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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사가 보내온 글을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싣습니다. [편집자말]
상담사 이미지.
 상담사 이미지.
ⓒ Pixabay
 
사랑하는 엄마에게. 

처음 '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라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때 제가 건강보험공단에 입사한 줄 알고 두 손 꼭 잡아주며 고생했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요.

사실 상담사 일이 이렇게 어려울 거라 생각도 못 했어요. 사람들이 어려운 거 물어보면 각 지역 공단으로 연결해주고 필요한 서류 말해주면 팩스로 보내주면 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했거든요.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돈도 얼마 못 버는데 보험료가 많이 나왔다, 왜 지난달과 보험료가 다르냐, 라고 화내며 전화하는 사람들에게 소득과 일하는 직장, 부동산 소유 현황 등을 들여다보면서, 수시로 바뀌는 정책을 설명해야 하는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일을 시작할 생각도 안 했을 거예요.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매월 시험을 치르며 공부도 해야 했지요. 엄마도 그러셨죠. 그렇게 공부할 거면 학교 다닐 때 해서 어디 좋은 학교라도 나와서 돈 많이 주고 대우 잘해주는 좋은 곳 가지 그랬냐고.

그러게요. 열심히 공부하고 상담해도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이곳에 있기보다 학교 다닐 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곳에 취직할 걸 그랬다, 라고 저 역시 가끔은 후회하기도 했으니까요.

회사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는 시간, 전화 받는 평균 시간, 전화를 끊고 다른 전화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모두 수집되고 내 윗사람 누구든 내가 통화 하는 걸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일해요.

1년도 되지 않아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고 주위 사람들은 등이 아프게 몰아쉬는 숨소리를 듣고 왜 자꾸 한숨을 쉬느냐며 걱정했어요. 이유 없이 무턱대고 눈물이 차올랐던 수개월. 

용기 내어 찾아간 정신과에서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하고도 반년을 넘게 말을 못 하고 숨겨 왔어요. 걱정하시며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 게 눈에 선했거든요.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전화 주는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내 모습에, 아주 간간히 고맙다, 고생 많다, 말씀해주시는 얼굴 모르는 고객님들의 말씀에 작은 뿌듯함. 내가 하는 일에 성취감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니까요.

"엄마, 저는 지금이 좋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나니 못 보던 것들이 보였어요. 왜 일은 오전 9시에 시작하는데 오전 8시 40분까지 나와야 하고 그 시간에 안 오면 지각비를 내야 하지? 시험과 교육은 아침 일찍 진행하면서 왜 그 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 안 쳐주지? 오전 9시부터 전화가 오는데 왜 오전 8시 55분에 미리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하지?

배탈이 났는데 화장실을 자주 가면 왜 눈치를 주는 걸까?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라고 해놓고 20분 자진 반납하라는 건 누가 시키는 거야? 서비스라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거라 믿고 살아왔는데 왜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를 하기보다 얼른 끊고 다른 전화를 받게 하지? 

머릿속에는 물음표투성이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게 당연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전히 물음표만 꽉 찬 상태로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대통령이 우리 같은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는 뉴스를 봤고, 기대했어요. 용역업체가 아니라 공단 소속이 되면 이런 물음표들이 느낌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으니까요.

국민연금관리공단, 근로복지공단 다른 4대보험 공단은 모두 정규직이 됐는데 내가 일하는 건강보험공단만 안 되더라고요.  공단은 시험 보고 정식으로 입사하는 곳이지 쉽게 쉽게 입사한 고객센터 상담사는 소속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래요.

화가 났어요. 난 항상 전화를 받을 때 "함께하는 건강보험공단 상담사"라고 인사하는데 왜 건강보험공단소속이 아니라 하는지. 그들과 똑같이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요. 저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모두 모인 그 자리에 내가 주먹을 높이 쥐며 찍은 사진을 보내주자 바로 전화해서 그러셨죠. 노동조합 하지 말라고, 목소리 높이고 싸우는 무서운 일 하지 말라고요. 

근데 엄마, 전 지금이 너무 좋아요. 용역업체에 기만당하며 아침 일찍 시험 보고, 교육받던 시간이 사실 업무 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연차는 내가 쓰고 싶은 날짜에 써도 된다는 것, 내가 건강보험공단 일을 하는 건강보험 상담사라는 것, 이 모든 걸 알게 됐으니까요. 처음에는 화도 나고 슬픈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내 권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동료들과 찾아가며 얻어 내는 것에 큰 기쁨과 활력을 느껴요.

언젠가는 사람들도 알아줄 거라 믿으며 엄마가 해준 그 말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고객들을 만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상담하고 도움을 주려고요. 나도 보람을 느끼고 고객도 만족하는 진짜 건강보험공단의 상담사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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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건강보험공단, #콜센터, #고객센터,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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