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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성북구청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체채취를 하는 동안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분무기 소독을 하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성북구청앞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체채취를 하는 동안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분무기 소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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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전면 원격수업을 하되, 평가를 마치지 못한 경우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장이 1/3 이내에서 학생을 등교시킬 수 있다는 지침이 14일에 오자 기말 시험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곧 아이들의 학력 향상을 위해 시험을 반드시 봐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의 암묵적인 동조로 21일 월요일부터 2학년이 시험을 보기 위해 등교하기로 했다.

나는 학교 방역담당자로서 감염 위험성을 생각할 때 그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특히 학력 향상을 위해 시험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 선생님들은 자신의 생각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타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할까?' 이 침묵하는 다수들의 생각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오래된 숙제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20일 일요일 저녁 코로나19 확진자 폭증 뉴스를 보며 내일 시험을 보기 위해 등교하는 2학년 걱정을 하고 있는데, 2학년 담임선생님 한 분에게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쉬시는데 죄송한데... 내일 아침에 몇 시부터 학생들 교실에 들어갈 수 있나요?"
"8시부터 들어갈 수 있어요."
"8시 4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아이들 몇 명이 일찍 등교해서 시험공부한다고 해서... 부장님이 고생이 많으세요."
"괜찮아요. 공부한다고 오는 애를 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순 없잖아요."
 

21일 월요일 아침, 선생님 말씀도 있고 하여 다른 때보다 10분 일찍 등교 지도를 하고 있는데 출근하시는 선생님들마다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고, 힘들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고생하시네요, 힘들지 않으세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선생님들은 그 말을 인사치레로 듣는 것 같았다.

감염 예방을 위해 소독을 철저히 하고 한 반을 둘로 나눠 시험을 보지만, 시험 기간 내내 '학생들이 감염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 그에 따른 예민함,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23일 수요일 오늘 시험이 끝났다. 감사한 마음에 절로 노래가 나왔다. 지나가다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이 물었다.

"부장님, 뭐 즐거운 일 있으세요? 노래를 다 부르시고..."
"그냥, 아무 일도 없잖아요."
"그러네요. 아무 일도 없는 게 좋은 거네요. 그런데 부장님 올해 참 고생하셨어요. 힘드셨죠?"


고생했다, 힘들지 않았냐는 말을 몇 번째 듣는지... 처음 학교 방역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왜 하필 내가 학생안전부장일 때 코로나19가 터져서 이걸 맡아야 하나 원망도 했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일거리가 쫓아다니는 팔자 탓으로 생각하니 '내가 그걸 왜 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사라져 그리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 한가한 선생님을 볼 때면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었다.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확진자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퇴근해서도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며칠 전 내년 학교 업무를 나누는 회의를 하는데 방역 업무와 원격수업 주관 부서를 정해야 하는데 누구도 나서는 선생님이 없었다. 그러자 교감선생님께서 올해 고생한 학생안전부장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셨다. 나는 방역 업무는 학생의 기본적인 안전에 관한 문제로 어느 분이 부장을 할지 모르겠지만 학생안전부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께서 올해 학생안전부장이 정말 고생했다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교장선생님까지 고생했다고 말씀하시자 나는 후임자를 위해서라도 내가 생각하는 '힘듦'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하루만 해도 '고생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지금 교장선생님께서도 '고생했다'고 하시니... 사실 아침에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하여 발열체크를 하고, 점심시간에 급식지도를 하고, 수시로 순찰을 돌며 학생들이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확진자가 나오면 큰일이라는 압박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급박한 상황 변화와 어떨 때는 저도 납득하지 못하는 급조한 대책을 선생님들에게 설명하고, 선생님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수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제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내가 이거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큰 과오없이 학교 방역 업무를 한 것은 선생님들의 위로와 이해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년도 방역 업무 담당자분은 선생님들과 소통이 원만한 분이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확진자 수가 얼마나 되나 궁금해 포털 뉴스를 보니 방역 당국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많이 보였다. 그중에는 코로나19 발생 때부터 뚜렷한 근거 없이 무조건 비판하는 신문사의 기사도 있었고, K방역이라며 방역 당국을 칭찬하다 12월 들어 확진자가 폭증하자 그동안의 논조와는 달리 비판하는 기사도 있었다.

나는 그 기사들을 보며 방역 당국의 1년 동안의 노력이 폄훼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나없이 견디기 힘든 비판을 하는 이러한 사회 풍조가 그들을 진짜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육체적 고달픔과 정신적 부담감을 사명감으로 이겨내는 그들에게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나 싶었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그리고 올 한 해 수고한 모두에게 옥상 달빛이 부른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태그:#코로나19, #학교 방역, #부담감, #격려와 위로, #옥상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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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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