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부를 은폐하고 도주를 막기 위한 장치
▲ 좁게 설치된 창문 내부를 은폐하고 도주를 막기 위한 장치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천재 건축가 김수근. 그의 제자들은 그의 작품 목록에 이곳을 넣지 않으려 한다. 김수근의 천재성은 고문을 통하여 공포를 자극하기에 최적의 요건으로 건물 곳곳에 스며있다. 이곳은 바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 2018년 6월, '제31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후, 시민의 품으로 오게 되었다.

'OO해양연구소'라는 간판으로 위장되어 일반 시민들은 알지 못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산 안기부, 보안사 서빙고호텔과 함께 독재 시절 정권 유지를 위해 1976년 만들어진 이후 오랫동안 경찰이 관리하며 민주인사를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이 고문을 받았던 장소이다.
 
유족의 요구로 이곳만 원형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
▲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는 도중 사망한 509호 유족의 요구로 이곳만 원형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이곳이 알려지게 된 첫번째 사건은 1985년 전두환 정권 때 故김근태 의장 고문사건이었다. 고 김근태 의원은 이곳의 칠성판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했다. 두 번째 사건은 경찰이 "(탁자를)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어이 없는 해명으로 세간의 공분을 산 1987년 故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23세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대공분실 취조실 안에 있는 가로 123cm, 세로 74cm, 높이 57cm의 욕조에서 물고문을 당하던 중 사망하였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축소되고 은폐되었으나, 용기 있는 시민들의 행동으로 전두환 정권의 종말을 마련한 6월항쟁(1987)의 기폭제가 되었다.

심리적 공포를 가중시키는 공간 구성
 
모든 문은 같게 만들어 혹시 모를 탈주를 막았다. 대각선 배치는 건너편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 대각선으로 배치된 고문실 모든 문은 같게 만들어 혹시 모를 탈주를 막았다. 대각선 배치는 건너편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눈을 가린 그들에게 공포심을 가중하기 위한 장치. 나선형 계단.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 캡쳐
▲ 나선형 철제계단 눈을 가린 그들에게 공포심을 가중하기 위한 장치. 나선형 계단.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 캡쳐
ⓒ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김수근의 천재성은 건물 곳곳에서 발휘된다. 그는 포박당하여 들어오는 인간의 심리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공포를 극대화한다. 눈을 가리고 차를 타고 들어오면 육중한 철제 슬라이딩 대문이 있었다. 이 문은 사람이 밀 수 없고 경비실에서 기계로만 열 수 있었다. 문이 매우 무겁고 두꺼웠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은 문이 열리고 닫힐 때 탱크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대문을 지나 건물 앞에 서면 건물 뒤쪽 출입구로 가게 된다. 건물 앞문과 뒷문을 분리하여 용무에 따라 동선을 분리하였다. 눈을 가리고 포박 당한채로 나선형 철제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이 계단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방향감각을 잃게 한다. 또한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들리는 철컹철컹하는 소리와 수사관이 1층부터 5층까지 뚫린 공간에 질러대는 음성이 뒤엉켜 심리적 공포를 가중 시킨다.
 
모든 조명은 문밖에서 조절되어 한숨도 제대로 자게 두지 않았다.
▲ 문밖에 있던 조명 조절 장치 모든 조명은 문밖에서 조절되어 한숨도 제대로 자게 두지 않았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그들은 일거수일투족 감시 당하였고, 벽에 설치된 타공판은 옆방으로 비명을 전달하여 간접 고문을 하는 용도였다.
▲ 고문실을 감시하기 위한 렌즈와 타공판 그들은 일거수일투족 감시 당하였고, 벽에 설치된 타공판은 옆방으로 비명을 전달하여 간접 고문을 하는 용도였다.
ⓒ 오현정

관련사진보기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한 곳이 509호.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당한 전기고문을 당한 故김근태 의원이 있던 곳이 515호.

5층의 모든 조명의 조절은 고문실 밖에서 하게 되어 있어 고문실 안에 있는 그들이 몇날 며칠이고 단 한숨도 편히 자게 두지 않았다. 고문실 천장에 달린 렌즈로 그들은 일거수일투족 감시 당했다. 고문실에 설치된 창문은 채광과 환기를 하기에 무척 좁게 설치 되어 있는데 밖에서 보기에 내부를 은폐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또한 혹여 모를 탈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머리가 들어가지 않게 설계한 것이다. 고문실마다 달려 있는 타공판은 저음은 흡음하고 고음은 벽에 파고 들어 벽면을 따라 전달되게 하였다. 이는 옆방에 있는 사람에게 비명을 통한 간접 고문을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모든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문이 열리더라도 출구인 계단문과 고문실 입구 문을 같게 만들어 눈이 가려진 채 들어온 그들에게 출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엇갈리게 배치된 고문실의 배치는 문이 열리더라도 건너편을 볼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동료를 의심하게 하고, 심리 취조를 하기에 적합한 구조이다. 모든 고문실에는 욕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물고문을 위한 것이었다.

고문을 마치고 앞문으로 나오며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과 그들이 고문을 하기 위해 체력을 길렀을 테니스장은 회색빛 건물과 대조적으로 하염없이 평화로웠다.

정권 유지를 위해 민주인권 탄압이 극한으로 치닫던 이곳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다. 우리의 부모가, 선배들이 피의 댓가를 치르고 쟁취한 유산이다. 그들을 기억하고 피로 산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그들을 기억하며 한 번쯤 방문하여 기억해 보면 어떨까?
 

태그:#민주인권기념관, #방구석전시관, #민주주의, #박종철, #김근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