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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소비는 '외부요인에 의해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여러 분야에서 보복소비가 이뤄졌다는 말이 들리는데요. 올해 내 지갑을 가장 많이 열게 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시민기자들의 이야길 들어봅니다.[편집자말]
"가구 유통하는 친구 창식이 알지? 그 친구 올해 코로나19로 매출이 엄청나게 올랐다더라?"
"코로나19인데 가구가 왜 많이 팔려…?"


코로나19로 매출을 올렸다는 가구 유통업자 창식씨의 소식을 듣고 의아함에 물었지만, 3초 후 나는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올 한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인테리어 산업의 현금 흐름을 만들어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니까. 

올해 집에 새로 산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생활용품이 뭐가 있는지 집 안을 둘러봤다. 큼직한 원목 테이블, 원목 테이블에 어울리는 의자 두 개와 벤치, 4인 이상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 산 원목 스툴, 2인용 소파, 대나무로 만든 수납용 박스, 라탄 바구니, 빈티지한 패턴이 돋보이는 키친크로스와 귀여운 고양이 모양의 수저받침...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항목은 '조명'이었다.

플로어 스탠드 조명과 테이블 조명 여러 개가 집안 곳곳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에 인테리어로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쓴 걸까. 정확한 금액을 계산하면 가슴이 미어질 듯해 계산은 해보지 않았다. 힌트를 주자면 나는 올해 한 인테리어 앱의 VIP가 됐다. 

오피스, 카페, 술집... 집의 기능이 확장된 시대
 
원목 테이블은 볕이 잘 드는 날이면 고양이 침대가 되기도 한다.
▲ 어느 날의 테이블 위 풍경  원목 테이블은 볕이 잘 드는 날이면 고양이 침대가 되기도 한다.
ⓒ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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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앱 VIP가 될 만큼 소비를 멈추지 않은 이유를 말하자면, 우선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집을 집답게 만들려니 필요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집을 집답게'의 기준도 달라졌다. 코로나19 이전 집이란 무조건 쉬는 공간이었다면, 이제 코로나19로 집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고 식당과 카페, 술집이 운영되지 않아 집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잔을 기울여야 하는 코로나19 시대. 집은 잠을 자는 공간이자 편안하게 쉬는 공간, 일하는 공간(회사)이자 사교의 공간(카페 겸 식당) 등 다기능의 공간이 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가구며 소품이 늘 수밖에. 

올 초 직장인인 남편은 코로나19 1차 대유행으로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했다. 책상이 하나뿐이라 남편은 거실 테이블에서 좌식으로 불편하게 일해야 했다. 남편 허리가 계속 걱정됐다. 게다가 우리 집은 소파 없는 좌식 거실이었기 때문에 거실 테이블에서 일할 때 기댈 곳도 없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사하면 꼭 큼직한 테이블을 사리라. 홈 오피스를 만들어 집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일할 때를 대비하리라! 

책상이 아니라 큼직한 테이블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집에 다기능을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 40평쯤 되는 널찍한 집에 살면 공간 하나는 홈 오피스로 또 다른 공간은 다이닝 공간으로 구성할 수 있겠지만, 스무 평이 채 되지 않는 집에 그런 공간이 있을 리가.

결국 하나의 공간을 다기능으로 구성하는 게 나의 미션이었다. 큰 테이블을 구매해 일과 시간엔 홈 오피스로 식사를 할 때는 다이닝 공간으로 손님을 초대해 홈 파티 공간으로 구성하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몇 개월간 눈독 들이던 6인용 원목 테이블을 질렀다. 

하나를 사면 또다른 하나를... 인테리어의 세계
 
원목 테이블에 내리 쬐는 햇살, 그리고 브런치. 테이블 하나로 나는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한 가지, 저 풍경에 어울리는 접시가 사고 싶어졌다.
▲ 어느 날의 브런치  원목 테이블에 내리 쬐는 햇살, 그리고 브런치. 테이블 하나로 나는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한 가지, 저 풍경에 어울리는 접시가 사고 싶어졌다.
ⓒ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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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를 위한 소비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다. 예쁜 테이블을 사고 나니, 그 테이블에 어울리는 의자가 필요하고, 의자를 사고 나니 뭔가 레-트로 하고 빈-티지한 식탁보가 필요해 보인다.

음식이 떨어질 때마다 식탁보를 세탁하긴 어려우니, 테이블 매트! 그래 테이블 매트가 있어야겠다. 사람이 최대 여섯 정도 모여도 쓸 수 있게 테이블 매트를 여섯 개는 사야지. 아뿔싸! 저 레-트로한 테이블에 지금 내가 가진 식기 세트는 어울리지 않구나! 당근마켓에 그릇을 모두 팔고 새로운 스타일의 접시와 그릇을 마련해야지! 

그뿐인가.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자, 내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집구석이 더 자주 보였다. 

'저기 저 위치에 조명이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이 집엔 부족한 게 있어. 그래, 액자. 액자였어. 순댓국에 들깻가루가 없으면 순댓국이 아니듯, 액자가 없는 인테리어는 인테리어가 아닌 거야.'


그렇게 넣을 작품도 없이 이케아에서 집어온 A3 사이즈 영롱한 흰색 프레임의 액자는 여전히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거실 한쪽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조명도 여러 개 샀다. 분위기 있는 카페와 술집을 좋아한다. 집에서 커피를 내리면 몇백 원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지만, 굳이 카페에 가 4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이유는 그 카페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공간의 분위기를 소비하기 위해서다.
 
저 자리에는 원목 느낌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조명을 질렀는데, TV 옆이라 불을 잘 안켜게 된다.
▲ 원목 기둥 조명  저 자리에는 원목 느낌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조명을 질렀는데, TV 옆이라 불을 잘 안켜게 된다.
ⓒ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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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2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와인을 굳이 와인바에서 5만 원 주고 마시는 이유는 그 와인 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느낌을 누리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카페와 바를 갈 수 없던 이다혜씨는 원목 테이블을 산 김에 카페 혹은 바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큰 공사를 하지 않고도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은 무엇이냐? 바로 조명이다. 형광등이 아닌 은은한 간접조명을 집안 곳곳에 심어 최대한 카페나 바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이 공간엔 그래 빈티지한 느낌의 스테인리스 조명이 좋겠군. 저 공간에는 뱅크 스탠드가 어울리네. 원목 스툴 위에는 원목 재질의 조명이 좋겠어. 그렇게 하나둘 사 모은 조명 값만...

가구 유통하는 창식씨가 올해 매출이 쭉쭉 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샘과 LG하우시스, 현대리바트 등 주요 인테리어 3개 사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크게 올랐다. 한샘은 3분기 영업이익 240억 원으로 전년 동기 236.4%로 급증했으며, LG하우시스는 13% 증가한 281억 원, 현대 리바트는 29.2% 늘어난 89억 원을 기록했다. 홈 오피스, 홈카, 홈술족이 늘며 작게는 인테리어 소품부터 크게는 인테리어 시공까지 집에 쓰는 돈의 규모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무엇이 나를 집에 돈 쓰게 하는가

'패닉바잉'이라는 말이 신문 기사에 자주 등장했다. 집값이 오르며 지금이라도 집값 상승 막차에 올라타기 위해 3040이 영끌로 집을 사고 있었고, 이를 '패닉바잉'이라고 부른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끌어올 영혼이 있었다면 나도 패닉바잉을 했을 텐데, 바닥까지 긁어도 영혼이 없더라고.

아파트 패닉바잉에 동참하지 못한 영혼 없는 30대 프리랜서(그러니까 이다혜씨 같은)는 내 소유의 집은 없지만 지금 내가 사는 공간이라도 원하는 느낌의 공간으로 만들면서 코로나19시대 집을 향한 욕망을 풀어낸 건 아닌지.

물론 '견물생심'도 작용했다. 인스타그램과 인테리어 앱에 쏟아져 나오는 화보 같은 집, 유튜브 룸 투어 영상에서 본 취향으로 가득 채운 멋스러운 집을 보며 나도 어느 순간 그런 공간을 욕망하게 됐다. 나를 위한 최적의 공간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소비는 타인의 공간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되어 갔다. 

다시 집을 둘러봤다. 4만 원짜리 에어컨 커버는 필요한 소비였을까? 아직 그림도 넣지 않은 A3 액자, 순댓국의 들깻가루라고 표현한 그 액자는 꼭 필요한 소비였나? 귀찮아서 잘 켜지 않는 몇 개의 조명은 꼭 필요했을까? 먼지가 쌓여가는 드라이플라워는 도대체 무슨 필요인가. 잘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잘 쓰지 않는, 쓰지 않고도 생활에 불편함 없는 티슈 케이스는 도대체 왜 샀을까.

필요 소비와 견물생심 소비 구분하기 
 
인테리어 앱에 올라온 다른 공간의 사진에서 스테인리스 조명을 보고 꽂혀서 샀다. 제대로 만든 스테인리스 조명은 10만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인테리어 앱에서 비교적 저렴한 조명을 구매했다. 이상하게도 소비했는데 돈을 아낀 느낌이 들었다.
▲ 스테인리스 조명 인테리어 앱에 올라온 다른 공간의 사진에서 스테인리스 조명을 보고 꽂혀서 샀다. 제대로 만든 스테인리스 조명은 10만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인테리어 앱에서 비교적 저렴한 조명을 구매했다. 이상하게도 소비했는데 돈을 아낀 느낌이 들었다.
ⓒ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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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소비를 떠올리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2012년, 셀프 인테리어 트렌드가 막 부상할 때 나도 셀프 인테리어에 돈을 쏟아부었는데, 일시적 트렌드라고 생각했던 셀프 인테리어 붐은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오며 일상이 되었다. 4년 후인 2016년 한 인테리어 회사 주식은 삼십 배 가까이 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2012년 셀프 인테리어 할 돈으로 이 회사 주식에 투자했다면, 나는 삼십 배의 수익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19로 올 초 코스피가 떨어지고 부동산 투자로 자산증식이 어렵다고 판단한 2030은 하나 둘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바야흐로 동학개미운동이 시작된 것. 그런데 나는 '공간'을 꾸미겠다고 남들이 주식을 살 때 티슈 케이스를 사고 있으니, 이거 정말 동학 개미도 되지 못한 미생물로 남아버린 것 아닌가.

물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든 것에 후회는 없다. 작업 책상이자 다이닝 테이블이자 커피나 술을 마시는 공간이 된 큰 원목 테이블은 두 번 생각해도 잘한 소비이며 필요한 소비였다. 그런데 쓸데없이 돈을 낭비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필요'와 '견물생심'을 구분해 소비하기로 했다. 큰 원목 테이블은 '필요' 소비였고, 티슈 패키지를 가리는 티슈 케이스와 에어컨 커버는 '견물생심' 소비였다. 그리고 '견물생심' 소비를 멈추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하루에 열 번씩 인테리어 앱에 들어가던 습관을 주식 앱을 보는 습관으로, 유튜브에서 근사한 룸 투어 영상을 보는 대신 아끼고 절약하고 투자해서 부자가 된 스토리 영상을 보는 것으로. 소비의 극에 달했던 2020년 한해를 청산하며 생각한다. 2021년에는 소비와 투자의 균형을 맞추는 '자본주의 시대, 슬기로운 소비자이자 투자자'가 되어보겠다고.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작가 브런치에 함께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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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프리랜서, 안전하며 유연한 노동을 꿈꾼다. 지면으로 만나는 느슨한 프리랜서 연대,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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