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벌써 12월 말이라니...'라는 말이 무심결에 튀어 나오는 요즘입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신음한 2020년이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 대중문화들이 많은 힘을 줬을 듯한데요. '2020 날 위로한 단 하나의 OO'에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 순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스틸 컷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스틸 컷 ⓒ 찬란

 
사실 올해보다 작년 말부터 문제였다. 그 당시 한 언론사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직업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매주 쫓기듯이 발제를 하면서 여러 이슈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글쓰기에 자신감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여러 이유로 회사에서 영화 글을 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영화 글은 정규직 기자가 아니더라도 쓸 기회는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미련은 없었다. 2020년 1월의 마지막 날 사직서를 냈다.
 
천천히 생각해볼 참이었다. 앞으로 뭘 먹고 살아가야 할지 느긋하게 고민하기로 했다. 직업을 바꾸려고 하니 마치 장래희망을 꿈꾸던 중고교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당연히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자유롭게 보기로 했다. 시민기자로 다시 돌아와 영화 글을 썼다. 리뷰나 프리뷰를 주로 썼고 때로는 영화배우나 감독을 인터뷰 해 글을 썼다. 그렇게 지냈다. 사실 그렇게만 보내도 시간이 꽤 빨리 흘러갔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이,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가 지구를 덮쳤다. 모든 것이 멀어지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취업전선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뭘 좀 해볼지 결정도 못했는데 바늘구멍의 취업 자리는 거의 막히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다. 서른 살 중반에 백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코로나19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질수록 내 불안지수도 높아졌다. 낙담할 수만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했다. 영화를 봤다. 글을 썼다. 자소서를 썼다. 면접을 봤다. 떨어졌다. 영화를 봤다. 글을 썼다. 뭔가 제대로 이뤄진 건 없었지만 나름 로테이션(?)이 생겼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게…계속 뭔가를 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할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고 좋았다.
 
그러다 8월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관객심사단을 하게 됐다. 일주일 동안,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하루에 두 편씩 총 13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줄평을 쓰는 일이었다. 재미있었다. 사실 영화를 단기간에 몰아서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제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영화제에 관심이 생겼고, 다른 영화제에서도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다른 두 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를 하게 되었다. 영화제에 오는 관객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일을 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도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자꾸 영화와 엮이게 되었다.

내 멘탈을 부여잡아 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스틸컷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스틸컷 ⓒ 찬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두 번째로 본 건 올해 중반 한 회사의 면접을 마치고 찾은 종로의 한 극장에서였다. 면접을 며칠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한 탓이었는지 난생처음 위장이 꼬였다. 코로나 시대라 그런지 더 안정적인 직장만 찾게 되었고 당연히 그런 곳은 많지 않았다. 꼭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졌고 결국 배가 아파 소파에서 뒹굴었다. 그렇게 본 면접에서 소진해버린 (그리고 무너져버린) 나의 멘탈을 부여잡아 줄 영화가 필요했다. 처음 본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짠하지만 웃겼던 기억이 있었다. 나는 면접을 마친 날 여지없이 찬실이를 만나러 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 프로듀서였던 찬실(강말금)이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아… 망했다… 완전히 망했네." 가재도구가 담긴 큰 고무 대야를 들며 오르막길을 오르던 찬실은 현실을 한탄한다. 진짜 망했으니까. 돈은 없고 마흔 살이 되도록 연애도 제대로 못해 봤으니까. 작업하던 영화감독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찬실은 졸지에 실업자까지 됐다. 영화 일을 좋아하지만, 남자를 만나 연애에 빠지고도 싶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뚝심이 있다. 돈도 자기 돈으로 벌고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귀신 장국영(김영민)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결국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엉뚱하고 처량하고 웃기다가 결국 일어나는 찬실이가 멋져 보였다.

찬실이도 했는데 서른 중반이 나는 못할 게 무엇이 있겠냐며, 조금 늦어도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찾아도 괜찮지 않겠냐는 위안과 안도가 적당히 섞인 감정이 올라왔다. 공교롭게도 나이 마흔에 찬실을 연기한 배우 강말금은 올해 신인상을 받으며 무명에서 기대주가 됐다. 긴 무명 시절의 터널을 지나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린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마치 현실에서 이어지는 듯한 기분. 찬실이처럼 좀 늦어도,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해가 저물어간다.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차분하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기다리고 준비하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코로나19도 없어지고, 내 삶도 잘 풀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일단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면접을 보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오늘도 이런 물음표들을 떠올려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수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강말금 김영민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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