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 13:12최종 업데이트 20.12.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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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사법절차인 형사 처분에 더하여 행정절차인 징계를 받는다. 기소유예 이상의 형사처분을 받은 사람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징계를 받지 않는 군인들도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받지 못하는 군인들이다. 우리 군에는 그런 군인이 2020년을 기준으로 6명이다.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2작전사령관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4성 장군이다. 그런데 4성 장군은 총 7명이다. 빠진 한 사람은 지상작전사령관이다. 그는 앞서 소개한 6명과 달리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잘못 저질러도 징계 '못' 하는 군인 6명

이렇게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는 건 법 때문이다. '군인사법' 제58조의2 2항은 징계위원회를 징계 대상자의 선임 중에서 3명 이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4성 장군을 징계하려면 그보다 선임인 사람을 3명 찾아야 하는 꼴인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실제 원인철 합참의장(공사 32기), 남영신 육군참모총장(학군 23기)를 제외하면 부석종 해군참모총장(해사 40기), 이성용 공군참모총장(공사 34기), 김승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사 42기), 김정수 2작사령관(육사 42기)은 모두 동기 기수다. 우리 군에는 이들의 현역 선임 3명이 없다. 안타깝게도(?) 안준석 지상작전사령관(육사 43기)에게만 3명 이상의 선임이 있다. 법적으로 이들 모두에 대한 징계권은 국방부장관에게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있으나마나한 권한이 된 셈이다.

그리고 최근, 이 법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린다. 국민의힘 소속 신원식 의원 덕분이다. 국회 국방위원인 그는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차장을 지내고 2016년 중장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 국회의원이다. 육사 37기로 박지만, 박찬주 등과 동기다. 그런 신 의원이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사징계법' 위헌소송을 적극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며 '군인사법' 상 4성 장군 징계 문제를 언급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그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의 관계와 견주며, 현행 '군인사법'의 해당 조문이 사실상 국방부장관이 군의 최고 선임자인 합참의장을 징계할 수 없게 되어 있듯, 법무부장관도 검찰총장을 징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신 의원은 여기에 박찬주 대장 이야기도 얹었다.

사실 '군인사법' 상 4성 장군 징계 문제를 촉발한 사람은 공관병 갑질 사건의 박찬주 대장이다. 2017년 여름, 군인권센터가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갑질 사건을 폭로했을 때의 일이다. 당초 국방부는 박찬주 대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려 했다. 그런데 막상 징계 절차를 밟으려고 보니 징계위원회조차 구성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했다. 상황이 언론에 알려졌을 때의 분위기는 '황당함'이었다. 아무도 이 법이 '무언가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법'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여러 의원들이 이를 입법미비로 규정하고 속속 '군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박찬주 대장 갑질 논란이 뜻하지 않게 가르쳐준 것

2017년 8월 한 달간 발의된 관련 법률안은 총 5개였다. 5개 법률안 모두 각기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4성 장군에 대한 징계가 불가능한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백혜련 의원,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 바른정당 김영우 의원,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이 각각 제출했다. 이 중 김중로 의원은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으로 신원식 의원의 육사 선배다. 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중복을 제하고 총 55명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 19명, 자유한국당 14명, 국민의당 11명, 바른정당 11명이었다.

그런데 당시 국회 국방위 위원들은 징계위원회 구성 방법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국방부에 외부 인사를 포함한 별도의 징계위원회를 만들고 4성 장군만 대상으로 하자는 안(백혜련, 김영우 안), 마찬가지로 외부 인사를 포함한 별도의 징계위원회를 국방부에 두되 4성 장군뿐 아니라 장성급 장교를 모두를 대상으로 하자는 안(김중로, 김학용 안), 국무총리 소속으로 징계위원회를 만들고 4성 장군만 대상으로 하자는 안(김병기 안)을 두고 토론하던 국방위는 박찬주 대장 이슈가 잠잠해지자 이 법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았다. 관련 법률안은 모두 20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되었다.
 

2015년 9월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박찬주 신임 2작전사령관에게 부대기를 이양하고 있다. 박 대장은 대장 승진과 동시에 2작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 육군본부 홈페이지 캡처

 
아쉽게도 법률이 개정되진 않았지만 우리 군이 지금까지 4성 장군을 징계하는 일을 상상하지 못해 법률을 엉성하게 구비해두었다는 점, 법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가 모인 건 분명했다.

신원식의 궤변

그런데 신 의원은 돌연 이 법이 합참의장을 위시한 4성 장군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비합리적인 상황'을 막고 있다며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논란에 원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타이틀을 갖고 징계 대상자가 아닌 사람은 국무위원 등의 정무직 공무원 정도밖에 없다. 이들은 징계를 받지 않는 대신 임명권자가 자유롭게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공무원들은 다르다. 일반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으로, 군인, 검사, 경찰, 소방관 등의 특정직 공무원들은 별도의 법에 따라 징계를 받게 된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의 공직을 박탈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정 조치가 자의에 의하지 않게끔 제반 절차를 법률로 정해둔 까닭이다. 군은 징계뿐 아니라 보직을 해임할 때도 '보직 해임 심의위원회'를 열어 사전에 심의하거나, 부득이한 경우 사후 심의를 반드시 받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신 의원은 합참의장이 큰 비위를 저질러 징계사유가 생기면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인사조치로 해임할 수 있다며,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임명하여 임기가 보장된 합참의장을 임기 만료 전에 일개 부처의 징계조치로 해임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법의 일반적 이치에 부합'된다고 주장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비위행위에 대해 공정한 절차에 따라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4성 장군이라고,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자라고,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징계 대신 임명권자의 자의로 쫓아내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페이스북 ⓒ 신원식 페이스북 캡처

 
군의 문민통제 원칙을 부정하는가

게다가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령권(군의 작전·지휘에 관한 명령)과 군정권(군사행정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군은 지휘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인데 장관의 지휘를 받아 군령권을 행사하는 합참의장과 군정권을 행사하는 각 군 참모총장의 비위 행위를 징계로 다스릴 수 없다면 영이 설 리 없다. 군인 출신만 국방장관을 독식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인인 장관에게 군인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이 부여되지 않는 것은 문민통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군문에 몸을 담았던 신 의원이 '일개 부처의 장관인 국방부장관이 합참의장을 징계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식의 위험한 주장을 펼치는 까닭이 궁금할 따름이다. 신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기 전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의 전략위원을 역임하며 2019년 1월 30일 대수장 출범식에서 아래와 같은 '대군성명서'를 낭독한 적도 있다. 당시 성명서의 내용에 군의 문민 통제 원칙을 부정하는 내용이 많아 예비역 장성들이 후배 군인들의 집단 항명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사랑스런 군 후배들인 육·해·공 전 장병들은 위장 평화와 공산화 가능성이 높은 남북공조를 수행해 대한민국 국민·영토·주권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헌법 제5조에 명시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할 것인가. 분명하게 선택하라. 그리고 선택을 결행하라."
 - 2019. 1. 30.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이 발표한 대군(對軍)성명서 중
 

국기에 경례하는 예비역 장성단 (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수호 예비역 장성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9.1.30 ⓒ 연합뉴스

 
이 외에도 그의 주장은 통상적인 법률 해석과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다. 그는 글의 말미에 '검찰총장의 경우도 해임해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이 있다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해임하면 간단 명료'하다며 '검사징계위원회를 통해 축출하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의 관계가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에서도 통용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청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간단명료하게 해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검사는 군인과 달리 직무 상 신분을 보장 받는 지위로 국회의 탄핵소추, 징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외에는 파면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

군인처럼 임용권자가 보직을 해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앞선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의 관계에 대한 해석도 자의적이지만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에 이를 통용시키려는 무리수를 두다보니 주장의 면면이 총체적으로 이상해지고 말았다.

어느 입장에 서서 무슨 주장을 하건 법을 자의적, 정파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것이 입법자인 국회의원이라면 더욱. 합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을 대상으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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