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대거리가 9시 이전 북적이던 모습이 9시를 넘기자 상점도 영업을 중단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급격히 줄어들어 어둡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대거리가 9시 이전 북적이던 모습이 9시를 넘기자 상점도 영업을 중단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급격히 줄어들어 어둡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코로나 2.5단계 이후 밤이 빨리 밀려든다. 낮이 짧고 밤의 길이가 긴 계절도 한몫한다. 답답증이 일어 잠깐 나갔다가도 어느새 어두워진 시야에 시간을 착각하게 되고 집으로 급히 발을 돌리게 만든다. 시계를 보면 아직 6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다.

9시 이후 식당은 영업 금지가 되었고, 지하철이나 버스 운행도 늦은 시간에는 배차 간격을 늘린다니 전 국민이 코로나로 인해 집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이 당겨진 느낌이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지만, 피치 못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가에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거리의 풍경에서 그 같은 변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저녁 6시도 안 된 시각이지만 거리에 사람이 없다. 빨리 어두워지니 상가마다 불을 환하게 밝혀야 하지만, 아예 문을 열지 못하는 시설이 많다. 큰 상가도 1층에서 영업하는 식당 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캄캄하다. 낯설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1층의 커피숍은 불을 켜졌지만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의자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있고 테이블도 한쪽에 치워져 있다.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아예 띠로 막아 놓았으니 당연히 사람이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날이 어두워지니 테이크 아웃 손님도 없다. 이곳은 밤늦게까지도 조명이 꺼지지 않던, 쇼핑과 유흥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는데 마치 세기말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풍경에 당황스럽다.

뉴스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타격을 보도하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한순간에 사회가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실제 같지 않은 풍경이다.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어딜 가나 사람이 없다   
 
오후 6시 풍경
▲ 부천 중동 먹자골목 오후 6시 풍경
ⓒ 장순심

관련사진보기


다시 길을 걸어 집 근처의 먹자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곳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곳은 인근 백화점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새로운 밤 풍경이 만들어지던 곳이다. 백화점에서 밀려 나온 인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밤늦도록 영업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지금 시간은 오후 6시. 백화점이 문을 닫기까지는 아직 두 시간도 더 남았다.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북적이던 이곳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1층의 가게들이 불을 밝히고 있지만 거리는 물론이고 실내에도 손님은 없다. 백화점이 끝나는 시간에는 이곳도 문 닫을 준비를 해야 한다. 퇴근한 사람들은 저녁 끼니를 해결할 수 없고 기다리던 상가들은 손님을 맞을 수 없다.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진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도 하루가 저물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읽던 책을 펴다가 TV를 켜다가 인터넷 강의를 열어 놓기도 하지만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답답증이 일어 집 안을 둘러본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니 얼마 전에 했던 가구 재배치의 연장선으로 위치를 바꿀 것이 있나 궁리해 본다. 남아도는 시간의 돌파구를 집에서 찾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말이지만 외출의 자유를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고 보이는 것은 집안의 풍경이니 같은 자리에서 우뚝 버티고 시야를 가로막는 가구들이 신경에 거슬린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가구 재배치. 물건을 이고 지고 사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시작했다.

일단 이것저것 위치를 바꾸다 가구가 방에 맞지 않으면 치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방 저방 들쑤셔 치우고 정리하고 한나절 대 공사를 진행했다. 오래된 가구며 손잡이가 망가진 캐리어, 장식처럼 떡 버티고 자리만 차지하는 피아노, 그리고 언젠가 사용한다고 베란다를 창고처럼 사용하며 두었던 것들을 무작정 다 꺼내고 나니 거실에 가득 찼다. 이제는 버릴 차례다. 버리는 것을 못 하던 사람이었는데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조카들이 쓰던 피아노는 가족이 이민을 떠나며 우리 집으로 왔고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한때의 로망으로 피아노를 잘 사용하게 될 줄 알았다. 직장 다닐 때는 늘 피곤하고 바빠서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고, 직장을 그만두고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10년간 10번이나 피아노 앞에 앉았을까. 짐스럽게 느껴져 치워야 할 목록의 첫 번째에 오른 이것부터 치웠다.

약방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칸칸이 서랍이 많았던 서랍장도 대형 폐기물로 내놓았다. 비워진 칸이 많았던, 자리만 자치했던 6단의 서랍장. 큰 살림살이가 빠져나갔다. 매일 치워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었는데, 묵은 숙제를 한 것처럼 개운하면서도 섭섭했다. 다 치우고 나니 빈자리가 훤하다 못해 휑하게 느껴진다. 집이 이렇게 넓었나 싶다. 사람이든 살림이든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곧 익숙해지겠지만 일단은 즐기자고 생각한다. 

매번 들여놓기만 했지 내놓은 것은 이사 오고 처음이다. 거실 가득이었던 것을 다 내놓고 나니 집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20년 만의 큰 변화를 하필 2020년에 맞이하다니. 단지 묵은 것을 정리했다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의 압박과 스스로를 가둬야 하는 숙제 같은 상황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마음에 숨통을 틔우고자 집을 비운 것 같다. 

지금 이 시절은 어떻게 기억될까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근엔 확진자 숫자가 놀랍도록 늘어나고 있다. 그 와중에 이런 얘기도 들었다. 남편이 직장에서 한 직원에게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래도 좋은 점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술 안 먹고 집에 일찍 들어가니 좋지?"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술을 안 먹긴요. 친구들하고 모텔에 모여 더 편하게 마셔요. 요즘 그게 유행이에요."

이야기를 듣고는 말문이 막혔다. 잠시 고민할 것도 없이 이어지는 대답에 남편도 놀랐다고 한다. 이런 모습도, 후에 '서울 2020년 겨울'의 풍경으로 기록되려나. 코로나에 대응하는 인간의 양상은 참으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인류는 늘 과오를 통해 발전하고 성장하지만, 결국 인류가 멸망하는 것도 인간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을 언제 깨닫게 될까?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지금의 상황을 떠올린다면 무엇이 남을까.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세계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장 변화가 많았던 시기로, 그리고 모든 생활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태그:#서울 2020년 겨울, #집정리, #불 꺼진 상가, #코로나 2.5단계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