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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3대종사 묘역임을 알리는 표지석. 비석에는 ‘대종교 대종사’라 새겨져 있는데, 안내문에는 ‘반일 지사’로 적어 놓았더군요.
 대종교 3대종사 묘역임을 알리는 표지석. 비석에는 ‘대종교 대종사’라 새겨져 있는데, 안내문에는 ‘반일 지사’로 적어 놓았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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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 선생의 대종교 중광을 계기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면서 일제의 가혹한 통제와 탄압이 따르게 되었다. 일제는 대종교를 항일구국운동의 비밀결사체로 인식하면서 1급의 치안경계 대상으로 삼아 탄압했다.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된 대종교는 1911년 7월 21일 백두산 기슭의 화룡현 청파호 마을로 총본사를 옮겼다.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청파호에 총본사와 대종교 경각 등을 짓고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청파호를 근거지로 삼아 4도본사를 각기 청호ㆍ상해ㆍ서울ㆍ소왕청에 두고, 조선ㆍ중국ㆍ러시아 연해주 등 조선족이 사는 곳에 학교를 세워 포교활동과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 10월 1일 이른바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여 여타 종교는 불문하고 대종교에 포교금지령을 내리면서 공식적으로는 해방이 될 때까지 국내 포교활동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대종교가 민족정통사상을 계승하면서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자 각지의 애국지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대종교 중광의 주역인 나철 선생은 "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정신은 가히 존재한다"라는 '국수망이도가존(國雖亡而道可存)'의 정신으로 독립운동과 단군신앙을 일체화하였다.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는 일제의 조선사 왜곡에 맞서 단군에 대한 서적을 대량 출간하였다. 
  
대종교 3인의 묘- 독립이란 민족의 대의(大義)를 위해 삶을 바쳤던 3인의 묘 앞에서 우리 일행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대종교 3인의 묘- 독립이란 민족의 대의(大義)를 위해 삶을 바쳤던 3인의 묘 앞에서 우리 일행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고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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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에 『신단실기』와 『신단민사』의 발간을 시작으로 1922년에 『신고강의』, 『신리대전』, 『회삼경』, 『신사기』, 『조천기』, 『신단민사』, 『신가집』을 간행하였다.

1923년에는 국문으로 된 『현토신고강의』, 『신리대전』, 『신사기』, 『화삼경』, 『신단민사』등을 발간하고, 이와 함께 『신고강의』, 『종라문답』, 『신가집』, 『배달족강역형세도』등 교적을 속속 간행하였다.

대종교의 각종 사서 간행은 1930~1940년대에도 이어져서 『삼일신고』, 『신단실기』, 『오대종지강연』, 『종문지남』, 『한얼노래』등을 펴내어 동포들을 교육하고 민족혼을 유지하였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걸쳐 대종교에는 독립운동계의 거물들이 참여했다. 신규식ㆍ박은식ㆍ윤세복ㆍ신채호ㆍ김두봉ㆍ정인보ㆍ유근ㆍ김교헌ㆍ서일 등 당대의 민족사학자 대부분이 대종교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무장투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도 참여하고 사서 편찬을 지원하였다.

대종교 계열의 독립운동가 신규식은 나라 망한 원인을,

첫째는 선조들의 교화와 종법을 잊어 버렸고, 
둘째는 선민(先民)들의 공열(功烈)과 그 이기(利器)를 잊어버렸고, 
셋째는 제 나라의 국사를 잊어버렸고, 
넷째는 나라의 치욕을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이처럼 잊어버리길 잘하고 보면 그 나라는 망하게 마련이라고 통분하면서 『한국혼』을 지었다.
 
눈 쌓인 대종교 3대종사 묘소. 왼쪽부터 서일, 나철, 김교헌 대종사
 눈 쌓인 대종교 3대종사 묘소. 왼쪽부터 서일, 나철, 김교헌 대종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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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의 '역사지키기' 정신의 일환이었다. 이와 같은 연유로 하여 세계 식민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제의 무단통치 하에서도 한민족은 민족혼을 지키며 건강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나철 선생의 혁혁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잊혀지고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종교인'이라는 따옴표로 묶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대종교의 독립운동 특히 무장독립운동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나철평전, #홍암,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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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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