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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중요한 법률 개정안 하나가 발의됐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나중에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기존의 ‘법률 공포일=관보게재(발행)일’은 ‘법률공포일=대통령 서명일’로 바뀐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함으로써 ‘법률’이 확정(‘공포’)되고, 이 법률안이 관보에 게재(‘공표’)됨으로써 그 법률의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10년이 넘도록 잘못된 ‘법률 공포’ 체계를 바로잡는 데 헌신해왔다. 그 과정에서 어이없게도 징계를 받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은 ‘어떻게 처음으로 법률 공포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는지’, ‘법률 공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증언할 예정이다.[편집자말]
① 2006년, 처음으로 '법률 공포' 문제에 주목하다 http://omn.kr/1r6zg
② '법률 공포'와 '관보발행'은 전혀 다르다 http://omn.kr/1r76y
 
 소준섭 전 조사관은 국회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지난 2015년 10월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한중학자교류학술회의에 참석했다(왼쪽 세번째 줄 왼쪽으로부터 다섯번째).
 소준섭 전 조사관은 국회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지난 2015년 10월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한중학자교류학술회의에 참석했다(왼쪽 세번째 줄 왼쪽으로부터 다섯번째).
ⓒ 소준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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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내가 '법률 공포' 문제를 제기하자, 국회도서관 법률정보과 차원에서 해당 국가의 법률전문 판사가 검증했다며 나의 문제 제기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무렵 기감국장(대리)이던 A모씨는 당시 도서관 입법정보 심의관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검증을 담당했는데, 그는 모 판사로부터 나의 문제제기가 "이유 없음"이라는 검증을 받았으며, 이후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 처벌하겠다고 하였다. 그 판사가 누구이며 어떤 내용의 검증인가를 물었지만,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또 B모 입법정보실 실장은 프랑스담당 조사관 유현영 박사와 나를 따로 불러 판사가 판정한 이상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

어이 없는 검증과 거듭되는 묵살,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 나는 한 달여 동안 혼자 필사적인 추적을 계속하여 결국 도서관이 검증받았다는 그 판사를 찾아냈다. 그는 바로 C모 판사로서 고등법원에 재직 중이었고, 내가 내 견해를 팩스로 보내 의견을 묻자 그는 "나는 잘 모르는 문제이며, 해당 국가의 언어도 모른다. 그냥 국회도서관 법률정보과 과장이 이메일로 무슨 문제를 물었는데, 우리나라 식으로 생각하여 가볍게 대답한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내가 "도서관 책임자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곧바로 B모 실장에게 이메일과 전화로 이 사실을 통고하고 판사와 연락할 것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도서관 법률정보과는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검증도 있었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관련 자료를 보여주기를 거부하였다. 나는 추적 끝에 그 교수가 한국외국어대학 통역대의 D모 외국인 교수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나의 견해를 이메일로 보내 그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그 교수는 내 견해가 "보다 정밀하다"는 이메일을 회신하였다.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법률정보과에 알리자, 당일 곧바로 그 외국인 교수로부터 나에게 전화와 함께 이메일이 발송되었는데, 그 내용은 "더 정밀하다"고 했던 자신의 견해를 번복하고 만약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전화상으로나 이메일에서 나타난 그 교수의 한국어 실력에 비해 너무나 정연하고 상투적인 법적 용어로 서술되어, 누군가 제3자가 개입한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이와 별도로 해당 국가의 법률에 정통한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외국어대학 해당 국가학과에 요청하여 E모 변호사를 소개받고 그에게 44만 원 자문료를 지출하면서 관련 문제에 대한 법적 자문을 요청하여 자문을 받았다. 이 자문 자료를 입법정보실에 제출했지만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12월 22일 발행된 관보
 12월 22일 발행된 관보
ⓒ 전자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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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관련법률 개정 과정에서 벌어진 일

나는 2007년, 당시 국회 00위원장이었던 F의원에게 우리나라 법률의 '공포(公布)' 개념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제기하여 관련법률 개정을 위한 업무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차원에서 '공포'에 관한 법률적 개념이 가장 잘 정리돼 있는 나라인 유럽 모 국가의 사례를 구하고자 외교통상부를 통하여 해당 국가 법률의 공포 개념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려 하였다.

그 뒤 2007년 8월경, F 의원 보좌관으로부터 그쪽이 한 장짜리로 된 외교통상부 답변서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한 장짜리 답변서'는 외교통상부에서 발송한 적이 없는 유령 답변서였다.

나는 2007년 말 도서관 측이 나를 징계하려던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외교통상부에서 국회에 보낸 회답의 발신자가 외교통상부 소속 G모 서기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본래 그가 보냈던 회답서는 한 장짜리가 아니라 3장짜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와 전화 및 이메일을 통하여 ".... 1장짜리 문건에 대해서...... 그 문건을 보지도 못한 상태이며...... 3장짜리 답변서가 전부인 것을 확인했다"라고 증언하였다. 외교통상부 G모 서기관이 보낸 3장짜리 회답서는 실제 F 의원실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오직 한 장짜리 답변서만 도착했던 것이다.

그리고 F 의원실에 도착한 '한 장짜리' 회답서는, 답변 작성자 및 기관 표시 등 최소한의 공문서 요건도 결여된 것이었다. 외교통상부 G모 서기관은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한 장짜리 회답서는 전혀 보낸 적이 없으며, 그것은 아마도 국회 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사실 애초부터 외교통상부 문건을 근거로 나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외교통상부는 본래 '검증'과 전혀 관계없는 기관이며, 더구나 당시 외교통상부의 한미 및 한-유럽 FTA 조약문에 대한 수많은 오역에서도 드러난 바처럼 정확성에 있어 오히려 신뢰할 수 없는 대상으로 비판받기도 했다(당시 한미 FTA 한글본의 오역은 무려 296곳이었고, 한-유럽 FTA의 경우 160곳으로 밝혀진 바 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이 지난 2011년 5월 상하이 교통대학학보에 기고한 '중국 법률공포' 관련 논문.
 소준섭 전 조사관이 지난 2011년 5월 상하이 교통대학학보에 기고한 "중국 법률공포" 관련 논문.
ⓒ 소준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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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고성 오간... 희한한 징계회의 현장

2007년 11월 말, 국회도서관 도서관장실에서 연락이 와서 관장실로 오라고 하였다. 가서 보니 관장을 비롯하여 기획감사국장(당시 대리직), 입법정보실장, 여성 국장 2인 등이 엄숙하게 앉아 있었다. 모두 대형 의자에 앉아있는데, 내게는 조그만 '쪽의자'를 내주며 거기 앉으라고 했다.

도서관장은 외교통상부에서 최종 검증 문건이 나왔다면서 "빨리 보여주어 인정하게 해라"라며 근거 자료를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기획감사국장은 "징계 혐의자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보여줄 수가 없느냐"라며 도서관장이 호통을 쳤지만 기감국장은 절대 보여줄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다(국회도서관 기감실은 나를 당시 이미 징계혐의자 신분으로 뒤바꾸어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방어권이 인정되어야 했다. 근거 자료 열람을 거부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이러한 은폐 행위는 징계의 근거 자료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스스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

고성이 오가기를 3~4분여, 드디어 그 자리에서만 읽을 것을 허용하기로 하고 그들이 나에게 그 문제의 문건을 보여주었다. 문건을 보니 7~8장이고 제목은 "F 의원 질의에 대한 추가답변서"였다. 내가 3~4분 동안 읽자, 관장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미소를 띠면서 "역시 잘못 해석한 답변서이다"라고 했더니 도서관장은 갑자기 "X새끼가 어디에서 웃고 있어?"라는 욕설까지 하면서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나는 그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이 감사가 기감국장이 정식으로 감사를 제기하라고 해서 제기한 것이며 감사 제기가 어떻게 징계 사유가 되느냐?"고 찬찬히 물었다. 그러면서 "전에 정희정 전 기감국장이 이 문제에 대하여 법률전공인 박학모 독일 담당조사관에게 부탁하여 확인을 지시한 적이 있다"고 답변하였다. 그랬더니 도서관장은 "정희정 국장이 지시하여 나온 당시 문건을 가지고 있느냐"라고 묻기에 "가지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도서관장은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물어, 나는 "고려대 해당 국가연구소가 검증한 결과 나의 견해가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대해 기감국장은 당황해하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하였다. 도서관장은 내게 그 문건을 가져오라 하여 내 사무실에서 다시 그 문건을 가져갔다. 그랬더니 도서관장은 두 문건을 비교 검토하기로 하였고, 이른바 외교통상부 '추가답변서'를 나에게 나중에 주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그 후 끝내 그 '추가답변서'는 내게 전달되지 않았다.

막무가내식 징계, 반대했지만...

그 뒤 2007년 12월, H모 당시 입법정보실장(B모 실장 후임)은 내게 그냥 잘못했다는 사유서만 간단히 제출하고 끝내자고 여러 차례에 걸쳐 권유하였다. 그러나 나는 거부하였다. 그러자 실장은 최후의 방법으로서 주한 해당 국가의 대사관에 자문을 구하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반대했지만, 실장은 무조건 밀어붙였다.

예측한 바대로 해당 국가 대사관에서 내가 틀렸다고 '판정'한 내용의 문서가 바로 그 다음날 도착했다. 그 문건은 내게도 보여주었는데, '비공식 답변'임을 명기하고 있는 데다가, 문건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 구사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것으로서 이는 애초부터 검증문건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검증해준 해당 국가 대사관 관계자에게 팩스를 보내 관련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청하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해당 국가 대사관의 그 관계자는 전화 통화를 통하여 자기가 잘못 검증했으며 내 의견이 올바르다고 답변하였고, 내가 "다시 제대로 된 검증문서를 보내줄 수 있냐?"고 요청하자 "원래 '비공식 답변'(그럼에도 며칠 뒤 나에 내려진 도서관의 경고장에는 '해당 국가대사관의 공식적 답변'이라 표기하고 있었다)으로서 다시 보내기는 곤란하다"면서 "다만 도서관 측 관계자의 문의가 있게 되면 도서관에 보낸 나의 처음 의견을 정정하겠다"고 답하였다.

법률정보과 계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확인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실장에게도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전혀 대답이 없었다.

도서관 측은 그 문건으로써 서둘러 최종 결론을 짓고 며칠 뒤 나에게 도서관장 명의의 서면경고장을 내렸다. 총무과 계장이 "경거망동하지 말라"라면서 그 경고장을 나에게 줬다.
 
 지난 2012년 8월 한중수교 20주년을 계기로 <주간경향>과 인터뷰한 소준섭 전 조사관.
 지난 2012년 8월 한중수교 20주년을 계기로 <주간경향>과 인터뷰한 소준섭 전 조사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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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예정된 결론, 국회사무처 고충처리 심사

나는 2010년 국회도서관 측의 경고조치 취하를 요청하는 고충 청원을 국회도서관의 상급기관인 국회사무처에 제기했다. 2010년 4월 말 국회사무처에서 중앙고충심사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심사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당시 국회 00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은 나에 대한 첫 질문으로 모 국가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냐며 비꼬듯 물었고, 그 다음에는 "도서관에 감사를 청구했을 때 도서관 다닌 지 몇 년 되었느냐?"라며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건방지게 문제를 제기한다'는 식의 고압적 태도로 일관하였다.

특히 도서관에서 그 회의에 참석했던 I모 사무관은 본래 참고인으로 발언권이 없었는데(이는 내가 심사위 간사보조 J씨에게 사전에 확인했던 내용이다), I모 사무관이 발언하려 할 때 내가 발언권이 없다고 했으나, 그는 심사위 위원장도 아니면서 직접 나서서 두 번이나 그 발언을 허용하였다.

이날 심사위 회의에서 쟁점 중 하나는 내가 왜 부정 사건도 아닌 용어문제를 감사 제기했는가의 문제였다. 이에 나는 도서관의 당시 기감국장 대리가 정식으로 감사제기하라는 말에 제기했던 것이라고 말하자, 참고인 신분인 도서관 I모씨가 적극 나서서 어떻게 내 일방적인 주장을 믿을 수 있느냐라며 우기기와 잡아떼기로 일관했다.

또 당일 심사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던 K 법대 교수는 나의 발언을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수 차례에 걸쳐 중간에 제지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려고만 하면 즉시 이미 모두 읽어보았으니 발언할 필요가 없다면서 나의 발언을 제지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중요한 관건인 한 장짜리와 3장짜리 회답서에 대하여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고, 참고인으로 참석한 박학모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에 대한 참고인 질문은 도서관 I모씨의 경우와 달리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책임회피성 '추정'을 기각 근거로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최금숙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외교통상부는 기본적으로 입증할 기관일 수 없고 가장 믿을 만한 증명은 내가 증빙서류로 제출한 해당 국가 법률 변호사가 작성한 문서라고 말했다. 문서 변조 여부에 관하여 F의원 보좌관은 뭐라 답했느냐 물었는데(본래 나는 이 보좌관을 한장짜리 답변서를 받았느냐 3장짜리를 받았느냐 묻기 위해 참고인을 신청했으나, 불참했다) 간사보조가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고 했다. 이에 최 교수는 "참 비겁하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그 보좌관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세가 이 사회를 더욱 보수화하고 비리를 강화시키는 것인데, 지금 한 개인의 삶에 너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당시 나는 심사위에게 외교통상부에 해당 문건과 관련해 국회에 어떤 회답문서를 보냈으며 과연 한 장짜리를 보냈느냐, 보냈다면 문서 수발신 기록이 있는가라는 질문서를 보내도록 요청하였었다. 이에 외교통상부는 "한 장짜리 회답서를 보낸 발신기록은 없지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는 희한한 회답을 보냈다. 그리고 국회 심사위는 그 답변을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미 예정된 결론이었으리라.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L모 판사 역시 나에 대하여 회의 과정 내내 긍정적 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는데, 놀라웠던 점은 몇 달 뒤 그가 국회 파견 판사로 왔다는 사실이다. 법제처에서 왔다는 M모씨도 나중에 알고 보니 국회에 파견 나와 있던 인물이었다.

결국 국회고충심사중앙위원회는 4:1로 나의 고충청원을 기각하였다.

'법률 공포' 문제를 제기한 전후로 일어났던 일들은 더 많고도 많지만, 일단 이 정도로 맺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이것은 과연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모습들이었는가? 너무나 어이없는 행태들이었다. 무엇보다 불과 넉 달 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이 문제로 나보다 더 억울해했고 더 마음 아파했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모쪼록 '공포' 관련법률 개정부터 모든 일들이 차근차근 바로잡혀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강병원 의원 대표발의, '법률공포일=관보게재일' 바로잡힐까 http://omn.kr/1r47y
대통령 서명 법률안에 왜 '서명일'은 없나? http://bit.ly/2LlndY
법률공포 주체는 대통령인가 행안부 장관인가? http://bit.ly/sZ5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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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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