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KBS 2TV <개그콘서트>가 종영한지도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지난 1999년 시작한 이래 국내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불리며 21년간 한국의 공개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개콘>의 종영은 코미디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종영 이후 <개콘> 출신의 희극인들은 최근 여러 방송에 출연해 후일담을 들려줬다. 주로 게스트로 출연한 희극인들은 입을 모아 <개콘> 폐지 이후 생계 곤란과 목표 상실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미운 우리 새끼>(10월 25일 방영분)에서는 희극인 김준호가 <개콘> 종영 이후 실직 상태인 후배들과 함께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같은 날 방송된 JTBC 예능 <뭉쳐야 찬다>에선 아예 <개콘> 멤버 출신으로 구성된 조기축구팀이 단체로 출연해, '어쩌다FC' 팀과 대결을 펼치며 방송 구직을 콘셉트로 여러 차례 '웃픈' 자학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11월 30일 방송된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는 KBS 공채 코미디언 송준석과 배정근, 김두현 등이 출연해 "코미다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꿈을 포기할 기로에 놓인 개그맨이 수십 명"이라며 고충을 호소했다.

그나마 <개콘> 출연 이후 이렇게라도 방송에 출연하는 희극인들은 차라리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무명, 젊은 희극인들은 더욱 상황이 어렵다. 설상가상 코로나 19 사태까지 겹치며 희극인들의 또다른 수입원이던 각종 외부 행사들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물론 방송에서는 대체로 유머러스하게 포장되기는 했지만 시청자들에게 밝은 웃음을 주어야 할 희극인들이 정작 본인들의 곤궁한 처지마저 웃음의 소재로 삼아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줬다.

문제는 방송가가 희극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일회성 에피소드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서 냉혹한 시청률 경쟁으로 인한 빛과 그림자는 희극인들만의 사정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개콘>의 공개 코미디 방식은 그 수명이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예전만큼 웃기지 못한 희극인들의 무능이나 자학으로만 돌리는 듯한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꿈과 직장을 잃어버린 그들의 상처만 또한번 헤집는 것에 불과하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재는 단지 희극인들의 경제적 피해를 넘어, 방송가 입장에서도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 시대의 트렌드가 달라졌다고 해도 '정통 코미디' 장르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실 이미 <개콘>은 여러 변화 끝에 현재를 맞이한 결과였다. 과거 <유머 1번지>와 같은 스튜디오 콩트극 위주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개콘> 이후 공개 코미디로 변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제 공개 코미디의 수명이 다했다고 해서, 코미디 자체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적극적인 희극인들은 벌써부터 유튜브 채널과 숏폼 형식 등을 활용해 새롭고 자유로운 코미디 문법들을 시도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현실이 코미디보다 더 황당하고, 코미디를 코미디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찰리 채플린이나 주성치가 온다고 해도 유연한 웃음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앞으로 끊임없이 다양한 형식의 코미디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결합한 <장르만 코미디>나 <코미디 빅리그> 정도만이 겨우 코미디 장르의 계보를 잇고 있는 실정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단순히 해당 장르를 넘어 여러 방송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신인등용문'이자 '인재 양성소' 역할도 했다. 박나래, 장도연, 이수근, 김병만, 김신영, 정형돈, 김준호, 박성광, 김숙 등 코미디 프로그램이 배출한 많은 스타들은 오늘날 각종 예능은 물론이고 시사교양, 드라마, 대중가요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개콘>같은 공개 코미디 세대는 아니지만 유재석이나 박명수, 이경규 같은 유명 방송인들도 결국 뿌리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부터 출발하여 오랜 무명생활 끝에 스타덤에 오른 인물들이다.

이들이 만일 희극인과 코미디 무대라는 근본이 없었다면, 방송가에서 오랜 무명생활을 견뎌내고 방송 경험을 쌓아가며 성장할 기회가 있었을까. 유재석이나 이경규처럼 수십년을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국민 MC, 예능 대부라는 수식어를 얻는 인물들이 나오기는 앞으로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재능과 열정이 있는데도 어떻게 방송에 입문해야 하는지 마땅한 창구가 없어서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그리고 최근에는 이러한 희극인 출신들의 빈 자리를 스포츠스타나 아이돌, 혹은 일반인 출신 인플루언서들이 메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대중문화의 트렌드는 돌고돌기 마련이고 언젠가 정통 코미디를 항한 대중들의 수요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트로트가 오늘날 대중문화의 최고 히트 상품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줄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코미디의 인기가 일시적으로 주춤한 시대라고 할지라도, 언젠가 장르의 명백을 이어나가도록 인재들이 활약할 기회는 열려 있어야 한다. 정통 코미디가 멸종해가는 시대에 우리 방송가에 남겨진 숙제다.
개그콘서트 정통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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