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BC의 인기 프로그램인 '지미 팰런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은 그렇게 한국의 멋을 세계에 전파했다.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온갖 한국적인 요소가 넘쳐난다. 한복을 입은 젊은 남성들이 전통 건물 앞에서 춤을 추고, 난데없는 호랑이와 탈춤도 등장한다. 대중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지화자', '얼쑤' 등 전통 국악의 추임새로 참가자들의 흥을 돋우며 타이틀곡 < IDOL >을 부르던 방탄소년단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비디오를 보자. '킹콩, 롤링스톤' 등 난해한 단어가 주를 이루고 낯선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 방탄소년단이다. 세계화와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적 가치가 되었다지만, 이 둘이 같은 가수의 곡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흙수저 아이돌 신화", "오르지 못했던 산을 넘었다." 국내 언론들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를 반기는 기사를 쏟아냈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Dynamite)>는 9월 5일 빌보드 핫100 최신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렸고, 발매 13주 차인 지난 11월 24일에도 '역주행'으로 14위를 차지하며 상위권을 지켰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최초로 오른 것 역시, 백인 중심 보수성을 대변하는 시상식의 벽을 넘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인기 있는 글로벌 대중음악의 흐름을 단번에 알 수 있다는 차트에서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정상에 오른 것은 분명 자랑스럽다. 덕분에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인식을 의미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차츰 깨지고 있다는 점도 반가운 일이다. 올해의 기록들을 두고, 방탄소년단의 신 한류가 수백 년간 지배해온 고질적인 서구의 문화적 패권주의를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이유다.

그런데 패권주의에 균열을 낸다는 이들의 신 한류 행보가,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처음에 신곡을 들었을 땐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죠."

딸 덕분에 방탄소년단의 팬이 됐다는 40대 여성 김씨, 처음 신곡을 들었을 땐 난해한 노랫말과 빠른 템포 탓에 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었단다. 서구권 국가에 다가가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다이너마이트>는 곡의 전부가 영문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한글 가사 위주 앨범이 부진했던 데서 교훈을 얻어 의도적으로 외국 유명 작곡가들과 협업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서구적 요소가 비단 가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류시장인 영미 팝계에서 인기를 끄는 장르인 복고풍의 디스코 팝을 채택했고, 이는 최근 빌보드의 경향과도 일치한다. 뮤직비디오 속 정국의 방에는 퀸, 비틀스, 보위 등 해외 유명 가수들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안무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도록 한다.

'네이밍(이름 짓기)'의 역할도 한몫했다. 구성원 모두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데뷔 당시, 다소 낯선 '방탄소년단'이란 그룹명은 그 자체로 조롱의 대상이었다. 방시혁 대표의 성을 딴 "방시혁의 아이들"이 아니냐는 오명을 쓰던 이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 'BTS'라는 약어를 일종의 해외 활동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전략은 브랜드 네이밍이다." 세계적인 마케팅 전략가인 잭 트라우트는 브랜드 네이밍의 역할을 이렇게 평가한다. 한류의 상징이자 변화의 중심인 방탄소년단이란 '브랜드'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네이밍을 통해 주류 문화와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Jump up to the top LeBron. (높이 뛰어올라 마치 르브론처럼)" 미국 프로농구 선수인 르브론제임스의 이름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가사조차도 현지 친화적이다.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일 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란다. 심지어 르브론이 유대인과 노예 비난 발언 등으로 여러 차례 논란이 됐던 전력이 있는 선수라니,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비유할만한 다른 이가 정녕 없었을지 아쉽기도 하다.

결국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열풍 속에 남은 것이, '디스코 팝·BTS·르브론제임스'라는 점은 꽤 씁쓸하게 다가온다. "좋은 문화는 나무가 가지를 뻗치고 잎이 무성한 것처럼 우리 머리 위에 덮여있다. 나쁜 문화는 기하학적인 모양을 한 획일적인 우산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의 작가 체스터든이 남긴 말은, 획일화된 문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문화의 다양성을 주창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류 문화와 가까울수록 좋은 성취를 얻는 세태는, 빌보드 1위가 곧바로 '문화적 패권주의의 종말'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드디어 마지막 산을 넘었다며 한류의 미국화를 '똑똑한 행위'라고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문화적 패권주의의 병폐가 파편화되고 망각되는 것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한류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비영어권 음악에 대한 주류 미디어의 장벽을 타파해야 하고, 영어가 아닌 가사와 음악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을 한류만의 멋스러움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산들을 넘을 동력은, 파편화된 현상을 다시 한데 모아 인정하기 싫은 것을 '직시'하는 우리의 용기에 있다.
방탄소년단 BTS 빌보드 다이너마이트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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