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필드 플레이어들이 상대 선수들보다 한 발 더 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이 그 약속을 멋지게 지켜내며 불투명한 것처럼 보였던 16강 목표를 이뤘다.

박건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한국)가 한국 시각으로 4일 오후 10시 카타르 도하에 있는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0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G조 빗셀 고베(일본)와의 최종 라운드에서 2-0으로 이겨 극적으로 16강에 올랐다.

'2골 승리' 목표를 이루다

수원 공격을 책임질 수 있는 타카트와 염기훈을 카타르에 데려오지도 못한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이 이번 조별리그 남은 일정 참가를 포기하는 바람에 조 2위 자리가 쉬워 보였지만 나머지 두 팀 '빗셀 고베,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손꼽힐만한 강팀이라는 사실을 아는 축구팬들은 지금까지 나아간 수원 블루윙즈의 성과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축구대회 조별리그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는 항상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된다. '비기기만 해도 16강, 반드시 이겨야 16강' 등 경우의 수는 흔한 수식어이지만 이번에 수원 블루윙즈 앞에 놓인 경우의 수는 '2골 차 승리'였다. 상대 팀에 따라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는 마지막 숙제라고 할 수 있지만 빗셀 고베에는 이른바 아시아 축구 무대에서 보기 드문 베테랑 선수들이 중심을 잡고 있기에 매우 까다로운 목표였다.

고베의 선발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스페인)와 토마스 베르마엘렌(벨기에)이 어김없이 나왔다. 비록 전반전만 뛰고 벤치로 물러났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은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상대로 전반적인 공 점유율(빗셀 고베 63.5% - 수원 블루윙즈 36.5%)은 밀렸지만 유효 슛 기록 '수원 블루윙즈 6개 - 빗셀 고베 1개'를 찍은 것만 봐도 수원 선수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효율적인 게임 운영을 펼쳤는지 알 수가 있다.

호주 국가대표 골잡이 타가트 없이 도하까지 날아온 수원 블루윙즈는 이번에도 미드필더 임상협을 명목상 스트라이커 자리에 내세우며 여섯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했다. 이들 중 단짝 배치가 인상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박건하 감독의 노림수가 여기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주 상무를 전역하고 수원의 파란 유니폼을 입으며 살림꾼으로 자리잡은 한석종이 박상혁 옆에서 주로 도왔고, 주장 완장을 찬 성실한 미드필더 김민우가 고승범 옆에서 주로 뛴 것이다.

공 소유권이 몇 초 사이에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현대 축구의 특성상 세컨드 볼을 어떻게 따내며 이를 얼마나 효율적인 공격으로 전개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에 박건하 감독의 이러한 미드필더 배치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선수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중심에 서 있는 빗셀 고베라고 해도 크게 흔들어놓을 수 있는 전략이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수원의 푸른 날개가 그라운드를 온통 뒤덮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수원 미드필더들은 그라운드 곳곳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며 뛰어다녔다. 

여기에 왼쪽 윙백 이기제, 오른쪽 윙백 김태환까지 어울려 중원에서 두 개의 삼각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다녔으니 빗셀 고베 필드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공을 소유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마다 수원의 파란 유니폼이 곧바로 덤벼들었다는 뜻이다. 23분 빗셀 고베의 골잡이 노리아키 후지모토의 헤더 슛이 수원 블루윙즈 골키퍼 양형모의 슈퍼 세이브에 막힌 것이 그들이 기록한 유일한 유효 슛 기록이었다. 그 이후 빗셀 고베는 수원 블루윙즈의 골문을 제대로 두들기지 못했다. 백 스리 앞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두 삼각형이 빗셀 고베 필드 플레이어들을 질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수원이 원하는 수비가 이루어졌기에 그들의 '2골' 목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교체 선수로 들어온 김건희가 단 4분만에 이기제의 왼쪽 코너킥을 받아서 헤더 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67분에는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대회 수원 블루윙즈의 가짜 9번 공격수 역할을 맡은 임상협이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고 오른발 킥을 강하게 차 넣으며 자신들이 목표한 2골 차 승리를 끝내 만들어냈다. 트레블을 노리며 야심차게 도하로 건너온 전북 현대(H조 3위)와 감독 대행의 대행이라는 보기 드문 꼬리표를 달고 날아온 FC 서울(E조 3위)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돌아가는 짐을 싼 것을 감안하면 울산 현대(F조 1위)와 함께 16강에 이름을 올린 수원 블루윙즈의 성과는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제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은 오는 7일(월) 오후 11시 같은 장소에서 H조 1위로 올라온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를 만나 8강 진출을 노린다.

2020 AFC 챔피언스리그 G조 결과(4일 오후 10시,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도하)

수원 블루윙즈 2-0 빗셀 고베 [득점 : 김건희(49분,도움-이기제), 임상협(68분,PK)]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
FW : 임상협(83분↔최성근)
MF : 이기제, 박상혁(46분↔김건희), 한석종, 고승범, 김민우(90+1분↔강현묵), 김태환
DF : 양상민, 민상기, 장호익
GK : 양형모

◇ G조 최종 순위표
1 빗셀 고베 6점 2승 2패 4득점 5실점 -1
2 수원 블루윙즈 5점 1승 2무 1패 3득점 2실점 +1
3 광저우 에버그란데 5점 1승 2무 1패 4득점 4실점 0
4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 : 남은 게임 불참

◇ 2020 AFC 챔피언스리그 동아시아 그룹 16강 대진표
베이징 궈안 - FC 도쿄(12월 6일 오후 7시,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울산 현대 - 멜버른 빅토리(12월 6일 오후 11시,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음)

빗셀 고베 - 상하이 상강(12월 7일 오후 7시,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수원 블루윙즈 - 요코하마 F. 마리노스(12월 7일 오후 11시,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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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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