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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D 사무실 앞, 코워킹 서비스 공간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형렬.
 AUD 사무실 앞, 코워킹 서비스 공간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형렬.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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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통역이 제시간에 안 끝나서 늦었어요. 미안해요."

본격적인 추위가 닥친 11월 말, AUD(Auditory Universal Design. 청각의 보편적 설계. 청각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듣는 데 지장이 없는 환경)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이형렬(32) 문자통역사를 만나기 위해 불광동 혁신파크를 찾았다. 어둠이 깔린 혁신파크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이 온몸을 감쌌지만, 추억 돋는 캠퍼스가 떠올랐다. 혁신파크는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을 고쳐 사회혁신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온 이형렬은 갑자기 닥친 추위가 당황스러웠는지 한껏 몸을 움츠렸다.  

"대학에 다닐 때는 취업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비중을 두었어요. 저는 '진리를 찾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생의 정답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의 답을 찾는데 몰두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제 앞에 세 가지 길이 있었어요. 대학원을 가느냐, 공무원을 준비하느냐 아니면 사기업에 취직을 하느냐로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TV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 거예요. 거기에 유리세공을 하는 장인이 나왔어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어요. 자신의 기술을 인정받고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보고 나도 그런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속기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저는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속기사는 활자를 다루는 직업이잖아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2014년에 속기사 자격증을 땄어요."  


이형렬은 26살에 속기사가 됐다. 첫 직장은 청각장애인용 방송자막을 넣는 회사였다. 속기사의 정수는 실시간 속기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는 그 일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AUD 사회적협동조합의 쉐어타이핑(Share Typing) 서비스 공익광고를 봤다. '바로 저거다'라면서 무릎을 쳤다. 곧바로 AUD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가입하자마자 현장에 가서 문자통역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원봉사인 줄 알고 문자 통역을 했는데 계좌번호를 물었다.  

"통장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왔어요. 여자친구랑 소고기를 사 먹었어요. 그리고 AUD에서 활동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비영리 마인드도 좋았고, 속기사를 전문직으로 인정해 주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표님이 같이 일해보자고 했어요. 2014년 4월부터 직원으로 일하게 됐어요."  

수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도 유용한 문자통역
 
 행사에서 문자통역을 위해 타이핑하고 있는 이형렬
 행사에서 문자통역을 위해 타이핑하고 있는 이형렬
ⓒ 이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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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청각장애가 있다. 하지만 수어를 배우지 않았다. 문자통역은 속기사가 타이핑해 문자로 음성을 보여 주는 방법이다. 2016년에 우연히 AUD라는 곳을 알게 됐고, 그곳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문자통역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임을 알았다. 수어를 배우지 않아 소통이 힘들던 내게 문자통역을 해주는 곳이라니, 썩은 동아줄이라고 해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조합원이 되었다. 다행히 AUD는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AUD의 조합원이 된 후부터는 어떤 모임, 세미나, 강의, 토론회가 있어도 두렵지 않았다. 언제든지 요청하면 달려올 문자통역사가 있으니까 말이다.  

"2017년이었어요. 광주에서 세계인권도시포럼이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석했고, 고 이희호 여사도 오는 큰 행사였어요. 행사가 끝나고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자막이 나오는 화면을 보니까 집중이 더 잘 되고 내용을 요약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거예요. 그때 정말 뿌듯했어요. 

청각장애 학생들 중·고등학교 수업을 지원할 때 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인 청각장애 학생을 문자통역 해줬어요. 그 학생이 문자통역을 받고 신바람이 나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성적이 올라서 원하는 대학에 갔어요. 'AUD의 문자통역이 아니었으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었을 텐데 문자통역을 받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해요. 

청각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섞여서 수업을 들으면 그 아이들은 외로운 섬처럼 있어요. 비장애 학생들은 수업이 지루할 때 딴짓을 하지만, 청각장애 학생들은 듣지 못하니까 비자발적인 이유로 딴짓을 하는 거죠. 

수업 중에 선생님이 농담하면 학생들은 다 웃잖아요. 청각장애인 학생은 1초 후에 웃어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속기사가 타이핑하니까요. 선생님이 그걸 보고 가슴이 뭉클하셨대요. 저도 그 얘기를 듣고 울컥했어요. 그때 이후로 이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청력이 나빠졌다. 그때부터 실의에 빠져 지냈다고 해야 맞지만, 철이 없었던 건지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오랫동안 실의에 빠져 살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실의에 빠져 살지 않은 이유는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을 괴롭히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청력이 안 좋은 이유도 있지만,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입모양을 봐도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짝꿍에게 물었다. 짝꿍의 필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베꼈다. 아이들이 웃으면 왜 웃는지를 꼭 물어보고 뒷북을 치며 따라 웃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슬픔 뒤에는 기쁨도 많았다. 끝없는 내 질문에 대답해준 친구들 덕분이다. 귀찮고 힘들었을 친구들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심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나로서는 꼴등만은 면하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학창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갑자기 안 좋아진 청력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으니 지금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고 있다. 하지만 2016년에 만난 AUD의 문자통역은 내게 신세계를 선물했다. 올해 진행한 활동가 인터뷰도 문자통역이 있어서 무리 없이 진행했고,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마스크 공포(마스크 때문에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지 못해 소통이 힘들기 때문)에서도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2016년에 청각장애인 선생님 한 분이 연수받을 때 제가 문자통역을 했어요. 연수가 다 끝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마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년에 또 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3년 동안 연속으로 간 적이 있었어요. 

비장애인이라면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말을 청각장애인들은 못 듣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청각장애인이 눈으로 보면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발화자가 농담하거나 욕을 할 때도 다 적었어요. 청각장애인도 똑같이 웃어야 하니까요. 현장의 분위기, 감성도 전달을 하는 거죠. 그때 청각장애인이 웃거나 고개를 끄덕일 때 그거야말로 진정한 피드백이거든요. 끝나고 나서 고맙다고 말해주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AUD에 들어와서 문자통역을 하기 전까지는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어요. 여기 와서 청각장애인을 처음 만났는데 의외로 저항감이 없었어요. 뭔가 잘 통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글자로 적고, 입모양을 보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부족한 면을 많이 발견했어요.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인 장애인이잖아요." 


AUD가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문자통역사를 불렀을 때 온 사람이 이형렬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친구들과 세미나를 하는 자리였다. 대여섯 명이 모인 자리라 여기저기서 하는 말을 정확하게 듣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때 문자통역을 받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문자통역이 없을 때는 모임에 가면 마음이 움츠러들고 때로는 겁먹기도 한다. 그날은 아니었다. 나도 이야기의 흐름에 맞는 의견을 당당하게 말했다. 짜릿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형렬과 나는 뒤풀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궁금증이 많은 내가 쏟아내는 질문세례를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변해 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랬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2021년에는 결혼을 할 계획이란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안정적인 직업을 생각하게 돼요. 갓 자격증 땄을 때 속기 공무원 되려고 2~3개월 준비한 적이 있었어요. 막상 공무원 되면 무척 지루할 것 같아요. 맨날 회의록 만들고 녹취록 풀어야 하고(웃음). 그래서 공무원은 안 하기로 했어요.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발달해 속기사라는 직업이 없어질지도 몰라요. 그래도 저는 계속 활동가로 살고 싶어요. 지금도 활동가인 것은 맞지만,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활동가요. 비영리 쪽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사업을 하잖아요.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무척 가치 있어 보이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아직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AUD에 와서 청각장애인들이 의사소통할 당연한 권리를 누리게 한 것에 일조한 것이 무척 뿌듯해요. 이 추세로 가면 문자통역의 존재를 더 많이 알릴 수 있고, 문자통역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거니까요. AUD와 내가 그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배에 올라탄 거잖아요."


"장애를 느끼지 못할 환경 먼저 만들어야"
 
 결혼식에서 문자통역 지원되는 모습(큰 화면 옆에 작은 화면에서 문자통역이 지원 되는게 보인다.
 결혼식에서 문자통역 지원되는 모습(큰 화면 옆에 작은 화면에서 문자통역이 지원 되는게 보인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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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 대표는 AUD의 사업 중에서 자랑할만한 사업 중 하나로 (청각장애인)조합원의 결혼식에 문자통역을 지원해 주는 일을 꼽았다. 이 사업은 본인이 결혼하거나 형제, 자매 또는 자녀가 결혼할 때 가족과 하객을 위해 무상으로 지원하는 문자통역 서비스이다. 이형렬의 결혼식에도 이 서비스가 지원될 테니까 겁먹지 말고 가야겠다.  

청각장애인 당사자보다 더 당사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형렬을 보면서 '신은 공평하다'는 말에 동의하고 싶어졌다. 내가 청각장애인이고, 수어를 배우지 않았어도 이렇게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이형렬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장애인을 시혜나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애를 느끼지 못할 환경을 먼저 만들어 놓고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펼쳐갈 삶을 기대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우리가 도와줄게'가 아니라 '당신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해봐'라고요. 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회, 그런 사회를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서울 청각장애인 문자통역지원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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