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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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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 대종사의 순국 이듬해인 1917년 3월 15일 상하이에 거주하는 대종교 교도들과 독립운동단체 동제사 사원 및 유학생들이 연합하여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다음은 이때 낭송된 신규식의 「홍암선생 추도문」이다.

                홍암선생 추도문

 높고 높은 태백산의 
 거룩하신 신조여!
 바람 우레 거느리고
 강림하사 민목이 되셨도다.
 삼경 오도와
 구구 백족에,
 뉘 감히 우리보다 우월하랴
 천부인 손에 쥐고 있으셨네.
 상서 구름 졸본에 비꼈고
 꽃은 사비(泗沘)에 다복 피어,
 길이 다스려서 크게 편안하고
 교화가 먼 곳까지 미치었도다.
 어찌하여 세대가 멀어졌는가
 운명이 골짝인 양 추락하고,
 요귀와 두역시니들이
 뒤섞여 모여들었도다.
 선진 사람들이
 계몽하고 선하게 하였지만,
 금성에는 달이 이지러지고
 송경에는 잡초만 무성하였도다.
 신조의 말씀은 촛불 같건만
 시국이 강폭하게 변했도다.
 하늘의 덕은 어둡지 않아
 옛 운이 여기에 돌아와,
 선생 같은 철인을 내시어
 난세의 광란을 막게 하였도다.
 거듭 하늘을 여시어
 신령한 상자를 여셨도다.
 남강에서 첫걸음 떼어
 북륙까지 명성을 떨쳤도다.
 무리들 와서 하수를 들이켜니
 한 되 내지 한 섬이라.
 우리는 부여의 후예이고
 발해의 백성들이라. 
 꿈에서 막 깨어난 듯이
 단목 아래 모여들었다. 
 대명천지에 밝게 드러나
 바퀴살 모이듯 몰리었도다.
 수레 길처럼 앞길 열리고
 비로소 기반을 다져냈도다. 
 봄의 음기 단단터니
 양기가 발하기 시작했도다. 
 일만 군중 머리 나란히 하고 
 눈 씻고 광휘로움 바라보았도다.
 슬피 울부짖어도 따라갈 수 없는데
 느닷없이 고복 소리 들이었네.
 도는 하늘과 사람에 가득하건만
 세운은 말세에 이르렀도다.
 살신성인함이 마땅하거늘
 뒤에 죽는 게 무슨 복이 되랴?
 문무대왕은 용이 되었고
 동명성왕은 사슴을 매달았도다. 
 일편단심 쏟은 정성에
 만민이 함께 통곡하는도다.
 순명삼조와 유서는
 정녕코 반복하며 새기리다.
 상제에게 교도 위해 빌었고
 위독한 이들을 부탁하였도다.
 그런 중에 난세를 가슴아파하여
 피를 뿌리고 살점을 날렸도다.  
 이웃나라와 원수 맺음을 일갈하니
 독사보다 심했도다.
 혼란이 극심함을 탄식하니
 백성은 새는 집에 있는 꼴이었다.
 겁망은 거듭거듭 쳐지고
 도검이 빽빽하였도다.
 적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니
 마귀처럼 날뛰었도다. 
 유유한 이 세상에
 예 오는 이 그 누구뇨?
 우뚝한 삼위태백은
 신광이 감싸는 도다.
 천경의 옛터가 있으니
 빛나는 산기슭에 있도다
 기린 타고 하늘에 오르면 
 일백 신령들 와서 받들리라.
 바라노니 상제에게 호소하여
 우리들을 다시 살게 하소서. 
 나라는 반석에 돌아오고
 도는 아침 해처럼 빛나게 하소서.
 천만년 동안 계시기를 
 거친 제물 갖추고 비옵니다.
 제단 앞에서 통곡하니
 한 움쿰 피눈물을 뿌리옵니다. (주석 3)
   

주석
3> 앞의 책, 264~26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나철평전 , #홍암,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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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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