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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도 거의 지났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울의 체감온도가 온몸으로 스며들고 추위를 느낀다. 나는 추위에 약해서 겨울이 오면 맨 먼저 수면 목도리를 찾아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둔다. 

몸에 한기가 느껴지면 언제라도 목을 감싸기 위해서다. 수면 목도리를 목에 두르면 느낌이 포근하고 따뜻해서 감기를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날씨가 추운 날은 잘 때도 목에 감싸고 잔다. 그래서일까? 몇 년째 감기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나고 있어 다행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찾아간 동네 뜨개방에서 유행처럼 뜨기 시작한 수면 목도리는 내가 겨울만 되면 지인들에게 해주는 선물로 제일 선호하는 품목이다. 선물을 받게 될 사람의 성향에 맞는 색을 골라 목도리를 떠주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뜨개방에서 다른 사람이 뜨는 색을 보면 예뻐서 뜨고, 서로 경쟁을 하듯 색을 골라 가면서 뜨개를 하고 있다.
 
수면 목도리를 뜨는 뜨개실
▲ 수면사 실 수면 목도리를 뜨는 뜨개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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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방에서는 겨울이 되면 수면 목도리를 떠서 양로원이나 부모 없는 보육원에 보내는 봉사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보기에 너무 흐뭇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처럼 따뜻한 나눔을 하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구나 싶다. 이렇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일 때가 많다.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에는 시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지난 봄 심근경색으로 하마터면 세상과 이별할 순간의 고비를 넘겼다. 그 고비를 넘기고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멈췄던 일도 찾아 하고 지금은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실을 뭉텅이로 사다가 목도리를 뜨고 있다. 

뜨개질을  선물을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다. 뜨개란 정성과 마음이 담긴 선물로 으뜸이다. 실값도 만만치 않지만 모두가 바쁜 요즈음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남을 배려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는 게 모두가 바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옆에 있는 가족이나 모든 사회적 연결망이 나를 돕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생각하면 감사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주변만 살피고 살 뿐이다. 내가 가지는 마음은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며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을 한다. 다만 나와 연결된 지인은 살피고 살 뿐이다.

수면 목도리를 완성하려면 하루의 시간이 꼬박 걸린다. 나는 뜨개를 하거나 수를 놓을 때 선물할 사람과 마음을 나눈다. 그 사람에 대한 여러 추억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는 순간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내가 선물해 주는 그분들의 마음에 사랑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뜨개질을 한다. 

뜨개질을 하는 순간은 선물을 받을 사람의 존재가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면 목도리를 뜨고 있다. 겨울이 오면 목도리가 주는 따뜻함을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목도리를 많이 선물했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이 있으면 목도리 선물할 생각부터 떠오른다.   

지난달 책을 출간하고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책을 사 주고 내 삶을 응원해 줄 때 마음이 울컥하고 감사함이 몰려온다.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다. 무엇으로 작은 정성을 보일까 궁리를 하다가 수면 목도리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실을 사고 뜨개를 하기 시작했다. 

엊그제 그림일기를 지도를 해주는 작가님이 군산 그림책앤에 강연을 하려 내려오셨다. 잘 됐다 싶어 카톡으로 살짝 "작가님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물어보니 "와인 색인데요" 하는 대답을 듣고 머물러를 떠서 강의 오신 날 목에 걸어 드렸다. 작가님은 너무 좋아하셨다. 나는 선물을 받은 상대가 좋아하는 순간을 즐기려 뜨개를 하는 것 같다. 그 순간이 기쁘다. 
 
와인색 수면 목도리
 와인색 수면 목도리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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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나는 엄청 바쁘다. 해야 할 일이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개를 하는 이유는 사람으로서 정을 나누는 도리와 따뜻함을 나누기 위해서다.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나누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기쁜 일이라 믿는다. 훗날 내가 인지 기능이 없고 움직일 수 없으면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나는 더 열심히 산다. 날마다 나의 삶의 길이는 짧아만 지고 사는 게 소중하고 애틋하다. 

나는 유난히 뜨개 니트옷를 좋아한다. 사서 입으려 해도 몸에 맞는 옷이 마땅치가 않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없거나,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예 내가 직접 뜨개 옷을 떠 입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수년 전에, 그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가족들 옷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하나 둘 떠 주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겨울,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 밖에 나가지 않고 즐기는 일 중 하나가 뜨개질이다. 음악을 듣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뜨개를 해서 좋아하는 옷들을 만들고 감사한 분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것은 내 삶의 기쁨을 누리는 일 중에 하나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나누고 살기를 희망한다. 
 
뜨개한 수면 목도리.
 뜨개한 수면 목도리.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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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책을 출간하고 시니어 클럽 관장님이 책을 구매하시고 직원들 나누어 주기 위해 30권을 더 구매해 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배려로 감사하다. 내가 자꾸 수면 목도리를 떠야 하는 일이 생긴다. 더 감사한 일이 많아 목도리 선물을 해야 할 듯하다. 올 겨울 내 손은 더 바쁘게 움직이고 따뜻한 정을 나누고 살려고 한다. 나누는 삶이 기쁘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뜨개 머풀러, #수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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