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당한 무관의 설움을 더 '큰 물'에서 풀고 싶었을까. 아시아 정상에 도전하는 프로축구 K리그 울산 현대가 2020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울산은 11월 30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F조 5차전에서 FC도쿄(일본)에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뒀다. 4승1무 무패행진으로 승점 13점을 확보한 울산은 2위 도쿄(승점 7점)와의 승점차를 6점으로 벌리며 남은 1경기(3일 상하이 선화전) 결과에 관계없이 16강행을 확정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K리그 4팀중(울산, 전북, FC서울, 수원)에서는 최초다.

김도훈 감독이 이끄는 울산에게 이번 ACL는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울산은 올시즌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트레블(3관왕)'도 가능하다는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K리그와 FA컵에서 모두 '현대가 라이벌' 전북 현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전북과 올시즌 5번의 맞대결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1무 4패에 그치며 큰 경기와 결정적인 순간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ACL에서 두드러지는 울산의 강해진 뒷심이다. 울산은 K리그에서는 패배한 경기수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한번 흐름이 꼬이면 허무하거나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시즌 전북전 무승이나, 2019-2020년 2년 연속 파이널라운드에서 '동해안 라이벌' 포항에게 참패했던 경기들이 대표적이다. ACL에서도 2019년 우라와 레즈와의 16강전에서 2차전(0-3)에 졸전 끝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던 기억이 있다. 김도훈 감독 부임 이후 유독 약팀에게만 강한 '새가슴 축구'라는 오명이 붙었던 이유다.

코로나 19 사태의 영향으로 중립지역에서 재개된 ACL에서의 울산은 확연히 달라졌다. K리그와 FA컵에서 연이어 준우승에 그친 트라우마가 자극이 되었는지,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선제골을 허용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달려드는 뒷심이 좋아졌다. 24일 퍼스 글로리(호주)와의 3차전, 도쿄와의 5차전 모두 선제골을 내주고도 경기를 뒤집는(2-1승) 저력을 보여줬다. 최근 4연승을 거두는 동안 전 경기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10골을 몰아친 뜨거운 화력은 아시아 무대에서도 여전했다.

특히 퍼스와의 2연전에서 울산은 4골을 모두 후반 40분 이후에 몰아쳤다. 3차전에서는 후반 26분 퍼스에 먼저 선제골을 내주고도 후반 44분 김인성의 동점골 종료 직전 주니오의 극장골로 뒤집었고, 두 번째 대결이었던 4차전에서도 팽팽한 0의 균형을 이어지다가 후반 43분과 44분 또다시 김인성-주니오의 연속골이 터지며 기어코 승리를 이끌어냈다.

ACL에서 벌써 4골을 몰아치며 '골넣는 미드필더'로 각성한 윤빛가람의 활약상도 빼놓을수 없다. 윤빛가람은 지난 3라운드 상하이 선화 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팀의 3-1 대승을 이끌었고, 5라운드 도쿄전에서도 다시 한번 연속골로 팀을 16강으로 이끌었다.

특히 도쿄전에서 전반 초반에 이른 실점을 허용하며 팀이 끌려가고 있던 상황에서 44분에 터뜨린 프리킥 골은 온전히 윤빛가람의 개인능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진호의 침투 패스를 상대 진영 페널티박스 인근에서 받는 과정에서 상대 파울을 끌어내 프리킥을 얻은 윤빛가람은, 직접 키커로 나서서 골문과 다소 거리가 있었음에도 환상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도쿄의 골망을 시원하게 흔들었다. 상대 골키퍼가 아예 손쓸 엄두도 내지못한 완벽한 궤적이었다.

후반 40분에는 박스 외곽에서 볼을 받은 후 도쿄 수비진을 개인기로 무너뜨리며 날카로운 오른발 슛으로 또 한번 골문 구석을 정확히 찔렀다. 올시즌 K리그1 24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던 윤빛가람은 ACL에서는 벌써 자신의 시즌 득점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또한 윤빛가람은 퍼스 글로리와의 2연전에서는 직접 골은 넣지 못했지만 경기 내내 80-90 %에 이르는 엄청난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경기를 지배했고, 김인성-주니오의 득점 과정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지금까지 2020년 ACL에 출전한 K리거중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활약이자 이대로 울산이 대회 상위권에 오른다면 MVP까지 넘볼 만한 존재감이다. 그동안 큰 경기에서 주니오와 김인성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울산은, 윤빛가람이라는 토종 해결사가 새롭게 등장하며 ACL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됐다.

올해를 끝으로 울산과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김도훈 감독에게도 ACL는 울산 사령탑으로 도전하는 마지막 대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울산 부임 이후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막강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부임 첫해인 2018년 FA컵 우승을 제외하면 아쉬운 성적에 그쳤던 김 감독이나 울산에게 이번 ACL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울산은 김호곤 감독이 이끌었던 지난 2012년 ACL 정상에 이후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무려 15년 전인 2005년 우승이 마지막이었던 K리그보다도 더 가까운 우승의 추억이다. 울산이 K리그에서 손상된 자존심을 ACL에서 멋지게 만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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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 2020ACL 윤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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