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4 09:50최종 업데이트 20.12.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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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말]

드라마 한 편을 보려면 엄마와 '딜(deal)'이란 걸 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빠르게 포기한다. ⓒ Pixabay


수학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다음은 영어 숙제, 그다음은 국어 숙제, 또 그다음은 과학 숙제… 드라마 보는 건 포기해야겠다.' 중학생이 되면서 내게 생긴 습관은 빠른 포기다. 드라마 한 편 보는 게 취미 생활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드라마 한 편을 보려면 엄마와 '딜(deal)'이란 걸 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빠르게 포기하는 거다.

이런 생활을 하는 건 압박감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은 늘 '시험을 위한 수업'이었다.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자사고를 가기 위해, SKY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의 편안함은 가차 없이 희생됐다.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드라마 PD가 되고 싶은 나에게, 드라마 한 편이 그렇게 사치일까.'

꿈을 꾸라던 어른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하자, 그 꿈을 이루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PD를 꿈꾸는 내가 드라마를 못 보는 현실. 그래서 오연호 선생님의 <삶을 위한 수업> 제목에 더 눈길이 갔다. 내 인생에서 수업은 시험을 위한 수업이었다. 어쩌면 삶을 위한 수업, 이것이 내 묵은 체증을 풀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덴마크는 내가 있는 현실과 달랐다. 학생들이 수업을 좋아하도록 유도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이 수업을 좋아하도록 했다. 근의 공식부터 외우기 시작하는 우리네 수업 방식과는 달랐다. 우리에게 진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이고, 학원 수업은 2년 정도는 앞서 있어야 정상 취급을 받는데... 그래서 덴마크의 여유가 부러웠다.

덴마크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2년 정도 휴식기를 가진다. 그들은 앞으로 할 사회생활을 꿈꾸며 다양한 일을 한다. 어떤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누군가는 여행을 다닌다. 덴마크 사회는 이런 휴식기를 당연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국가에서 학생들의 인생 출발점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래를 탄탄히 준비하는 시간이 삶을 위한 수업이 된다. 그렇게 덴마크 학생들은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1~2년의 휴식 기간도 없고 늘 급하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못 친 시험만 일주일 내내 봤다. 어른들은 말한다.

"일단 점수를 잘 받으면, 네가 될 수 있는 직업이 많아질 거야."

참 모순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뭘 잘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면 다 안다는 걸까. 꿈꾸지 못한 아이는 커서도 방향을 찾지 못한다. 그저 부모가 요구하는 대로 자라기 때문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강준상은 엄마의 바람대로 오로지 서울 의대만 바라보고 공부했다. 그는 학력고사 전국 1등이 됐다. 부모의 자랑으로 컸다. 그뿐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엄마에게 소리치며 운다. 이렇게 살기 싫었다고.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의심했다.

이 책 <삶을 위한 수업>은 꿈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숙제를 다 끝내야 드라마 한 편의 달콤함을 가질 수 있다는 공식이 생겨버린 나에게, 그건 공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책이었다. 덴마크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드라마 한 편을 마음 편히 볼 것이다. 내 삶을 위한 시간을 위해.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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