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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하게 사용해서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힐링' '소통' 그리고 '공감'이다. 어딜 가나, 또 어떤 매체를 접하거나 모두 힐링, 소통, 공감을 외치고 있어 이젠 식상할 정도다.

고백하지만 정작 식상하다고 말하는 나 자신도 많이 써먹는다. '단어 인플레'라는 것을 알면서도 쓴다. 쓰면서도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하지만 달리 대체할 말이 없다는 핑계로 쓰고 또 쓴다. 그리고 나의 게으름을 반성한다.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이 책의 원제는 <공감의 힘(The Power of Empathy)이다.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이 책의 원제는 <공감의 힘(The Power of Empathy)이다.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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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을 읽고 나서 내가 공감이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했다는 걸 알았다. 내 나름대로 공감지수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나의 철저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은 동생을 자살로 떠나보낸 형이 쓴 책이다. 이 책을 쓴 '아서, 시아라미콜리'는 심리학자다. 저자의 동생인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 착하고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어느 순간,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다. 끝내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는 낯선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동생의 죽음은 저자에게 씻지 못할 죄책감과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왜 나는 동생을 구하지 못했나.'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동생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것은 사적인 책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뜻 깊은 방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나는 동생을 구하지 못했나'로 시작된 의문과 질문. 아마도 숱한 밤을 저자는 죄책감과 분노, 무기력함으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보내야했을 것이다.

심리학자인 그는 그 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공감함으로써 공감의 실체, 공감이 지닌 힘과 중요성을 강렬하게 깨닫는다. 그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는 이유는 단순한 이론에 기댄 것이 아닌, 본인이 실제로 느끼고 깨닫고 온 몸으로 겪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감은 단순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을 느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 어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고 나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된 공감이 아니라'고 한다.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잠시 떠올려봤다. 내가 공감했다고 여기는 많은 이슈와 주제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 하지만 내가 실제로 어떤 액션을 취한 것들은 얼마나 될까.

따라서 공감에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은 일단 자기 자신을 비워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감하는데 왜 자신을 비워야할까? 저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편견, 선입견, 고정적인 잣대로 상대의 이야기를 왜곡해서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대개 섣불리 충고하려 하고, 위로하려 한다.

저자는 동생과의 마지막 통화 내용을 떠올린다. 낯선 땅, 호텔 방에서 두려움에 떨어 전화를 한 동생에게 저자는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올 것을, 돌아와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채근했다. 차라리 그때 그저 동생의 말을 그저 좀더 들어줬더라면, 충고나 조언이 아닌 그저 좀더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들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들려줬더라면 어땠을까, 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 뒤에는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줘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조심스레 한두 마디 위로나 조언을 건네주고, 공감했다고 나름 뿌듯해했다. 물론 상대가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저자의 이론에 따르면 그것은 완벽한 공감은 아닌 듯하다.

기승전 훈계? 공감, 참 어렵다

이 글을 쓰다보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공감이 참 어렵다고 느낀 사건. 3년 전, 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때 6주간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딸아이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내게 전화를 했는데, 외국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공동체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나 부당함에 대해서 토로했다.

내 딴에는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할 것 같아서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다보면 결국엔 '네가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본의 아니게 이런 훈계로 귀결되었다. 기승전 교훈 또는 훈계. 딸 아이는 대체 엄마는 누구편이냐며 짜증을 냈고, 나는 그 다음부터 아이에게 섣부른 충고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어서 나는 그후로부터는 딸의 이야기에 '응. 응. 그랬구나. 응. 응'라고 대꾸했더니 이제는 또 '도대체 엄마는 내 얘기를 듣기는 듣는 거냐,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라'며 또 짜증이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나도 신경질이 났다. 딸 아이 전화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공감을 표현하기가 이처럼 어렵다. 공감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곧 잊었다.

이 책을 읽은 뒤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에 대해 들려줬더니 반응은 '너무 어렵네. 꼭 그렇게 해야만 공감인가'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우리가 그저 느끼는 공감이라는 감정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피상적이기만 한 걸까. 나는 그 나름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 나을테니.

그래도 노력할 가치가 있는 '공감'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좀더 적극적이고 강한 공감을 위해서 공부를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공감은 사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느낌이 아닌, 강건너 불구경 식의 팔짱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감상이 아닌, 좀더 치열하게 그 사람과 하나가 되려는 움직임은 많은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은 결국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가 얼마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나 트라우마, 공포, 상처 등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낡은 가스레인지 후드 묵은 기름때처럼 들러붙어 있어 제대로 된 공감을 하기 어렵다. 결국 나 자신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을 향한 정직, 겸손, 용납, 관용, 감사, 희망, 용서다.

영상매체나 책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유행처럼 쏟아져 나오는 힐링, 위로, 소통, 공감의 메시지들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느끼해졌다. 다 맞는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인데, 뭔가 좀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를 다시 바라보고 이해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 아픈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부끄럽고 뼈저리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 치열함이나 불편함 없이 그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다 괜찮다'라는 피상적인 접근은 위험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 '공감의 힘을 키우는 여덟가지 키워드'를 뼈 아프게 읽었다.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나를 받아들이고, 나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동생이 자살한 것을 두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저 '괜찮다'라는 차원이 아니다. 내가 잘못을 할 수 있듯 다른 사람도 잘못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관용과 너그러움, 그리고 너와 내가 이어져있다는 '나'와 우리의 확산과 확장이 있을 때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희망'에 있는 한 구절.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기도 하다.
 
'희망이란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란 믿음이 아니라,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 어떻게든 길을 찾아낼 것이란 확신이다. 공감은 우리가 세상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 404p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당신을 위한 공감 수업

아서 P. 시아라미콜리, 캐서린 케첨 (지은이), 박단비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0)


태그:#공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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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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