온 세월을 이렇게 처음부터 돌이켜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이라던 그녀는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울음을 토해내곤 했다. 녹취를 하는 손이 떨릴 만큼 그 살아온 이야기는 절절했다.

"미안해요, 담배 한 대만 피울게요."

눈물 맺힌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는 무녀 앞에서 나는 그때까지의 긴장이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졌다. 긴 호흡의 인터뷰 내내,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도 그 울음이 잦아드는 순간도 재미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순간도 모두 함께 공감했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순간이 지나가는 동안 무녀의 얼굴은 차츰 맑아져 갔다. 나 또한 신당 안에 첫발을 디딜 때의 무서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무녀에 대한 친밀함이 더해갔다. 울고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 그간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미움을 스스로 덜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저 들어주는 사람이었는데 홀로 토해내는 모든 이야기가 그녀를 해묵은 상처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 작업을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눈에 띄는 그 변화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엄마의 자서전을 쓴다면 

일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중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회한에 젖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의 포인트는 저마다 달랐지만 그 과정을 통해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 보였다. 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만큼 웰다잉에 적합한 것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들었다.

'그럼 나도 한번 자서전을 써볼까?'

웰다잉이라고 일찍 준비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 들었던 생각이지만 곧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쓸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제 막 마흔 중반인 내게 스펙타클한 인생의 격정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 무슨 자서전이야.' 난 역시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말았구나 하는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그것도 잠시, 문득 '우리 엄마의 자서전이라면?'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소소한 엄마 이야기를 아직 잘 모른다. 유난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았다던 엄마는, 겨우 스무 살 무렵에 밑으로 줄줄이 동생들을 두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었다는 이야기 이외에는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시지 않았다. 궁금해도 더 묻지 못했던 건,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혹시나 떠올렸을 때 상처가 될까 봐 겁이 났던 까닭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가 주로 내 이야기, 우리 아이들 이야기에 국한되었던 것 같다. 작정하고 엄마 이야기를 들어드린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죄책감과 함께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이참에 자서전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잠시 접어두고, 엄마의 이야기부터 들어드려야겠다. 그런데 '엄마의 시간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기분은 뭘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웰다잉,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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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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