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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 메이크업을 한 종자
▲ Pop a 911 드랙 메이크업을 한 종자
ⓒ 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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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빛깔을 사용한 메이크업, 화려하고 파격적인 의상, 한국 아이돌 최신 노래부터 해외 팝송까지 다양한 음악을 배경으로 한 퍼포먼스.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의 여러 갈래가 다 모아져 있어 드랙(Drag,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의상, 헤어, 메이크업, 퍼포먼스 등을 이용해 나타내는 것)을 사랑한다는 청소년 드랙 아티스트. 2019년 1월 1일부터 '종자'라는 활동명으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방송고등학교 2학년 정종인(18)군은 세상의 씨앗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씨앗이라는 게 땅에 한 번 심으면 물을 먹고 햇빛을 맞으며 계속 자라나잖아요, 나무가 될 때까지. 저도 지금 제가 땅에 박혀 있는 씨앗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주시는 '물'을 먹고 나무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어진 방식으로 해야 할 일들을 완수하며, 정해진 길로 나아가기 바쁜 나머지 '나'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 종자의 이야기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할 때 내가 행복하고, 무엇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까. 이 작은 고민을 발전시키다 보면, 우리는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25일, 그와 화상 인터뷰를 나눴다. 그가 치열하게 고민해 온 '나'에 대한 이야기를 4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KEYWORD 1] It's 종자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 4개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첫째로 종자를 뽑았다. 그는 '정종인'이라는 본명보다도 활동명 '종자'에 더욱 애정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효리'라 하면 '이효리'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것처럼 종자를 좀 더 알리고 가치를 높여서 '종자'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어렸을 적부터 가수를 꿈꾸던 종자는 노래뿐만이 아니라 춤을 비롯한 다양한 퍼포먼스에 열정이 뜨거웠다고 한다. 드랙을 통해서 본인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며 신이 난 표정으로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더 알리고, 자신과 같은 분야의 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종자는 한국을 넘어 해외 진출까지 꿈꾸고 있다. '한국말을 쓰지 않는 나라에서 한국적인 이름을 쓰면 눈에 띌 것 같아서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지어줬던 별명을 택했다'는 그는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하기를 꿈꾸고 있다. 누군가는 '나중에 이름 때문에 후회할 수 있다'고 만류했지만, 2019년 1월 1일 종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애들 대부분이 바꾸지 말라였는데, 그냥 제 선택이니까 바꿨어요. (웃음) 1월 1일 되는 날에 유튜브도 그렇고 제 이름을 싹 다 바꿨어요. 종자는 그래서 한 살이에요 아직."

[KEYWORD 2] 친절한 사람

우리는 나와 같을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 주변을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종자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또래 다른 친구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댄스 동아리 오디션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붙여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차별을 겪으며 그는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 싶어서 그 친구들과 관련된 친구들한테 좀 물어봤는데, 딱히 별거 없더라고요. 그냥 남자앤데 좀 다르고, 또 화장 짓거리 한다고. 이게 왜 나를 싫어하는 이유지? (중략) 그때부터 저는 '억울해서라도 이걸로 성공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나의 끼나 이런 재능을 이용해서 혼자서 스스로 매일같이 다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좀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물론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시기 질투 하는 애들이 못 살게 굴다보니까 스스로 많이 좀 단단해지더라고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유일하게 어머니로부터 많은 지지와 도움을 받았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한 그는, 자신과 달리 주변에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고 했다.

"나라도 좀 도와주고 같이 편을 들어주어야겠다. 그래서 좀 더 '친절'하게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KEYWORD 3] 똑똑한 사람

종자는 똑똑한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18살 소년이 생각하는 똑똑함은 학업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똑똑함은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을 돕고, 외부의 날이 선 공격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지식, 그리고 그걸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세상에 불공평한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종자는 이런 문제들을 자신의 경험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일은 하지 못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강요당하는 것. 종자는 본인도 이러한 차별을 받는 입장에 속해 있다고 느껴 비슷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넷플릭스에서 여성·퀴어 관련 주제의 영화들을 즐겨보는 이유이다.

학생, 댄스부원, 청소년 드랙 아티스트, 유튜버, 때로는 일일 강사로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여러 역할들을 '프로페셔널하게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지금의 경험은 어설프지만 차곡차곡 쌓여 한층 더 여문 종자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포부도 나타냈다. 

[KEYWORD 4] 씨앗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키워드로 '씨앗'을 뽑았다. 세상의 씨앗이 되겠다는 포부도 담겨있지만, 그 씨앗이 자라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물과 햇살 같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한국 청소년 드랙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 글을 많이 받는다는 종자는 아직 자신도 어리기에 교육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웃기지만, 다양한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을 시도하고 있다.

18살 소년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야무진 입꼬리를 보며 '나'에 대해 이렇게 치열히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돌이켜 봤다. 그는 나에게 마치 살아있는 데미안 같았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아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이다.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그 사람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각자 본래의 자기가 되어 보려고 노력한다."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Demian)> (1919)의 서두.     

태그:#나, #드랙, #청소년 ,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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