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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직장을 잃었다. 아니 잃은 게 아니라 그게 망해 없어졌다. 잃었든 망했든 당장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없어졌다. 나처럼 대책 없이 직장을 잃은 사람에겐 그 상황이 제일 곤혹스럽다. '오늘은 어디 가지, 뭘 하지?', 예전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압구정 날라리'의 그 막연한 심정 같은 거 말이다. 혼자라면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심정으로 게으름이라도 부릴 텐데, 연로한 어머니 걱정하실까 대놓고 그럴 수도 없어 더 난감했다.

도서관 야외휴게실에서 보낸 봄과 여름 
 
어느 도서관 정원에 있는 야외휴게실. 지붕과 탁자 등이 구비되어 있어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지냈다.
▲ 어느 도서관의 야외 휴게실 어느 도서관 정원에 있는 야외휴게실. 지붕과 탁자 등이 구비되어 있어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지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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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세상은 온통 코로나로 난리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아가는 이 못된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접촉을 막아 놓았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설은 걸핏하면 출입금지 띠를 둘렀다. 과거에도 주말이면 곧잘 이용했던 동네 도서관은 열람실 문은 걸어둔 채 책만 빌려줬다. 젊은이들처럼 카페에 가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켜기도 했지만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코로나 위기 단계가 올라가면 카페는 늘 1순위로 문을 닫았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진 도서관 정원에서 지냈다. 도서관이 아니라 그 건물 앞의 '정원'에서다. 거기엔 사방이 뚫렸지만 그나마 지붕이 드리워진 노천 휴게실이 있었다. 탁자가 딸린 벤치와 자판기까지 있었다. 바람도 시원한 게 썩 지낼 만 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점심식사도 가능했다. 마음에 쏙 들었는데, 익숙해질 만하니 장마가 시작됐다. 지붕은 있었지만 바람에 밀려 들이치는 비까지 막진 못했다. 게다가 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가 길었다.

언젠가 공유 오피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마침 가까운 곳에 하나가 있었다. 면담을 신청하고 직접 가 보았다. 여느 고급한 사무실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꾸며 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부대시설도 최상급이었고, 이용도 자유로워 좋았다. 하지만 비싼 임대료가 문제였다. 아직 변변한 사업 모델을 찾지 못한 처지에 한 달에 몇 십 만 원씩을 임대료로 무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 호사까지 누릴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찌뿌둥한 몸이나 지질까 사우나에 가던 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7층 버튼을 누르려는데 그 건물 4층에 있는 독서실 안내판이 눈에 확 띄었다. 아, 아직 독서실이란 곳이 남아 있었네 하는 반가움과 함께 40년 전의 추억까지 급 소환 됐다. 지금도 그때처럼 어린 학생들이나 가는 곳이려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넣어봤다. 대뜸 나이 많은 노인네도 받느냐 물었더니 냉큼 물론이란 답이 돌아왔다. 게다가 무척 반가워하는 목소리였다. 

40년 만에 찾은 독서실에서 보낸 가을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기도하며 성찰하기에 완벽한 공간, 세상 시름 잊고 한철 잘 지냈다.
▲ 어느 독서실의 한 뼘 좌석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기도하며 성찰하기에 완벽한 공간, 세상 시름 잊고 한철 잘 지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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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 설 때의 느낌은 참 묘했다. 살짝 흥분되기까지 했다. 마치 그게 과거로 향한 문 같기도 했다. 직접 보는 요즘 독서실의 풍경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나 다닐 때엔 넓은 홀에 일렬횡대로 칸막이 책상을 늘어놓은 형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방 여러 개로 먼저 쪼개 놓고 거기에 1인용 책상 예닐곱 개씩을 일렬종대로 정렬해 놓은 구조였다. 책상 말고는 조명을 모두 꺼 실내는 어두웠지만 꽤 안락해 보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컴퓨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거였다. 워드 작업을 주로 하는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간단하게 요기까지 할 수 있는 휴게실도 따로 있었다. 커피며 사탕 같은 간식도 공짜였다. 가격마저 착했다. 한 달에 10만 원이면 만사 오케이였다. 나 때는 관리자가 총무였는데, 지금은 어엿한 실장님으로 승진하셨고, 그땐 24시간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밤12시까지만 한다는 게 달랐다. 그런 거야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선금을 치렀다.

실장님은 참 친절하신 분이었다. 그는 입시생뿐 아니라 나이든 분들도 자기 계발이나 면허시험 공부하러 많이들 오신다고 귀띔해 주었다. 또 '여기 올 생각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결심'이라며 응원까지 해 주셨다. 그런 격려가 그저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진심이 느껴졌다. 아, 얼마 만에 들어보는 칭찬이던가. 어깨가 으쓱해지며 이 곳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경험한 독서실은 기대 이상이었다. 방음과 차광 시설은 놀라웠다. 4차선 대로에 붙어 있는 건물이었는데도 실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깊은 산중 절간에라도 온 듯 고요했다. 가끔 환풍기가 돌고 사람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외부의 빛은 단 한 조각도 틈입하지 못했다. 조명을 다 끄면 내 손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격렬하고 한심한 공간경쟁

그곳에서 가을을 났다. 밖은 여전히 코로나의 기세가 맹위를 떨치고, 나라는 격랑에 출렁이고 있었다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생 가장 평화로운 한철을 지냈다. 그곳에서 나는 집중해서 사색을 하고 맹렬하게 독서 했으며 상투적으로 기도하고 가혹하게 성찰했다. 어쩔 수 없는 묵언수행으로 점차 말은 잃어갔지만 영혼은 한층 건강해졌다. 사방 1미터도 채 안 되는 그 작은 공간의 기능과 위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인간에게 공간은 입고 먹는 것에 못지않은 생존의 조건의 하나라는 건 진작 알았다. 그러나 그게 정말 그런지는 미처 몰랐다. 공간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제가 깃들 공간이 없으면 영혼마저 휘청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금방 한계치에 이른다는 것도 알았다. 코로나로 오갈 곳이 마땅치 않게 된 이 상황은 인간에게 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이제야 안 거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만난 작고 어둡고 고요한 공간은 축복이었다. 그때 그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또 어찌 됐을지 모른다. 그곳에서의 모든 기억은 그만큼 특별하게 남았다. 특히 다른 입실자가 모두 외출하고 없을 때, 모든 조명을 끄고 완벽한 고요와 어둠 속에 침잠해 있는 건 너무나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다른 곳에선 쉬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어머니 태중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사람에게 공간이야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지만 그게 꼭 크고 화려해야만 할까. 독서실 한 뼘 공간처럼 작고 초라하나마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닐까. 게다가 벤저민 버튼의 시간처럼 우리의 공간도 거꾸로 가든, 바로 가든 다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격렬한 공간경쟁도 매한가지다. 월 10만 원짜리 좁고 작은 공간에서 내다보는 그 풍경은 한심하기조차 하다.

태그:#독서실, #인간의 공간, #도서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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